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나누니 더 따스해
나누니 더 따스해 |
|
연말 아름다운 충동 가꾸기 |
|
이유진 기자 곽윤섭 기자 | |
지갑이 가벼워질수록 마음은 무거워진다. 지갑이 텅 빌수록 행복해지는 방법도 있다. 남과 나누는 일이다. 기금모금 컨설턴트인 더그 로선(<나눔이 주는 아주 특별한 선물> 저자)은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들은 이타적인 정신과 삶을 통해 치유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웃돕기 철’ 연말이 다가왔다. 경제 한파까지 덮친 이번 연말에 작은 ‘나눔’으로 이 땅의 온기를 되살리고,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피부로 느껴보자. 손쉽게 시작할 수 있는 나눔의 방법들은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현금 기부, 따져보자
누구나 ‘아름다운 충동’을 느낀다. 거리의 걸인들에게 한두 번쯤은 동전을 건네준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자. 나는 누구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먼저 자신의 기부 동기에 알맞은 단체를 직접 찾아 챙겨보는 것이 가장 좋다. 비슷한 성격의 단체이더라도 기부 쓰임새가 다른 곳이 많다. 예컨대 국내외 어린이를 지원하는 단체들도 조금씩 활동 양상이 다르다. 한비야·김혜자씨 등의 활동으로 잘 알려진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worldvision.or.kr)은 기금의 대부분을 국내외 어린이들을 돕는 데 쓴다. 후원자와 수혜자를 일대일로 맺어주는 게 이 단체의 특징이다. 굿네이버스(forchild.org)도 도움이 필요한 국내외 아이들과 결연을 돕는다. 유엔상설기구인 유니세프(unicef.or.kr)는 제3세계 빈곤층 어린이를 지원하되 일대일 후원이나 국내 후원은 하지 않는다. 지정기부가 없는 대신 여자 어린이 차별과 아동학대 문제까지 폭넓게 개입한다. 불교단체인 정토회를 기반으로 한 제이티에스(jts.or.kr)는 인도 불가촉천민 거주지역 아이들의 건강과 교육, 그리고 북한 동포 돕기 사업에 열성을 쏟고 있다.
내 도움 원하는 곳 어딜까
여러 기금을 한데 모아 운용하는 곳도 있다. 주는 사람 마음대로 물건을 갖다 안기거나 과시용으로 기부하는 사례는 많이 줄어들고, 지금은 지역사회 또는 수혜자가 요구하는 지원을 해 주는 쪽으로 나눔의 양상이 바뀌었다. 대표적인 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나눔펀드 규모를 자랑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 열매, chest.or.kr)다. 소외된 빈곤계층의 기초생활지원·사회복지시설과 단체의 배분을 통해 소외계층의 생계비·의료비·교육비를 지원한다.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소득공제 때 전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1% 나눔’ 캠페인으로 유명한 아름다운 재단(beautifulfund.org)은 빈곤부터 문화 분야까지 120여가지 기금 사업이 있어 원하는 기부처를 대개 찾을 수 있다. 빈곤층 지원뿐 아니라 우토로 살리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돕기, 지역사회 살리기, 공익적인 풀뿌리단체 지원사업까지 다양하다. 기부자·수혜자·재단 인력들의 끈끈한 유대가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눈에 띄는 분야는 유산 나눔이다. 지금까지 300명 정도가 약정을 했다. 윤정숙 상임이사는 “진짜 명문가는 재산이 아니라 나눔의 정신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집안”이라며 “기부는 어느 순간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고통 속에서 절절하게 얻는 깨달음과 치유의 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재능 나누는 자원봉사
몸을 움직이고 시간을 투자해 남을 돕는 봉사활동은 ‘나눔의 최고봉’으로 불린다. 대부분의 기부단체들은 일반인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한다. 연말 저금통 모금을 하는 단체들은 동전 세기 봉사가 필요하다. 사회복지관이나 부녀회를 통해 하는 도시락 배달, 노인목욕돕기도 의미 있다. 결심이 큰 사람들은 빈곤국가에 단기간 또는 1년 가량 장기체류 자원봉사활동을 떠나기도 한다.
어린이를 좋아한다면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bookreader.or.kr)에 문의해 보자. ‘기적의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공공도서관 자원활동을 소개해 준다. 성격이 꼼꼼하거나 사람 만나기를 좋아한다면 중고물품 나눔가게에서 물품정리나 판매를 도울 수 있다. 손재주가 있다면 인형을 만들어도 좋다. 유니세프는 ‘아우인형’(awoo.or.kr)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유니세프에 요청해 키트를 받은 뒤 인형을 만들어 되보내면 된다. 인형은 각 2만원씩에 ‘입양’을 보내 어린이 질병 예방접종 사업에 쓴다. 세계 각 나라에서 만든 다양한 ‘아우들’을 인터넷으로 입양할 수 있다.
색다른 재능이나 기술 나눔을 할 수 있는 곳도 많다. 5년 전부터 보석감정·시계수리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강용배(55·보석당)씨는 한 달에 500~1천개의 시계를 고쳐 아름다운가게로 보낸다. 목발을 짚고 다닌다는 그는 사람들에게 받은 배려를 되돌려주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강씨는 “나눔도 중독”이라며 “처음 시작하기가 힘들지, 일단 하고 보면 그만둘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머리카락까지 물품기부
자기가 가진 것은 무엇이든 나눌 수 있다. 소아암 환자를 돕는 날개달기운동본부(wingshang.new21.org)에서는 모발을 기증받는다. 치료 후유증으로 머리가 빠지는 어린이들의 가발을 만들기 위해서다. 25센티 이상 되는 머리카락을 모아 날개달기로 보내면 본부에서 가발을 만들어 환아들에게 제공한다. 물품 기부는 의류, 도서, 난방용품 등 제조업체 기업들이 참여하는 수가 많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16개 시·도지회 누리집(chest.or.kr)을 통해 물품기부 신청을 받는다. 참여하는 기업은 연말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물건을 소량 내놓길 원한다면 아름다운가게(beautifulstore.org)나 녹색가게(greenshop.or.kr) 등을 이용해 보자. 아름다운가게는 물품 수익금 대부분을 저소득층 등에 지원한다. 녹색가게는 재활용품을 선순환시키는 환경운동의 일환이다. 다 읽은 책을 나누는 북크로싱 운동도 동참해 볼 만하다. 책을 일정의 메시지와 함께 공공장소에 놓아두면 받은 사람들도 다음 사람에게 책을 돌린다. 북모임(bookmoim.co.kr) 사이트와 뜻있는 개인들이 북크로싱 운동을 펼치고 있다.
물건 살 땐 자선 상품
연말 선물을 할 때 뜻있는 물건을 사는 ‘윤리적 구매’는 어떨까? 모금단체에서 파는 이런 물건을 ‘자선 상품’이라고 한다. 특히 자선 팔찌는 자선 운동 동참이라는 의미를 넘어 새로운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축구선수 베컴(학교폭력 반대), 설기현(인종차별 반대) 등이 팔찌를 찬 채 경기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굿네이버스, 유니세프, 월드비전의 ‘자선 상품’은 예쁘고 품질이 좋아 점점 입소문을 타고 있다. 굿네이버스는 어린이 노동을 쓰지 않는 공정무역 축구공, 티셔츠, 머그잔, 빈곤퇴치 자선팔찌 등을 쇼핑몰(egoodshop.kr)에서 판매해 수익금의 85% 가량을 기부한다. 월드비전은 ‘나눔상품’(nanuum.or.kr)으로 수익금 전액을 기부한다. 배상민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가 디자인 기부한 MP3 제품과 개인용 가습기를 새로 내놓았다. 수익금은 국내 저소득가정 아동 중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들에게 쓰인다. 유니세프는 티셔츠, 넥타이, 모자, 스카프, 트리장식, 장식 초, 커피잔 세트, 퍼즐, 인형, 카드 등을 팔아 수익금의 60%를 빈국 아이들에게 쓴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곽윤섭 기자
|
기사등록 : 2008-12-01 오후 08:09: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