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네팔 건축+의료봉사 떠나는 엄홍길 대장
[이사람] 해발 3400m에 ‘배움꽃’ 피운다 | |
네팔 ‘건축 봉사’ 떠나는 엄홍길 대장 |
|
![]() |
|
50여명 아이들 위해 교실 수리·교사 모집 앞장
산악인 엄홍길(48·오른쪽) 대장이 네팔의 히말라야 팡보체 마을에서 새해 특별한 추억을 만든다. 오는 22일부터 푸르메재단과 함께 이 마을에 하나뿐인 초등학교의 낡은 교사를 고치러 가는 것이다. 이 학교는 50여 가난한 아이들의 배움터다. 조금 형편이 나은 아이들은 4시간이 넘는 등하교 시간을 감수하고 이웃 마을 학교로 다닌다. 찬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교실 벽을 수리하면 가난한 아이들도 따뜻하게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 봉사’ 앞에 기다리는 난관도 있다. 해발 3400미터의 고산 마을이라 건축 자재를 헬리콥터로 옮겨야 해서 운반비만해도 만만치가 않다. 3월에 착공해 2009년 말이나 적어도 2010년에는 완성할 예정이다. 건물도 건물이지만 교사들이 오기를 꺼리는 것도 큰 일이다. 엄 대장은 앞으로 실력 있는 교사를 모으고 월급을 주는 일도 후원할 작정이다. 엄 대장과 팡보체 마을의 인연은 20년도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85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에 좌절한 뒤 86년 같은 장소로 두 번째 등정에 나섰다. 당시 2~3차례의 낙빙사고가 발생한 뒤라 따라나서는 셰르파가 없었다. 그때 술딤 도루지가 나섰다. 결혼한 지 3개월 된 젊은이였다. 도루지는 다른 사람들도 설득해 엄 대장의 등정을 도왔다. 하지만 등반 도중 젊은 셰르파는 추락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엄 대장은 88년 끝내 남서벽 등정에 성공했다. 히말라야 8천미터급 16좌 등정이라는 대장정의 첫 발이었다. “처음 겪은 죽음이라 경황이 없었습니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만나며 그 가족들과 인연을 이어나가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었죠.” 팡보체 마을에는 도루지의 젊은 아내와 일가친척이 모두 살고 있었다. 베이스캠프로 들를 때마다 그는 부인에게 캠프 일을 맡기고, 아버지를 자주 만나며 아들 노릇을 했다. 엄 대장의 ‘제2 고향’ 방문길에는 푸르메재단의 치과의료 봉사단인 ‘미소원정대’가 동행한다. 푸르메치과 장경수(왼쪽) 원장을 비롯해 3명의 치과 전문의가 이끌 미소원정대는 4박5일 트렉킹으로 팡보체까지 가면서 중간중간 들르는 마을에서 치과 검진과 치료 봉사를 할 예정이다. 엄 대장은 이렇게 초대장을 띄웠다. “저는 항상 히말라야에 들어서는 순간 내면에서 전생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봉를 비롯하여 7천~8천미터의 다양한 히말라야 산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습니다. 히말리야 풍습이나 환경이나 문화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의료봉사에서는 간호사 노릇도 하게 됩니다.”
|
7박8일 일정의 경비 250만원를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 원정대에는 벌써 20여 명의 일반인들이 합류했고 앞으로 10명 정도 더 모을 계획이다. (02)720-7002, www.purme.org.
구둘래 <한겨레21>기자 anyone@hani.co.kr
기사등록 : 2009-01-02 오후 06:43:31 기사수정 : 2009-01-02 오후 07:34:56
사진 푸르메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