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MB 헌납재산, 장애인에게 쓰자
[기고]‘MB 헌납재산’ 장애인에 쓰자
2008-08-24
이명박 대통령 ‘재산 헌납’의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이 이르면 이달 중 발표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이 공약이 발표된 것은 대선 직전인 지난 12월7일이었다. 8개월이 넘도록 어떻게 쓰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으니 세간의 이목이 집중될 만한 얘기다.
야당은 청와대가 막힌 정국을 반전시키기 위해 재산헌납 카드를 들고 나왔다고 꼬집고 있다. 선거 내내 끊이지 않았던 대통령의 재산 논란을 불식시키려 ‘헌납’을 얘기했다가, 문제가 제기되자 ‘사회 환원’으로 바꾸려 한다는 비난도 없지 않은 듯하다.
대통령이 자기 재산을 포기하는 것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드문 일이고, 이 시점에 재산헌납 계획 발표 얘기가 나오는 것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찌됐건 ‘내 것’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겠다는 것 그 자체는 소중한 일임이 틀림없다.
1조원에 이르는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사회환원 약속도 같은 맥락이다.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 위기에 몰린 정 회장의 궁여지책이라는 비판이 많았고, 또 아직 이렇다 할 ‘실천’이 뒤따르지 않고 있지만, 뜻 깊은 일에 쓰인다면 그 돈은 분명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띠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제 ‘좋은 돈, 나쁜 돈, 이상한 돈’ 논쟁을 접고 조금 차분하게 바라보자. 그 돈을 어디에 의미 있게 쓰느냐를 꼼꼼하게 따져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돈을 쓰는 쪽도 더욱 사려 깊게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사회적으로 명분 있고 필요한 곳에 사용돼야 돈의 성격을 둘러싼 비판을 가라앉힐 수 있다.
들리는 소리로는 대통령의 재산은 장학재단 내지 공익재단 설립에 쓰일 것이라고 한다. 좋은 일이다. 앞서 정몽구 회장 쪽에서는 ‘오페라하우스’ 건립 얘기도 나온다. 과히 나쁘지 않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돈 쓰는 철학이 빈곤한 것 같은 느낌이다. 사회를 위해 자기 돈을 쓰겠다고 할 때는 어떤 사람들이 가장 필요할 것이냐에 대한 구체적 고민과 판단이 요구된다. 즉,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회의식과 철학을 읽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감히 제안한다. 이 돈을 장애인을 위해 쓰자고 말하고 싶다. 몸이 불편해 힘들고, 생계는 막막하고, 미래에 대한 한 점의 희망도 품기 어려운 사람들이 주위에 너무 많다. 국내 장애인 수는 400만명을 넘는다.
10명 가운데 한 명은 장애인이라는 얘기다. 출생 전후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은 물론 삶의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와 질병으로 장애를 입게 된 사람들도 그 수가 엄청나다. 누구도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장애인 가족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아직 아쉽기만 하다.
푸르메재단은 민간재활전문병원 건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환자가 주인이 되는 병원, 쾌적한 환경 속에서 재활치료를 받으며 사회복귀를 꿈꿀 수 있는 아름다운 병원을 지을 계획이다. 시민과 기업 임직원 등 비장애인들은 자원봉사 등을 통해 장애인과 어울릴 수도 있다. 다행히 경기도 화성시가 병원 부지 1만여평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절망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고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하는 데 쓰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땅의 장애인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다가오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의 헌납 재산이 가장 절실하고 목마른 곳에 쓰이길 기대한다.
<정태영|푸르메재단 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