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중증장애인 손 꼭 잡은 장애인 수녀님

 

중증장애인 손 꼭 잡은 장애인 수녀님

 2008-10-27
푸르메나눔치과 오승환 원장이 26일 경기 가평군 '성가정의 집'을 방문해 중증장애인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치과 진료를 무서워하는 환자를 위해 윤석인 원장수녀(왼쪽)가 침대형 휠체어에 누워 환자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 사진 제공 푸르메재단“아이 무서워, 나 안 올라갈래.”

26일 오전 11시 경기 가평의 장애인복지시설 ‘요셉의 집’.

지적·지체장애 1급 여성 주은희(32) 씨는 치과 시술대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침부터 복지관에서 따뜻한 옷을 입혀줘 단풍놀이 가는 줄 알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주 씨는 녹색 수술복을 입은 의사를 보자 덜컥 겁이 난 것이다.

평소 함께 생활해 왔던 이은경 수녀가 한참을 달랜 뒤에야 주 씨는 시술대에 올랐다. 그 옆에는 침대 모양의 휠체어에 누운 채 주 씨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전신마비 장애인이 있었다. 윤석인(58) 수녀였다.

윤 수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급성 소아류머티스’ 진단을 받고 온몸이 마비됐지만 미술과 종교의 힘으로 그 시련을 극복해 왔다.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첫 장애인 수녀이면서 화가로 유명한 그는 5월 박성구 신부의 도움으로 여성 중증장애인들의 생활공동체인 ‘작은예수수녀회 성가정의 집’을 세웠다.

그런 윤 수녀에게 이날 소중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장애인 환자들을 대상으로 치료봉사를 해 온 푸르메나눔치과 의료진이 개원 1주년을 맞아 성가정의 집을 방문한 것. 이곳의 장애인들은 치과시술용 의자가 있는 인근 복지관으로 승합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정부보조금 혜택 없이 윤 수녀의 그림이나 책 등을 팔아서 마련한 돈으로 살림을 꾸리다 보니 마땅한 치료시설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치과봉사단은 이날 장애우 20여 명을 치료해 주었다. 장경수 원장은 “중증장애인의 경우 치아에 극심한 고통을 느껴도 표현이 서툰 데다 제대로 음식을 씹지 못해 영양공급이 불충분하면 근육이 위축되는 등 중복장애가 나타나기 때문에 치아건강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윤 수녀는 “장애인 시설은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니라 치료공간으로서 물리치료 등 지속적인 치료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최소한의 치료 장비는 갖출 수 있도록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성가정의 집에서 ‘찾아가는 봉사’를 시작한 푸르메나눔치과는 내년 1월 산악인 엄홍길 씨를 중심으로 ‘미소원정대’를 조직해 네팔의 포카라로 치과 의료봉사를 떠날 계획이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