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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축구는 내 운명

[6월 특집] 시각장애인 축구 현장, ‘소차사’ 박명수 회장
‘소리를 차는 사람들(소차사)’을 아시나요? 앞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축구를 하겠냐는 편견을 보기 좋게 차버리고, 소리로 공을 주고받으며 축구를 즐기는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축구동호회입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국내외 대회는 모두 여기 출신 국가대표들이 뛰었을 정도로, ‘소차사’는 시각장애인 축구의 역사를 써 내려 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국가대표로, 주장으로 여러 역할을 도맡으며 ‘소차사’를 든든하게 지켜 온 버팀목이 있습니다. 시각장애 1급인 박명수 회장을 만났습니다.

‘소리를 찾는 사람들’ 축구동호회 박명수 회장
‘소리를 찾는 사람들’ 축구동호회 박명수 회장
시각장애인 축구를 시작하다

조약돌을 넣은 돼지 저금통으로 축구를 하던 서울맹학교 출신 선후배들은 2000년 ‘소차사’를 결성하기에 이릅니다. 이로써 축구를 좋아하는 시각장애인들은 세계시각장애인축구대회에 출전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경기, 인천, 기타 지역을 모두 포괄하는 동호회 성격이었지만, 정기적인 모임과 훈련으로 국가대표에도 발탁되면서 점차 시각장애인 축구의 저변을 넓혀 가게 된 것입니다.

박명수 회장은 “국내대회는 장애인체전, 전국시각장애인축구대회 등 너무 많아서 다 기억하기 힘들 정도고 국제대회는 아시안컵, 장애인올림픽, 월드컵과 같은 시각장애인세계선수권대회를 꼽을 수 있어요.”며 베테랑답게 숱한 대회 경험을 떠올립니다.

작년 3월,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은 서울에 거주하는 소차사 회원들로 구성된 축구단 ‘프라미스랜드’를 창단했습니다. “소차사가 큰 틀의 집합이라고 하면 프라미스랜드는 소차사에 소속되어 함께 운동을 하는 교집합과 같습니다.”라고 설명하는 박명수 회장은 프라미스랜드 선수이기도 합니다.  프라미스랜드에 등록된 선수는 필드플레이어, 골키퍼, 감독, 골가이드 등을 포함해 8명입니다. 선수들은 둘째 주, 넷째 주 토요일에 모여 축구를 하고 있습니다.

생애 첫 골 그리고 잊지 못할 상처 

오랜 세월 축구선수로 뛰는 동안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무엇일까요. “베이징올림픽에서 영국과 예선전 시작하고 5분 정도 되었을까. 거구의 선수와 부딪혀 뇌진탕이 와서 다음 경기를 못 뛰었어요. 엄청 고생했죠. 뙤약볕에서 고되게 훈련을 했는데 어이없게 다쳤으니 너무 아쉬웠어요.” 마지막 올림픽 출전이라 생각하고 나갔던 대회여서 그런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물론 벅찬 감동의 순간도 있습니다. “처음 나갔던 국제대회에서 일본과의 경기에서 우연찮게 골을 넣었을 때는 온 몸이 짜릿했죠.”

2008년 베이징장애인올림픽에서 영국과 예선전을 시작하기 전. 눈가리개를 하고 9번을 단 선수가 박명수 회장
2008년 베이징장애인올림픽에서 영국과 예선전을 시작하기 전. 눈가리개를 하고 9번을 단 선수가 박명수 회장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막상 경기를 뛸 때는 장애를 느끼지 않지만 소차사를 운영하는 일에서는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시각장애인에게 힘든 것 중 하나가 정보접근성이에요. 필드에서 뛰는 선수들이 생생한 현장 소식을 남기고 사진도 올려주면 좋은데 그게 어려우니까요.”

박명수 회장은 소차사 회원들에게 약속했습니다. 자원봉사자가 없어서 축구를 못하는 경우는 생기지 않도록 하겠노라고. 그래서 올해 자원봉사자를 모집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놓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자원봉사자가 있으면 사진을 촬영해 올리고 선수 프로필을 만드는 등의 작업을 원만히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7년 전부터 골키퍼를 맡아주며 20대를 시각장애인 축구와 함께 해온 자원봉사자 친구가 있지만, 한 사람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잖아요. 꾸준히 자원봉사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절실합니다.”

시각장애인 선수에게 ‘소속팀’이란

박명수 회장은 소속팀이 있어야 하는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소속이 없는 상태에서 대회에 나가려면 골키퍼도 구해야 하고 여러 어려움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프라미스랜드처럼 소속팀이 있으면 선수를 찾아 헤맬 필요도 없고, 정 힘들면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 직원한테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지요. 지원받는 걸 떠나서 아무 걱정 없이 온전히 대회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해요.”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 프라미스랜드 이형주 감독(사진 왼쪽)과 박명수 회장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 프라미스랜드 이형주 감독(사진 왼쪽)과 박명수 회장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리고 “스페인, 브라질, 영국 같은 축구강국들은 일반 축구팀 산하에 장애인축구팀이 있어서 조직적으로 운영되고 리그전도 하죠.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축구가 좋아서 자율적으로 하는 동호회만 있을 뿐 그 이상으로 체계화된 조직이 없어요.”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프라미스랜드를 운영하는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 이형주 감독은 “각자 업무들이 있다 보니까 체계적으로 움직이기 힘들어요. 최종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소속을 갖고 직업화해서 지원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시각장애인 선수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축구를 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지길 희망합니다.

또 다른 꿈, 장애인 고용을 공부하는 축구선수

오랜 세월 함께하며 축구가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지만 “축구선수로서의 꿈은 없다.”며 박명수 회장은 덤덤하게 말합니다. 그 대신 다치지 않고 오래도록 운동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소박한 꿈을 이야기합니다.

2004 아테네장애인올림픽에서 국가대표 선수단이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머리 위로 공을 들고 앉아있는 선수가 박명수 회장
2004 아테네장애인올림픽에서 국가대표 선수단이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머리 위로 공을 들고 앉아있는 선수가 박명수 회장
박명수 회장은 현재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 점역출판팀에서 교정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입니다. 또한 학사와 석사 모두 사회복지를 전공한 그는 장애인 고용이라는 주제를 박사과정에서 심도 있게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구파이기도 합니다. “나를 위해서도 꼭 하고 싶습니다. 나부터가 장애인 고용 대상자이니까요. 많은 장애인들이 고용에서 차별을 당해요. 장애인들이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그 분야의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올해도 소차사는 바쁠 예정입니다. 6월에는 울산전국대회, 7월에는 전국장애인축구선수권대회, 하반기에는 전국장애인체전,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그리고 프라미스랜드 이름으로 여는 축구대회까지. 앞은 볼 수 없지만 축구에 대한 사랑 하나만으로 가슴이 뛸 사람들. 환호하고 응원하는 비장애인으로 가득 찬 경기장 풍경을 그려 봅니다.

*글= 정담빈 간사 (홍보사업팀)
*사진= 정담빈 간사 (홍보사업팀)
소차사 제공 cafe.daum.net/2002s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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