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일터] 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할아버지 - 푸르메재단 김성수 이사장

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할아버지 - 성공회대 김성수 총장(푸르메재단 이사장)

 

김성수 푸르메재단 이사장
이달의 초대석 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할아버지 - 성공회대 김성수 총장

글)김선화 / 사진)박재우

정신지체인들을 위해 세운 성베드로학교. 이 학교에 들어선 성공회대 김성수 총장에게 어 떻게 알았는지 한 아이가 달려와 힘차고 밝은 목소리로 인사한다. 엄연히 한 대학의 총장이자 한 종교의 주교인데 할아버지라니. 그러나 김 총장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인자한 미소를 지으 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모두다 나를 할아버지라 불러. 성베드로학생 뿐만 아니라 성공회대 학생들도 할아버지라 불러. 이상하지? 다른 학교는 안그러니까. 그런데 난 할아버지란 명칭이 좋아. 아이들과 거리감도 좁혀지고 날 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이잖아.”

확실히 김 총장의 외모는 친할아버지와 같은 친근함이 묻어난다. 그래서일까. 5분 이상 집중하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는 정신지체인들이지만 김 총장에게는 서슴 없이 다가와 이야기를 한다. 장난도 친다. 이처럼 김 총장 의 삶에는 장애인들과 함께 나누는 일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있다.

김 총장의 장애인 사랑은 커다란 시련을 이기고 난 후의 일이다. 그는 농구와 아이스하키를 즐기던 건장한 청년이 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폐결핵 3기 진단을 받았고 그 후로 10여 년 동안 바깥생활과 이별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많 은 이들이 문병을 왔으나 투병생활이 1년, 2년 길어지면서 그를 찾아오는 문병객들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때의 외로움이란.

"누군가에게 잊혀진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야.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어. 그래서 소외받는 이들의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 그 첫걸음이 바로 성베드로학교야."

성베드로학교는 김 총장이 정신지체인들을 위해 성공회 대학교 안에 세운 학교다. 1974년에 개교했으니까 벌써 34년 전 이야기다.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부러워할 정도의 시설을 갖추었고 초, 중,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취업을 위한 교육도 한다.

김 총장은 10년 동안 성베드로교장으로 활동하다 성공회 주교가 되면서 잠시 학교를 떠났다. 그러나 10년 후 다시 성 베드로학교 고문으로서 지금까지 쭉 인연을 맺고 있다.

김 총장은 성베드로학교 고문으로 있으면서 안타까운 점이 하나가 있다고 말한다. "고등교육까지 마치면 졸업식을 하잖아. 그런데 학생들이 졸업식장에 안 나와. 졸업을 하면 갈 데가 없기 때문에 졸업장 받기 싫대. 그냥 끝까지 학교 다닐 거래. 이 말을 들으니까 안타깝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들을 위한 취업장을 만들자고 결심했지."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우리마을'이다. 현재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이 마을은 정신지체인들의 자립과 자활을 목적으로 2003년에 개원했다. 여기서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들은 총 60여 명으로 생활교사 1명과 8명의 장애인이 한 가정을 이룬다. 그 리고 수경재배, 콩나물재배, 느타리버섯재배 등의 작업을 하며 재활교육을 받는다. 가장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작업은 콩나물재배. 시중에 파는 콩나물 중 일부는 우리마을에서 재배된 것들이다.

이밖에도 지역주민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한 사업을 실시하여 장애인들과 별 허물없이 지낼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그러나 우리 마을만으로 모든 장애인들을 수용할 수 없었다.

"우리 마을을 개원한 것은 여기서 일을 한 다음 사회에 나가 재취업을 시킬 목적으로 만든 거야. 그래야 더 많은 장애인들이 일을 하고 취업을 할 수 있지. 그런데 장애인들의 재취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 답답한 노릇이지."

우리 마을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장애인들 대부분이 개원할 때부터 일한 이들이라고 한다. 그만큼 재취업이 어렵다는 말이다. 따라서 김 총장은 또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바로 '장애인 고용을 돕는 모임'을 발족시킨 것이다.

7월부터 활동을 시작할 '장애인 고용을 돕는 모임'은 말 그대로 장애인 고용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재단이다. 여기서 김 총장은 이사장으로서 장애인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독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년이면 난 정년퇴임을 해. 그러면 마누라랑 같이 우리마을로 들어가서 남은 일생을 이 친구들과 함께 지낼 거야. 사람들은 정신지체인들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무서워하지? 하지만 마음을 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해 봐. 그럼 하나하나가 다 예뻐 보여." 유난히 정신지체인들을 좋아하는 김 총장. 그들의 순수한 혼이 좋단다.

그는 말로만 장애인과 함께 하자는 사람들이 야속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그들과 함께 지내려면 우선 마음부터 열고 스스럼없이 다가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며.

장애인과 일터 2007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