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숨쉬는 굴 맛보세요.

숨쉬는 굴 맛보세요

중앙씨푸드 거제 공장·통영 양식장에서 엿본 겨울철 별미 양식굴의 일생…먹이 주지 않고 플랑크톤 먹고 자라므로 양식-자연산 구별하는 건 ‘편견’

▣ 거제·통영=글·사진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통영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차로 15분쯤 달려 도착한 회사 앞 잔디 마당에는 세 여인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서 있었다. 조형물 앞 바닥에는 ‘굴밭의 여인들’이란 제목과 함께 도예가 한애규씨의 작품임을 알리는 글귀가 붙어 있다. 장석(49) 중앙씨푸드 사장으로부터 테라코타(점토를 구워 기와처럼 만든) 작품이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머리카락 나올라 꽁꽁 싸매라

회사 건물 벽에는 동그라미 4개를 마름모꼴로 배치한 심벌마크와 함께 ‘중앙’이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 1969년 설립된 굴 전문기업인 중앙수산과, 중앙수산의 내수 부문을 1998년 별도 법인으로 독립시킨 중앙씨푸드(www.singsings.co.kr)를 아우르는 표식이다. 중앙수산 시절부터 회사는 줄곧 이곳 경남 거제시 둔덕면 어구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단다.

△ 굴조개가 바다 위로 끌어올려져 번식, 선별을 거쳐 포장되기까지는 만 하루밖에 걸리지 않는다. 굴조개에서 속살을 발라내는 박신 과정.

사무실로 안내한 고덕열 중앙씨푸드 생산총괄 이사는 “‘박신’ 과정부터 한번 둘러보자”며 흰색 위생복을 꺼내왔다. 박신(剝身)은 굴의 껍질을 벗기는 일을 뜻하는 말이다. 위생복으로 갈아입은 뒤 귀와 머리 뒷부분을 완전히 뒤덮는 모자를 쓰기에 앞서 머리를 꽁꽁 싸매는 두 겹의 그물망을 미리 덮어써야 했다. 굴 제품에서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나올 수 없도록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모자 착용에 이어 머리 뒤로 끈을 묶는 마스크까지 쓰고 났더니 꼭 반도체 공장의 연구원 같았다.

작업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위생복 착용 뒤에도 여러 관문을 넘어야 한다. 2명이 들어서면 꽉 차는 공간에서 세찬 바람을 뿜어 먼지를 털어내는 ‘에어 샤워실’을 지나야 하고 슬리퍼를 장화로 갈아신어야 한다. 200ppm 농도의 염소 소독물을 풀어놓은 물 웅덩이를 지나기 위해서다. 고 이사는 “세균을 없애기 위해 작업장 입구마다 염소 소독조를 설치해두고 있다”고 했다. 이런 까다로운 위생조건 덕에 중앙씨푸드는 2004년 국내 농수산업계로는 처음으로 국제표준화기구(ISO) 14001(환경경영시스템) 인증을 받았다.

‘박신장’이라고 쓰여 있는 작업장에 들어서자 50명 안팎의 여성들이 작업대를 사이에 두고 기다랗게 줄지어 일에 열중해 있었다. 떡처럼 뭉쳐 있는 굴조개를 하나씩 떼어낸 뒤 칼로 조개 입을 벌려 속살을 발라내는 손놀림이 능숙해 보였다.

이곳 박신장의 작업대에 오르기까지 굴은 기나긴 여정을 거친다. 굴 양식의 첫 단계는 굴 껍질을 수집하는 일이다. 이매패(二枚貝)인 굴조개의 껍질은 납작한 우각과 둥근 모양의 좌각으로 이뤄져 있는데, 우각은 분쇄돼 버려지며 좌각은 굴의 어린 유생을 부착시키는 데 쓰인다. 좌각에는 구멍을 뚫어 ‘연사’(나일론 실)로 60개 정도를 엇갈리게 엮는다. 이 과정을 ‘공각(빈 껍질) 조립’이라고 부르며, 보통 4~5월에 시작해 수확목표 시기에 따라 9월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중앙씨푸드 마당 한쪽에선 못쓰는 굴 조개껍질을 분쇄하고 있었고, 뒷마당에는 양식 과정에서 재활용할 좌각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공각 조립-채묘-수하-수확-박신-선별 포장

공각 조립 뒤에는 채묘 과정이 이어진다. 조류를 타고 이동하는 유생(어린 굴)이 껍질에 부착하도록 조립된 공각을 바다에 담그는 일이다. 공각 하나하나에 들러붙는 유생은 50~100개씩에 이른다고 한다. 이 유생을 모두 어른 굴로 키우는 건 아니고 단련(생장 억제) 과정을 거쳐 대거 골라낸다. 10~12월 겨울 동안 어린 굴을 조수간만의 차가 있는 해안에 매달아 약한 것은 탈락시키킨다.

△ 중앙씨푸드는 1960년대부터 굴 양식업을 주도해온 중앙수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아씨푸드의 브랜드 제품(왼쪽)과 장석 사장.

단련을 거친 유생은 내년 봄 ‘수하’(垂下·아래로 길게 늘어뜨리는) 과정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장 사장은 이 과정을 농사에 빗대 ‘모내기’라고 불렀다. 중앙씨푸드는 수하를 위한 자체 양식장을 확보하고 있다. 면적 20ha에 이르는 중앙씨푸드의 양식장은 남해안 일대에 퍼져 있는 수출용 패류생산 지정 청정해역 7곳 가운데 1호인 거제~한산만 해역에 자리잡고 있다.

수하된 굴 유생은 플랑크톤을 먹고 살기 때문에 사람이 따로 먹이를 줄 필요가 없다. 통상적인 의미의 양식과는 다른 셈이다. 따라서 굴에선 자연산과 양식을 구분하는 게 별 의미가 없다고 한다. 국내 유일의 굴 생산자 조합인 굴수하식수산업협동조합의 이종훈 이사는 “미국이나 유럽에선 ‘양식’(culture)이란 말이 잘 관리돼 생산된다는 좋은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반면, 우리나라에선 자연산과 상대되는 나쁜 뜻으로 여겨지곤 한다”며 “적어도 굴에 관한 한 이는 잘못된 편견”이라고 말했다.

배를 얻어타고 통영 앞바다로 나가봤더니 바다 곳곳에 원통 모양의 스티로폼 부표가 하얗게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수하된 어린 굴이 플랑크톤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현장이다. 한창 굴을 수확 중인 양식장도 몇몇 눈에 띄었다. 지난해 채묘 과정을 거쳐 올봄에 수하돼 이제 수확기에 이른 것이다. 배 위의 인부들이 부표를 걷어올리면서 줄을 잡아당기자 다닥다닥 붙은 굴조개 덩어리가 따라올라왔다. 조개 덩어리는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배에 차곡차곡 실렸다. 배에 실린 굴조개 덩어리는 작업장으로 옮겨져 박신장의 작업대에 올려질 것이다.

박신을 거친 굴은 원료보관실로 옮겨져 0℃의 해수(바닷물)통에 담긴다. 세척과 선별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세척에 쓰이는 물은 청정해역에서 끌어오는 바닷물이라고 한다. 선별은 홍합이나 새우 같은 이물질을 골라내는 일이다. 파치(눈이 없거나 흠이 난 굴)를 골라내는 일도 선별 과정에서 중요한 과제다. 세척과 선별을 마친 굴은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자동 포장기계로 이동한다. 포장기계는 비닐봉지를 빨아들이는 동시에 재빠르게 유통기한(6~7일 앞 날짜)을 찍어 해수와 함께 굴을 용기에 담아낸다. 중앙씨푸드에선 150g의 봉지굴과 250g 중량의 트레이(사각형 플라스틱 접시)굴을 만들어내고 있다. 굴 용기에는 ‘숨굴’이란 브랜드명이 붙어 있었다. 소포장된 굴을 30개 단위로 묶어 스티로품 상자에 얼음과 함께 담아내면 굴 생산 과정은 모두 끝난다. 이제 굴은 대형 할인점을 비롯한 소매 과정을 거쳐 소비자들의 식탁에 오르는 일만 남았다. 굴을 수확해 마지막 포장하는 일은 만 하루 만에 다 끝난다.

중앙씨푸드에서 내보내는 굴은 한 해 1천t에 이른다. 중앙수산을 통해 미국, 일본으로 수출되는 물량도 이와 비슷하다. 한때는 수출 물량이 80%에 이를 정도였는데, 지금은 반반씩이라고 한다. 한 해 147억원(2005년)에 이르는 중앙씨푸드의 매출 대부분은 굴에서 비롯된다.

중앙씨푸드는 ‘숨굴’ 브랜드로 생굴뿐 아니라 냉동, 튀김, 무침, 반각(한쪽 껍질만 떼어낸 석화) 굴 제품을 아울러 선보이고 있다. 굴까기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각굴과 반각굴, 굴칼, 레몬을 함께 포장한 ‘숨굴파티’도 있다. 형인 장욱 중앙수산 사장과 함께 대를 이어 굴 경영을 하고 있는 장 사장은 굴의 품질을 높이고 브랜화하는 데서 더 나아가 굴 생산 과정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하면 ‘주말농장’을 바다에 실현하는 ‘주말어장’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장 사장은 웃었다.

생산 과정 경험하는 주말어장 준비 중

장 사장은 경기 분당의 대안학교 ‘이우’ 이사장과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의 이사를 맡을 정도로 오지랖이 넓다. 장애인 재활전문 병원 설립을 위해 만들어진 푸르메재단에 수익금의 1%를 기부하기로 먼저 제안하는 따뜻함도 갖춘 장 사장은 요즘 2주일에 한 번씩 백두대간 종주를 이어가고 있는 산악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