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당신이 끈이 돼주니 ‘나도 말아톤’
당신이 끈이 돼주니 ‘나도 말아톤’
“형, 너무 힘들어. 못 가겠어.”
“여기서 포기하면 안 돼. 그럼 조금만 쉬었다 달리자.”
3일 2006 싱가포르국제마라톤 풀코스에 출전한 시각장애인 차승우(42) 씨와 레이스 도우미 전천구(43·에쓰오일) 씨는 30km 지점에서 중대 고비를 맞았다. 1일 인천공항에서부터 ‘실과 바늘’처럼 함께 붙어 다니며 절친한 형이 된 전 씨는 “여기서 포기하면 절대 안 된다. 걸어서라도 가자”며 차 씨를 도로 곁에 앉힌 뒤 5분 정도 쉬었다 다시 뛰었다. 차 씨가 고통을 호소할 때마다 껴안고 “너는 할 수 있다”를 수십 번 반복했다.
4시간 46분. 목표로 했던 4시간 30분대 기록은 깨지 못했지만 둘 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차 씨는 “그동안 풀코스를 24번 완주했지만 오늘이 가장 행복해요. 천구 형이 없었다면 완주 못했을 거예요”라며 활짝 웃었다. 풀코스 최고기록 2시간 53분 54초로 동아마라톤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린 ‘베테랑’ 전 씨와 최고기록 3시간 50분의 차 씨를 연결한 고리는 60cm의 끈. 각자의 한쪽 팔에 끈을 묶고 차 씨의 페이스에 맞춰 빨리 달려도 늦게 달려도 안 되게 페이스를 조절했다. 장애물이 나오거나 방향이 바뀔 때는 큰 소리로 외쳤다. 난생처음 본 둘은 끈을 통해 끈끈한 우정을 쌓았고. 이제 서로를 평생 돕는 사이가 되기로 약속했다. 레이스를 마친 차승우(왼쪽) 씨와 전천구 씨.
장애인 재활전문병원 설립을 위해 만든 푸르메재단이 에쓰오일㈜의 후원을 받아 ‘삶을 포기하고 힘들어하는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마련한 이번 해외 마라톤 출전 행사에는 시청각 및 지체장애인 8명이 출전해 ‘희망의 레이스’를 펼쳤다.
싱가포르=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