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청소년 지킴이' 강 지 원 변호사

[이 사람의 삶]'청소년 지킴이' 강 지 원 변호사

"입시교육 시달리는 청소년 푸른 꿈 펼치도록 돕고 싶어”

‘청소년 지킴이’ 강지원(57) 변호사를 만났다. 2002년 10월 그가 검사 직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봤으니 기자로선 거의    4년여 만이다. 강 변호사는 “청소년 보호 활동에 헌신하겠다”며 검찰을 떠났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일에 대한 의욕과 욕심만큼은 변한 것이 없었다. 변한 것이 있다면 이마와 눈가의 주름살 정도. 그러나 열정이 변하지 않았으니 사람은 변한 것이 아니다. “너무 많은 활동을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자신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었다. 청소년 사업가로, 변호사로, 방송인으로 다양한 인생을 엮어 가니  그럴 만도 했다.

강 변호사는 곧 정색하며 한 가지는 분명하다고 못을 박았다. 본업은 청소년 보호 활동이라고. 그는 불쑥 편지 한 통을 내밀었다. 자신이 변론을 맡은 성폭력 피해자 여학생이 성적표와 함께 보낸 편지라고 했다. 그는 그 편지 속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봤다고 했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면서 공부를 잘하고 있다는 내용인데, 학생이 이제는 다 극복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에게서 항상 느끼는 건 푸근함이다. 선한 인상에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넉넉함이 배어나는 웃음이 트레이드 마크다. 언뜻 보면 그가 검찰 내 특수·공안 분야 등에서 활약한 검사라는 걸 잊게 된다. 그는 사법시험도 수석으로 합격했다. 미래가 보장된 길을 마다하고 청소년 사업에 뛰어든 계기가 궁금할 뿐이다.

“1978년 초임 검사로 부임해 처음 맡은 업무가 소년사범 전담 검사였어요. 처음엔 검사실에 들어오는 비행 청소년이라면 인상부터 고약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보니 그게 아니었지요. 내가 어렸을 때 모습과 다르지 않고, 내가 만났던 친구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그때부터 ‘왜 그럴까’라는 화두를 가지고 고민하게 됐지요. ‘어떻게 하면 청소년 범죄를 처벌 중심에서 선도 중심으로 변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죠.”

1989년 서울보호관찰소장을 맡게 된 게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소장을 하면서 늘 갖고 있던 화두를 풀기 위해 심리학, 정신의학, 정신분석학, 가족학 등 관련 서적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면서 점차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단다. 결국, 청소년 사업을 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았다고.

검사 생활을 그렇게 청산한 것에 일말의 아쉬움도 없었을까. 들려온 답변은 “그렇다”였다. 그는 “24년 공직 생활 중 부장검사, 차장검사, 지청장, 검사장과 같은 감투를 한 번도 쓰지 않고 옷을 벗은 유일한 검사일 것”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청소년 문제를 연구하면서 제가 스스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엄청난 출세주의자가 되어 온갖 아양을 떨었을지도 모르죠.”

그는 요즘도 지칠 줄 모르고 왕성하게 청소년 사업을 하고 있다. 가지고 있는 직함만도 열 개가 넘는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위원장, 위안부박물관 건립위원회 위원장, 사단법인 ‘여성인권을 지원하는 사람들’ 이사장, 장애인재활병원 지원 푸르메 재단 공동대표, 한국정책방송 ‘강지원의 정책 데이트’ 진행자 등.

최근엔 월간 청소년 잡지 ‘큰 바위 얼굴’을 창간했다. 지난 18년 동안 무가지로 발행된 청소년 잡지 ‘주변인의 길’이 지난 4월 재정난으로 발행이 중단되자, 그동안 이 잡지를 후원해 온 강 변호사가 제호를 바꿔 새로운 잡지를 만든 것이다.

“원래 무료 잡지였는데 자금난으로 발간이 중단되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방송 출연료 등을 가지고 시작했지요. 주변에서 많이 도움도 주셨고요.”

“혹시 정치에 뜻이 있는 건 아니냐”고 물어봤다. 처음부터 꼭 물어봐야겠다고 마음에 담아 둔 질문이다. 그는 바로 큰 웃음을 터뜨리며 “인터뷰 때마다 듣는 질문인데 생각 없다”며 단호하게 답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정치에 아무런 뜻이 없는 자신이 기특하다고 말했다. 물론 선거 때나 신당 창당 때마다 정치권에서 요청이 들어온다고 했다. 심지어 생방송 중에 한 중진 의원이 전화를 걸어 설득해 난감한 적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자신의 본업은 청소년 사업일 뿐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제가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하나로 다 연결돼 있어요. 기본은 청소년 사업이고, 청소년 중 절반이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 문제에 관심이 있고, 청소년 10명 중 1명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죠.”

그는 청소년 사업의 목표가 있다면 획일적인 입시 교육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에게 다른 꿈을 품을 수 있는 다양한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 이우승, 사진 송원영 기자

■강지원 변호사는…

▲서울(57) ▲경기고·서울대 정치학과 ▲행시(12회)·사시(18회) 합격 ▲서울보호관찰소장 ▲법무부 관찰과장 ▲사법연수원 교수 ▲청소년보호위원회 초대 위원장 ▲서울고검 검사 ▲청소년인권보호법률지원단장 ▲법률사무소 청지 고문변호사 ▲제6기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위원장 ▲푸르메 재단 공동대표

2006.12.20 (수) 1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