[내일신문] 한국에서는 누가 기부하는가?

[NGO 칼럼]한국에서는 누가 기부하는가?(김성재 2009.01.06)

2009-01-06 오후 1:32:00 게재

 

한국에서는 누가 기부하는가?
김성재 (푸르메재단 사무국장)

몇년 전 한 기부단체의 후원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매달 1만원씩을 정기적으로 기부할 뿐만 아니라, 가끔씩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을 한꺼번에 내기도 한다고 했다. 기부받는 단체에게는 고맙기 짝이 없는 후원자인 셈이다.

그의 기부 사연을 듣다 놀란 것은, 그가 결코 고소득자이거나 자산가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당뇨를 앓고 있는 50대 나이의 이 ‘기부천사’는 공사장에서 도색일을 하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게다가 그는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생계유지가 어려운 국민기초생활보호법상의 수급자였다.

그는 18평 짜리 국민임대주택에서 정부 지원금 30여만원으로 혼자 생계를 유지하면서 매달 꼬박꼬박 후원금을 내왔다. 어쩌다 공사판에서 보름정도 일용직으로 노동을 하고 100여만원을 벌면 그 돈의 절반 이상을 떼내 또 기부를 해왔다는 것이다.

기부하면 너도나도 기부해달라고 요청할까봐?


우연이었을까? 그동안 내가 만나온 기부자들은 대개 이런 사람들이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 그래서 나눌 수 있는 여력이 넘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평범한 월급쟁이, 일용직 노동자, 소박한 주부, 돈 못 버는 학생, 동네 구멍가게 주인, 김밥집 할머니였다.

지난해 말 길거리의 소액기부자들이 한푼 두푼 돈을 내는 구세군 자선냄비의 모금액이 32억원으로 사상 최대였다는 보도는 그래서 낯설지 않다. 인천의 한 노숙인 쉼터와 쪽방 사무소에서는 그 쪽방 주민들과 노숙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60여만원을 기부단체에 전달했다는 뉴스도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되는데도, 막상 지갑을 열어 이웃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오히려 서민과 저소득층이다. 이들이 이웃을 위해 돈을 털어 낸 이유는 비슷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였다.

지난해 기부문화 관련 토론회에서 조세연구원의 한 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전체 개인기부 가운데 80%가 종교기관에 대한 기부(헌금)여서 비영리 민간분야에 대한 순수 개인기부가 아직 활발하지 못하다. 그나마도 연간 자기소득의 10% 이하를 내는 소액기부자가 전체의 93%로 절대다수다.

우리나라 부유층은 ‘남몰래’ 기부를 해서 그런지, 기부에 적극적이라는 뉴스를 자주 듣지 못했다. 일부 재벌들이 자기 재산도 아닌 기업의 돈으로 내는 기부금이나 사회적 범죄로 비난을 받은 뒤 내는 이른바 ‘속죄성 기부금’이 대부분이다.

한국부자학연구학회가 작년 고액자산가 11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부유층은 ‘한국사회에는 고액기부를 이끌어 낼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고 답했다고 한다. 또 이 학회 관계자는 ‘부유층들은 고액기부를 하면 너도나도 기부해달라고 요청할까봐서 고액기부에 나서기 힘들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수긍하기에는 좀 옹색한 답변들이다.

“기부하고 나면 내가 더 행복해지더라”

어떤 기업인은 ‘기업과 사업가는 경영을 잘하면 그것이 사회공헌이지 꼭 돈을 기부해서 칭찬받아야 하나’고 했다. 얼마전 경기도에 사는 한 기업가가 ‘기업활동을 위해 모은 재산이라도 일정 규모 이상이면 사유재산이 아니므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기며 12억원 상당의 땅을 기부했다는 뉴스를 들으면, 이런 말이 꼭 옳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지갑을 여는 소액기부자들은, 기부금을 낸 뒤 하나같이 같은 느낌을 말한다. ‘남을 위해 기부했지만, 기부하고 나면 내가 더 행복해지더라’는 것이다. 올해는 덜 가진 사람이나 더 가진 사람이나 기업이나 모두가 스스로를 돕는 ‘자선’(自善)에 더 많이 참여하고 더 많이 행복을 느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