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 피어난 건강한 미소 - 푸르메재단·서울의료원 해외의료활동

“밍글라바!”

두 손을 합장한 채 인사를 건네는 주민들의 환대를 받으며 도착한 곳. 한 평 남짓 대나무로 얼기설기 지어진 좁은 집들이 빽빽이 늘어서 있습니다. 태풍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집단으로 이주해 형성된 무허가 단지, 미얀마 양곤 흘라잉따야 떼귄 지역에 푸르메재단과 서울의료원의 ‘무료 진료소’가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치과, 재활의학과, 감염내과, 외과, 소화기내과, 순환기내과 의료진으로 구성된 의료활동단이 주민들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 의료활동단의 치과치료를 받고 환하게 웃고 있는 미얀마 양곤 흘라잉따야 떼귄 지역 주민.


“어디가 불편하세요?”


지난 9월 10일~13일, 무료 진료소가 차려진 사원으로 구름떼처럼 주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의료활동단이 진료 장비와 의약품을 진열하기 훨씬 전, 이른 아침부터 떼귄 마을과 BOC, 미쿼제이 등 인근의 여러 마을에서 와서 기다린 것입니다.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빠듯한 나머지 자기 몸을 돌볼 여력이 없고 마을 보건소가 멀리 있는 탓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주민들. 젖먹이 아이부터 허리 굽은 노인까지 진료 접수를 마친 주민들은 대기 번호표를 받았습니다. 문진표를 토대로 혈압과 혈당 등을 체크받은 후에는 증상에 맞는 진료과로 안내되었습니다.




▲ 이른 아침부터 진료 접수를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는 미얀마 주민들.


스님이 머무는 사원 안에 간이 테이블로 꾸며진 각 진료과의 의료진을 만나자 몸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주민들의 입 안을 살피고, 초음파 검사를 하고, 가슴에 청진기를 대보며 꼼꼼히 진료하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나가 있습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만큼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아픈지 묻고 파악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오래 살았던 통역가의 도움이 몹시도 요긴했습니다.


깨끗한 치아로 오복의 기쁨을


치과에서는 충치 치료와 스켈링을 진행했습니다. 서너 명이 곁에서 몸을 숙여 랜턴을 비추고 석션을 했습니다. 미얀마 어린이에게도 치과는 역시 무서운 곳인가 봅니다. 엄마 손 붙잡고 온 5살 윤윤이는 한국에서 가져온 비장의 간식에도 울음을 그칠 줄 몰랐습니다. 치아를 하나씩 만지며 아프냐고 물으며 아이를 달랜 끝에 마취와 치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 이가 아파 치과를 찾은 어린이의 치아를 꼼꼼히 살피고 있는 의료활동단.


구취 때문에 치과를 찾은 9살 윈체우에게 필요한 치료는 발치. 의료진은 진료 기구에서 바람 소리 난다며 귀띔해주고 “충치 있으면 아프니까 양치질 잘 하세요. 그래야 튼튼한 어른 이가 나요”라고 알려주며 치료를 했습니다. 이가 아파서 입을 벌리는 것조차 힘들었다는 모산다 씨는 치료 후 “이제 씹는 것도 한결 편해지고 좋아졌어요”라며 무척 고마워했습니다.




▲ 구슬땀을 흘리며 충치 치료를 진행하고 있는 의료활동단.


주민들의 구강 상태는 심각한 편이었습니다. 치통을 느끼지 않는 이상 치과치료의 필요성을 잘 몰랐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엉망인 주민이 대다수. 특히, 미얀마인들이 즐겨 씹는 담배인 꽁 때문에 진땀을 빼야 했습니다. 단단히 달라붙은 치석 제거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당 스켈러 물통 2개를 매번 비워야 할 정도로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깨끗한 치아를 되찾은 주민들의 가벼워진 발걸음을 보니 뿌듯했습니다.




▲ 치석을 정성껏 제거하고 있는 모습(왼쪽), 스켈링을 받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미얀마 주민들(오른쪽).


올바른 양치법 교육과 함께 충치를 예방하기 위한 불소도포를 진행했습니다. 치아 보호막을 씌워주는 약을 치아불소도포용트레이에 발라 아이들의 입에 쏘옥 넣었습니다. 트레이 120여 개가 금세 바닥났습니다. 4분 후에 뱉으라는 의료진의 당부에 천진난만하게 뛰어 놀던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주었습니다.




▲ 미얀마 어린이의 치아 건강을 위해 불소도포를 하고 있는 의료활동단.


간혹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단시간에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다보니 이동용 진료장비가 과열되어 고장이 나버린 것. 이를 지켜보던 미얀마 치과의사가 장비를 공수해준 덕분에 치료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미얀마 주민들의 ‘친절 주치의’


뇌병변장애를 가진 어린이가 재활의학과를 찾았습니다. 말하고 걷고 일어서는 게 힘겨운 아이는 병원을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건강 상태를 파악한 후 두 다리가 비쩍 마른 아이에게 내려진 처방은 충분한 영양 섭취. 형편이 어려운 가족에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건강한 성장의 밑거름으로서 우선되어야 하는 일임을 되새겨주었습니다.




▲ 재활의학과를 찾은 몸이 불편한 어린이와 가족에게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자전거를 타다 떨어져 팔이 부러진 남자 아이가 외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간단한 깁스만 한 채 일주일을 방치한 탓에 당장 병원에서 수술이 필요한 상황. 탈장이 됐거나 골절상을 입은 다른 주민들과 함께 흘라잉따야 도립종합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기로 했습니다. 붉은 발진과 열이 나서 급히 내과를 찾은 여자 아이에게는 수두를 가라앉히는 약을 처방하니 그제야 부모도 안심하는 기색이었습니다.




▲ 갓난아기의 몸 상태를 청진기로 살피고 있는 의료활동단.


가슴이 답답해서 순환기내과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의료진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여러 원인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심근경색이나 협심증처럼 심각한 질환이 의심되는 주민들에게 약 처방은 물론, 평소에 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운동 요법을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 초음파 검사로 갑상선암이 의심되는 주민을 진단하는 모습(왼쪽),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되는 스트레칭을 알려주고 있는 모습(오른쪽).


‘한 명이라도 더!’ 무더위에도 계속된 진료 나눔  


오전에는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더니 오후에는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옆 사람의 말소리가 묻힐 정도로 무섭게 퍼붓는 빗소리에 진료도 잠시 중단.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자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을 새도 없이 손길이 다시 바빠졌습니다. 밀려드는 환자를 보느라 탈진한 몇몇 의료진은 수액 주사를 맞아가면서까지 진료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 푸르메재단과 서울의료원의 의료활동단에 함께한 관계자들이 미얀마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기념촬영.


무료 진료소를 다녀간 미얀마 양곤 흘라잉따야 떼귄 지역 주민 1,100여 명. 이번 의료활동은 주민과 의료진의 다리가 되어준 통역가를 비롯해 빰뾸렛 등 지역 단체와 의료 기관 등의 협력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현지 활동가는 “주민들이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고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알게 된 계기”라고 말했습니다.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주민들의 얼굴에 번졌던 환한 미소를 떠올려봅니다. 의료 혜택에서 소외되어온 이들이 건강을 되찾아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푸르메재단과 서울의료원이 함께하는 미얀마 해외의료활동은 대한항공, LG생활건강, 동화약품, 대웅제약, 큰빛안경선교회, 다사랑공익의료발전후원회에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글, 사진= 정담빈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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