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엄홍길 아저씨 봤죠? 해냈잖아요!
[이사람] 한·중 지적 장애아 “엄홍길 아저씨 봤죠? 해냈잖아요”
백두산 천지 오른 한·중 동포 지적 장애아
» 선천성 지적 장애를 지닌 김지언(11·효천초등5)양 등 한국에서 온 10대 초·중반 장애 어린이 4명과 중국 연변에서 합류한 최관(16·용정중3)군 등 9명의 손을 꼭 잡고 “도전!” 선창을 하자 아이들은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따라한다.
엄 대장 선봉 북파코스 동반산행 성공
“한달 동안 훈련 감격…다시 오고 싶어”
아시아 기자협회 등 주관 ‘백두산 트레킹’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하나다.” “도전,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3일 오후 장백폭포 넘어 백두산 천지. 앳되지만 우렁찬 목소리가 초속 20m 안팎의 강풍과 뒤섞여 메아리친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선천성 지적 장애를 지닌 김지언(11·효천초등5)양 등 한국에서 온 10대 초·중반 장애 어린이 4명과 중국 연변에서 합류한 최관(16·용정중3)군 등 9명의 손을 꼭 잡고 “도전!” 선창을 하자 아이들은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따라한다. (사진)
장애인 재활병원을 추진 중인 푸르메재단과 장애어린이 합창단 에반젤리, 아시아기자협회가 주관하고 하이원, 광동제약, 선진씨엠씨가 후원한 `2008 백두산 휴먼 트레킹’에 참여한 이들 10대 어린이들은 이날 오후 승하사~장백폭포~달문을 지나 천지에 이르는 2km의 북파코스를 3시간 남짓 걸쳐 산행을 했다. 이 등정길엔 계단 920여개가 40도 경사길을 이뤄 웬만한 어른들도 산 중턱 장백폭포까지만 오를 정도로 난코스다. 이들 장애 어린이들은 그러나 단 한 명도 포기하지 않고 2시간여 만에 백두산 정상 바로 밑 천지에 도달했다.
강풍에 몸이 휘청거리길 십수 차례, 백두산 등반길 맨 앞장엔 엄 대장이 왼손에 스틱을, 오른손으로 가장 어린 지언이 손을 꼭 쥔 채 걸었다. 바로 그 뒤에 이동민(12·안양남초등 6)양과 신슬기(14·관양중1), 김범준(16·경복고1)군이 따랐다. 이들은 모두 아직은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수준의 장애를 지니고 있다. 태풍 이상 가는 강풍에 섞여 날리는 잔모래가 얼굴을 때려와도, 가파른 계단이 언제 끝날지 몰라도 이들은 앞만 보고 걷고 또 걸었다. 오후 2시, 장백폭포 앞 매표소를 출발한 지 1시간30분 남짓 눈덮인 천지가 눈에 들어왔다. “와, 다 왔다!” 지언이가 소리를 지른다. 다른 아이들도 “와, 와” 연발한다.
어눌한 말투지만 벅찬 가슴을 가눌 수 없다. “끝까지 올라가서, 했어요”(신슬기) “좋았어요. 끝이예요” (김지언) “힘들었어요. 포기하지 않았어요”(이동민) “길이 간직하겠어요. 다시 오고싶어요”(김범준). 뿌듯한 건 아이들뿐만 아니다. 에반젤리 신혜정 사무국장은 “아이들이 한달 전부터 집에서 부모님들과 등산훈련을 했다”며 “그래도 해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실제로 해내니 눈물이 난다”고 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엔 천문봉 바로 아래 천지까지 지프차편으로 올라 기념사진을 찍으며 오후 본격적인 등정을 위해 몸을 풀었다.
해발 8000m급 히말라야 16좌를 모두 오른 엄 대장은 2000년 북한쪽을 통해 백두산에 올랐으나 중국쪽을 통해 등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엄홍길 대장은 “민족의 영산에 장애어린이와 중국동포 어린이들과 오르게 돼 무척 기쁘다”며 “장애어린이 모두가 단 한명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정상에 함께 올라 감격스럽다”고 했다. 엄 대장은 이날 저녁 연변일보가 마련한 뒤풀이 자리에서 장애어린이들의 백두산 등반 성공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것은 한편의 시였다. "한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의 높은 이상과 /천지의 깊은 마음과 /강한 바람같은 열정과 /천지의 얼음같은 냉철함과/ 백두산의 순수한 마음으로 /오늘 이 순간부터 영원토록/ 우리는 도전, 또 도전입니다." 그랬다. 도전하지 않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엄 대장은 “"우리가 등반을 마치니 비가 왔다. 하늘도 우리 산행을 도와주신다. 그건 도전하는 사람만의 특권"이라고 했다. 그는 "한 발 한 발 뗄적마다 포기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고 오르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며 "한 발자욱 한 발자욱들이 모여 마침내 목표를 이루는 것은 산행이나 우리 인생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열한 살 지언이, 두어 해 먼저 태어난 동민이 슬기 범준이가 뚜벅뚜벅 걸어 도달한 그 백두산을 이렇게 읊은 이도 있었다. 이날 행사 진행을 맡은 전문 MC 이영헌씨는 아예 시를 지어 백두산 등정장애아들에게 바친다고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면 하나되는 곳이 있겠지/ 언젠가는 그 언젠가는 하나되는 날이 있겠지/ 나를 위해 너를 위해 우리들의 아들딸 위해/ 비 바람 몰아닥쳐도 폭풍우 휘몰아쳐도/ 언젠가는 언젠가는 우리 손 잡는 날 오겠지/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언젠가는 그 언젠가는 함께 웃는 날 찾아오겠지" 전문 MC의 시는 <백두산에서>란 시는 이렇게 계속된다. "희망과 정성으로 앞만 보고 살아가면/ 언젠가는 그 언젠가는 우리 꿈이 이뤄지겠지/ 모두가 기대하겠지 노래하며 춤을 추겠지/ 우리 마음 하나되는 날 노래하며 춤을 추겠지 천지에서 춤을 추겠지” 엄홍길과 함께 한 2008 백두산 휴먼 트래킹은 참가 장애어린이들은 물론 가족과 이웃들에게 깊은 감동을 던져줬다. 그것은 바로 끝없는 희망의 시작이었다. 도전과 꿈, 영원히, 영원히!
백두산/ 글 이상기 선임기자 amigo@hani.co.kr 사진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