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아픔 경험 백경학씨 부부 재활전문병원 위한 재단 설립 [조선일보] 2004-08-16
[조선일보 이지혜 기자]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된 아내의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뛰다 재활전문병원 설립을 위한 재단까지 만든 이가 있다. 17일 발족하는 ‘푸르메 재단’의 주역인 백경학(41·옥토버훼스트 대표)씨가 그 주인공. “병원에서 목발 짚고 걷는 연습을 하다가 사람들에게 부딪혀 넘어지곤 하는 아내를 보면서 결심했지요.”
“내가 겪은 재활의 고통, 남들은 덜 겪도록”
재단의 시작은 독일에서 연수하던 98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씨와 아내 황혜경(39)씨는 영국으로 여행을 갔다가
큰 사고를 당했다. 두통약을 먹고 정신을 잃은 한 운전자가 시속 100㎞가 넘는 속도로 백씨 자동차를 뒤에서 들이받는 바람에 아내 황씨가 크게 다친 것.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황씨는 결국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영국 병원 시설은 사실 무척 낡았어요. 하지만 저를 껴안으며 ‘당신 아내는 꼭 살아날 거다’라고 위로를 아끼지 않던 의료진을 잊을 수가 없어요.”
환자의 아픔을 인간적으로 이해하는 전문병원이 꼭 필요
문제는 귀국한 뒤였다. 99년 귀국해 서울 한 대학병원 재활전문센터에서 치료를 계속했지만 말 통하는 한국의 병원에서 지내는 게 더 힘들었다. 간병인제도 등 여러 간호시스템이 미비한 탓에 방문객들이 수시로 들락날락거리며 북새통을 이뤘고, 환자 가족들이 병원에다 살림을 차리고 매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백씨는 ‘환자의 아픔을 인간적으로 이해하는’ 전문병원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일간지 기자로 일하던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맥주사업을 벌였고, 거기서 모은 돈과 사고 보상금으로 받은 3억원을 재활전문병원 건립을 위해 내놓았다.
이 재단에는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 박원순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김성구 샘터사 사장 등이 동참했다. 푸르메 재단은 일반시민 및 기업 회원을 대상으로 100억원 기금조성 운동을 벌여 우선 서울 근교에 2007년 말까지 150병상 규모의 전문 병원을 세울 계획이다. 병원은 철저히 자원봉사자 위주로 운영할 예정이다. 백씨는 “우리 부부가 겪은 아픔과 좌절을 다른 장애인 가족들에게서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지혜기자 wigrac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