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 뉴스] 일본의 행복촌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
일본의 행복촌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
복지와 휴양 결합한 고베시 종합복지타운 행복촌
완벽한 접근성, 하지만 장애·비장애 통합은 실패
2008-08-14
장애인들의 사회복귀를 돕는 새로운 형태의 재활전문병원 설립을 목표로 삼고 있는 푸르메재단은 선진국의 장애인복지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지난 7월 23일부터 26일까지 일본에 다녀왔다. 에이블뉴스는 이들의 연수 전 과정을 동행 취재해 일본의 장애인복지가 우리와 어떻게 다르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살펴봤다.
▲푸르메재단 연수팀이 일본 고베시에 위치한 종합복지타운 ‘행복촌’을 방문해 관계자로부터 행복촌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에이블뉴스
[기획]일본을 배우다-④행복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으로 사회복지 연수를 떠나면 반드시 들리는 곳이 있다고 한다. 바로 일본 고베시에 위치한 종합복지타운 ‘행복촌’. 지난해 초 당시 보건복지부 수장이었던 유시민 장관도 이곳을 다녀갔고, 여러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사회복지 종사자들도 수십 차례 견학을 다녀갔다.
한국어로 된 비디오 홍보물과 자료를 갖추고 있고, 한국인들을 안내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는 직원이 있다는 사실만 봐도 한국인들의 발길이 얼마나 잦은 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행복촌이 한국인들에게 이렇게 유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운영되나=행복촌이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는 복지시설과 휴양시설이 잘 결합돼 있기 때문이다. 행복촌은 도시공원과 복지시설이 결합된 독특한 공간이다. 총 205ha(62만평) 규모로 굉장히 방대하다. 이 중 22.5%에 해당하는 46.1ha는 복지시설이, 나머지 77.5%는 도시공원이 차지하고 있다.
도시공원에는 호텔 수준의 숙소, 온천, 캠프시설, 산책로 등 다양한 레저시설이 들어서 있고, 테니스장, 양궁장, 볼링장, 말타기 공원, 골프장 등 다양한 스포츠 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시민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한다.
복지시설은 노인과 장애인시설이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복지시설의 유형은 신체장애인 생활시설, 노인성 치매 질환 전문 병원, 신체장애인 공동작업시설, 지적장애인 작업시설, 지적장애인 통원시설, 노인홈·치료센터, 중증심신장애인 교육센터, 사회복귀병원, 노인보건시설 등 총 10가지다.
연간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하고 있다. 행복촌의 연간 유지비용은 약 20억원(약 190억원)으로 시설이용료 수익, 고베시 보유기금의 이자, 세금이 각각 3분 1 비율로 투여되고 있다.
▲행복촌의 역사와 가치=행복촌은 미야자키 다즈오 전 고베시장이 구상하고 추진했던 프로젝트였다. 미야자키 전 시장은 부시장을 역임하던 1955년 북유럽을 시찰하면서 행복촌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30년이라는 긴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 1987년 문을 열었다. 총 사업비 400엔(3,900억원)이 투여됐다.
미야자키 전 시장이 행복촌을 구상했던 50년대에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지 않았다고 한다. 국가가 나서서 장애인은 시설에서 생활하도록 했으며, 장애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했던 시기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공간’을 꿈꿨던 미야자키 시장의 프로젝트는 당시로써는 굉장히 신선하고 선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비장애인들과 장애인들이 한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미야자키 시장의 의지가 낳은 결과였다.
행복촌은 설립 당시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장애인과 노인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환경을 갖추는 것. 실제로 행복촌에는 장애인들이 가지 못하는 공간이 전혀 없다. 무장벽을 넘어 유니버설디자인까지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현 시점에서의 한계점=이렇듯 행복촌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는 분명히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적용할 모델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현 시점에서 행복촌은 몇 가지 한계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어울림의 한계다. 행복촌은 설립 당시 야외활동을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은 일반 시민들이 장애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통합적인 환경에 적응하도록 하는 것을 중대한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부지가 워낙 넓고 복지시설과 도시공원의 거리차이가 있다 보니, 복지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들과 레포츠 시설을 이용하는 비장애인들이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사실상 각자 다른 시스템 속에서 운영되고 있다 보니,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거리와 공간의 한계다. 행복촌은 고베 시내에서 약 40~50분정도 떨어진 산 쪽에 위치하고 있다. 휴양지로써는 매우 가깝고 이용하기 편리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행복촌 내 복지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매일 통원, 통학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역사회와의 분리’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지역사회와 떨어진 별도의 공간에 장애인시설들이 몰려있다는 점은 한계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행복촌의 의미와 교훈=행복촌을 둘러본 우리나라 정부 관계자들과 사회복지 종사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한국판 행복촌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장애인이 맘 놓고 즐길 수 있는 레저공간과 복지시설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행복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가 행복촌처럼 편견이 없고 물리적 장벽이 없는 공간으로 재탄생 될 수 있도록, 정책과 예산의 판도를 바꾸는 것이 아닐까. 좀 더 멀리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물리적·심리적 장벽이 없는 이상적인 공간을 제시하고자 했던 행복촌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충분하다. 장애인이 장애를 느끼지 못하는 특별한 공간을 일반적인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행복촌이 현재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아닐까.
▲행복촌 내에 위치한 숙박시설. 행복촌 수익의 상당부분이 이 숙박시설에서 충당된다. 시설이 매우 잘 갖춰져 있어 시민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에이블뉴스
▲행복촌 도시공원의 한 풍경. 경치가 매우 아름답고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장애인과 비장애인들 모두에게 인기가 좋다. ⓒ에이블뉴스
주원희 기자 ( jwh@able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