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장애아 부모들의 지친 가슴 시인의 詩心으로 다독이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13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세종로 KT광화문지사 1층 KT아트홀. 정호승(58) 시인의 시 ‘수선화에게’를 가사로 만든 양희은 씨의 노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가 울려 퍼졌다.
시와 노래가 이어지며 관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푸르메재단(이사장 김성수) 주최로 장애아동 부모들을 위해 마련된 이날 강연회에서 정 시인은 노환으로 시력을 잃게 된 아버지에게 얽힌 일화로 강연을 시작했다.
10년 전 어느 날 정 시인의 아버지는 식탁에 놓인 나팔꽃 씨를 태연하게 입에 털어 넣었다.
화들짝 놀라 말리는 아들에게 ‘환약인 줄 알고 먹었다’며 환하게 웃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정 시인은 한 송이 나팔꽃을 보았다고 했다.
그는 “노인이 되면 누구나 다 장애인이 되는데 여러분의 자녀들은 그때가 조금 빨리 온 것”이라며 “절망적으로 보이는 장애라도 관점을 바꾸면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장애아를 키우며 생기는 ‘마음의 그늘’을 부정하지 말자고 말했다.
“살면서 넘어진다는 것은 곧 여전히 살아있다는 뜻이다. 죽었다면 움직일 수조차 없다. 살아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는 그의 격려에 청중은 박수로 화답했다.
참석자들은 강연이 끝난 뒤에도 정 시인이 낭송한 14편의 시를 보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
다운증후군을 앓는 네 살배기 아들을 둔 우단희(42·여) 씨는 “몸이 불편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마음의 장애를 갖고 살아간다”며 “장애아를 둔 엄마로서 살면서 받은 상처를 위로받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