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웹진] 장애우 치아치료 우리가 책임집니다.

서울 종로구 푸르메 나눔 치과. 간호사는 아침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 바쁘고 달력에는 예약
스케줄이 빼곡하다. 나눔 치과에서 자원봉사 하는 10명의 치과의사 중 대표를 맡은 장 원장은
“개원한 지 2주밖에 안됐는데 예약이 많이 밀렸다.”며 분주하게 환자들의 상태를 기록한 차트를
뒤졌다.
장 원장이 장애우 자원봉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푸르메 재단 백경학 이사와의 친분 때문이다.
백 이사는 고교 동창인 장 원장에게 지난 2004년, 푸르메 재단의 숙원사업인 ‘장애우 전문
재활종합병원’ 프로젝트를 이야기하며 도움을 청했고 장 원장은 흔쾌히 후원자로 나서 주었다.
그 후 3년 뒤, 그는 장애우 재활종합병원의 첫 단계로 푸르메 나눔 치과의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에 나서게 되었다.
“재활전문의들의 공통적 의견이 장애우들에게 가장 절실한 게 치과 치료라고 하더군요. 몸이
불편한 장애우들은 칫솔질도 잘못해 수십 년간 치아가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이에 따라
음식을 씹고 소화시키는 기능도 떨어지게 되는 거죠. 영양공급이 잘 안되니 가뜩이나 몸이
불편한 장애우들의 건강이 더 악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사정을 듣게 된 장 원장은 나눔 치과에서 자원봉사 할 제자와 후배 의사 9명을 불러
모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과 오후를 나눠 맡아 진료를 시작했다. 막상

장애우들을 만나 진료를 해 보니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했다.

“입이 잘 벌어지지 않아 20년 넘게 칫솔질도 제대로 못한 환자도 많습니다.
이런 환자들은 대부분 치아가 뿌리까지 삭았어요. 치아 상태도 상태지만

그 고통을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장애우 진료 경험이 별로 없어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청각
장애우의 경우엔 환자의 상태를 일일이 필담으로 알아보느라 문진

시간만 1시간이 넘게 걸린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소년은 어금니가 썩어 턱이 퉁퉁 부은 채 치과를
찾았다. 장 원장은 치료를 위해 드릴을 집어 들었는데, 이 소리를 들은
소년은 당장 진료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달아났다. 소년은 결국 어머니를
비롯한 병원 직원들이 간신히 달래 몇 시간 만에 다시 진료 의자에 눕힌 뒤

팔 다리를 꼭 붙든 뒤에야 겨우 치료를 마칠 수 있었다.

한국의 장애우들은 대부분 정부의 보조를 받는 저소득층이다. 보호자들이 장애우들만
돌보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장애우들의
건강은 방치되고, 특히 치아 관리는 더욱 소홀하게 되는 것이다.
“장애우들은 의사소통도 불편하고 병원의 좁은 공간에서 이동도 자유롭지
못해요. 몸이 쇠약해 마취제나 기타 약물에 거부반응이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장애우들의 치료는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위험한 경우도 많아
일부 치과에서 진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어 더욱 힘듭니다. 그래서인지
병원 개원 후 서울 뿐 아니라 부산, 대구 등 멀리서도 찾아오는 환자들이
많아요.”
푸르메 나눔 치과의 개원에는 장 원장을 비롯한 10명의 치과 전문의들의
자원봉사뿐만 아니라 약 천만 원 상당의 진료 의자를 기증한 배우 안성기 씨를
비롯한 여러 기부자의 도움이 컸다.

그밖에 임플란트나 보철 등에 필요한 재료 등도 협력업체에서 원가로 제공해 준다. 그 결과 나눔 치과는 저소득 장애우의 경우 정상 가격의 40%, 일반 장애우의 경우 70~80%만 받고 진료를 해 준다.

“그러나 300만 원 가까이 하는 진료비의 40%라 해도 100만 원이 넘는 돈입니다. 저소득 장애우들에겐 여전히 부담스러운 돈이죠. 경제적 소득이 전혀 없는데 상태는 외면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할 경우, 무료 치료를 해 드리고 있지만 환자분들 상태가 대부분 이런 경우라서 많이 힘듭니다.”

나눔 치과는 임대료를 비롯한 유지비가 한 달에 천만 원 정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나눔 치과는 ‘푸르메 나눔 치과 100인 후원회’를 꾸리고 있다.
100명이 한 달에 10만 원씩 후원을 해 운영비 천만 원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호응도 좋아 시작 2주 만에 25명이 동참했다. 자원봉사에 동참하고 싶지만 사정상 함께 하지 못하는 치과의사들이 주를 이룬다.

지금 장 원장의 가장 큰 걱정은 재정문제도, 시설 확충도 아니다. 더 많은 치과의사의 동참이 가장 절실하다는 것. 현재 나눔 치과에서 자원봉사하는 치과의사는 1주일에 한 번 3시간 30분씩 돌아가며 진료를 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근무하는 병원의 오전이나 오후 진료시간을 포기하거나 휴일을 반납해가며 장애인 진료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개원 2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예약이 밀리고 있습니다. 특히 환자 한 명 치료에 1시간 이상 소요되다보니 하루에 많아야 10~15명의 환자밖에 못 봅니다. 현재 상근하는 의사가 한 명밖에 없는 상황이라 더욱 그래요. 이대로 한두 달 지나면 환자가 3~4달 이상 기다려야 합니다. 그건 더 이상 치료라고 할 수 없지요. 그렇다고 무리해서 환자를 받는 것은 더욱 무의미한 일이고요.”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재정적인 지원이 늘어나 병원을 늘려도 더 이상 환자의 예약을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장 원장은 궁극적으로 저소득 장애우들이 장애우 전문 재활종합병원에서 무료로 진료 받는 모습을 보는 게 꿈이다.
그리고 그 첫 불씨를 치과에서 시작했다는 것에 자부심도 느낀다. 불씨가 들불로 번지기 위해선 더 많은 ‘바람’이 필요하고, 이 ‘바람’의 역할을 치과의사들이 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치과의사들의 참여도가 높아지면 병원 규모뿐 아니라 세상의 관심도 커질 것이고, 그 결과 기업 등의 대규모 후원도 이어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보통 드라마 등에선 치과의사들이 돈만 밝히는 깍쟁이로 나오잖아요. 나눔 치과를 통해 그런 선입견을 깨는 것도 작은 바람입니다.”
농담을 던지며 사람 좋게 웃는 그의 표정에서 나눌 수 있는 사람들만이 풍기는 여유가 묻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