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에서 보물찾기

<9월의 푸르메 기획강연 공共유有 후기>


 


우리 동네 이야기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번잡한 도심 속 사람 사는 냄새가 느껴지는 곳이면 더욱 그렇습니다. 여기, 태어난 곳에서 삼십 년 넘게 살며 사람과 공간을 이야기하고 기록해 나가는 특별한 사람이 있습니다. 서촌 토박이 설재우 작가입니다.


서촌의 터줏대감 설재우 작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서촌의 매력을 알려나가고 있습니다.
서촌의 터줏대감 설재우 작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서촌의 매력을 알려나가고 있습니다.

동네 지킴이 설재우가 사랑한 서촌


그와의 인연은 지난 4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맙게도 그는 직접 재단을 찾아와 자신의 책 ‘서촌방향’의 인세를 기부했습니다. 그런 그를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문턱에 푸르메 기획강연 공유 9월 강연자로 모셨습니다. 일상에서 보물을 찾듯 삶의 의미를 발견해가는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입니다.


푸르메 기획강연 공유의 두 번째 시간. 대학생, 동네 주민, 재단 기부자 등 서촌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푸르메 기획강연 공유의 두 번째 시간. 대학생, 동네 주민, 재단 기부자 등 서촌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는 작가이자 문화해설사이고 칼럼니스트이자 블로그 운영자로서 여러 역할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과연 서촌은 어떤 곳이고 왜 서촌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재미있게 풀어 나갔습니다.


서촌은 인왕산과 경복궁 사이,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대를 일컫습니다. 서촌도 북촌처럼 그 기원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데, 15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골목 하나만 넘어가면 동네만의 고유한 특색을 발견할 수 있는 신기한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신교동에 있는 푸르메재단에서 걸어가다 보면 누상동, 필운동, 사직동, 옥인동 등이 정겹게 인사를 건넵니다.


서촌의 오래된 골목, 오래된 이야기


그가 말하는 서촌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먼저 풍성한 볼거리가 숨어 있는 골목길입니다. 오랜 세월의 흔적과 새로운 변화가 공존하고 있지요. 경복궁과 청와대 옆에 자리하고 있어서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이는 바람에 오래 된 한옥들이 그대로 보존되었습니다. 그런 정취에 반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습니다. 이 곳에는 시멘트가 깔린 대로보다는 꼬불꼬불한 골목길에서 숨바꼭질 하듯 한참을 헤맬 때만이 느낄 수 있는 묘미가 있습니다.


서촌은 유명한 예술가들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합니다. 겸재 정선은 인왕산을 배경으로 ‘인왕제색도’를 완성시켰다고 합니다. 그의 그림 속에는 수성동계곡이 흐르고 있습니다.


추억의 서촌 사진들을 모아 현재의 위치에 갖다 놓고 사진을 찍어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살펴보는 ‘서촌을 보는 창(窓)’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효자동 70-1번지의 모습.
추억의 서촌 사진들을 모아 현재의 위치에 갖다 놓고 사진을 찍어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살펴보는 ‘서촌을 보는 창(窓)’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효자동 70-1번지의 모습.

서촌의 또 다른 매력은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소소한 이야기입니다. 동네가 오래 되다 보니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어디에 누가 살고 누구네 숟가락은 몇 개인지 등 사소하리만치 작아 보이는 이야기들이 모이면 그 동네에만 있는 특별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겠지요. 설재우 작가는 유년시절의 추억이 깃든 낡은 오락실을 인수해 서촌 가이드 역할을 하는 ‘옥인상점’을 열고 주민들과 방문자들을 위한 서촌 소식지 ‘서촌라이프’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이야기가 갖는 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물을 건져 올리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집니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서촌을 알리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그는 동네 구석구석을 발견하고 기록해서 알리는 활동은 일상에서 보물을 찾는 것과 같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늦기 전에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퇴사 후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날아가 자본과 개발로 무장한 관광지와는 달리 지역의 문화가 훼손되지 않도록 현지인의 삶을 보존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미국 콜로라도의 ‘테터드 커버 북스토어’라는 동네서점이 40년 넘게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운영되고 있는 마법을 경험합니다. 유학시절 잘 알려진 지역명소에만 관광객이 쏠리는 현상이 안타까웠습니다. 철저히 동네 주민들이 좋아하는 식당, 작은 가게, 이야기를 엮은 독특한 동네안내서 ‘위어드 플로리다’를 발견한 것이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소중한 경험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지금의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과 이 곳을 사랑하는 모두를 위한 책 ‘서촌방향’이 탄생한 배경도 그의 경험과 맞닿아 있습니다.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과 이 곳을 사랑하는 모두를 위한 책 ‘서촌방향’이 탄생한 배경도 그의 경험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서촌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저마다 자신이 사는 동네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 줍니다. 그것은 무심코 지나가는 일상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새롭게 포착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가 들려준 옥인동 빨간 우체통 이야기를 통해 일상을 재발견하는 그의 따뜻한 안목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우체통이 비어 있어 철거 위기에 놓인 우체통이 많아진 요즘 옥인동 우체통은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답니다. 맹학교에서 일하는 시각장애인 선생님이 제자를 위해 점자책을 보내주고 있었고, 선생님의 요청으로 그 우체통만은 사라질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이처럼 숨겨진 사연을 끄집어내 청중의 마음을 감동으로 적셔 주었습니다.


서촌을 한마디로 정의해달라는 청중의 질문에 그는 소소한 즐거움이 가득한 보물상자같은 동네라고 답했습니다.
서촌을 한마디로 정의해달라는 청중의 질문에 그는 소소한 즐거움이 가득한 보물상자같은 동네라고 답했습니다.

자본이 비집고 들어서면서 상업화되어 가는 지역을 볼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사라져가는 자취를 붙들고 싶어서 그는 오늘도 동네에 말을 걸며 꼼꼼하게 기록해 가고 있습니다. 그가 바라듯이 두 살배기 그의 아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서촌의 사람, 공간, 이야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장소의 혼과 장소감을 훼손하는 세계는 어떤 식으로든 빈곤해진다’라는 에드워드 랠프의 말을 인용해, 서촌뿐만 아니라 매력이 살아있는 동네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장소의 혼과 장소감을 훼손하는 세계는 어떤 식으로든 빈곤해진다’라는 에드워드 랠프의 말을 인용해, 서촌뿐만 아니라 매력이 살아있는 동네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는 진정 타고난 이야기꾼인 것 같습니다. 이번 강연에는 서촌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분부터 재단 기부자, 대학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 평소 재능기부로 캐리커쳐를 그리는 목석애 화백이 함께 하며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작가의 모습을 그에게 그려주기도 했습니다.


행복은 지금 여기에


‘사람은 집을 닮고, 집은 동네를 닮고, 동네는 뒷산을 닮는다.’라는 어느 책의 구절이 떠오릅니다. 설재우 작가는 ‘서촌다운’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문방구 앞 뽑기 기계에 든 알록달록한 작은 장난감처럼, 다음엔 어떤 소소한 추억을 뽑게 될지 기대됩니다. 서촌 또한 그로 인해 다시 살아납니다. 동네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싶다는 그를 통해 많은 이들이 서촌의 속살과 마주하니까요.


설재우 작가의 모습을 그려 선물한 목석애 화백(왼쪽), 설재우 작가의 활동영상을 재능기부로 제작한 상명대학교 사진학과 학생들(오른쪽)
설재우 작가의 모습을 그려 선물한 목석애 화백(왼쪽), 설재우 작가의 활동영상을 재능기부로 제작한 상명대학교 사진학과 학생들(오른쪽)

[caption id="" align="alignnone" width="669"]서촌을 주제로 보물같은 귀한 인연을 맺은 사람들. 다음에는 설재우 작가가 진행하는 ‘서촌공정답사’에서 또 만나게 되길 기대합니다. 서촌을 주제로 보물같은 귀한 인연을 맺은 사람들. 다음에는 설재우 작가가 진행하는 ‘서촌공정답사’에서 또 만나게 되길 기대합니다.[/caption]지금 있는 자리에서 보물찾기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푸르메재단도 신교동 66번지에서 장애어린이와 그 가족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보물창고로 기억된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입니다. ‘옥인상점’에서 서촌을 알리고 ‘서촌공정답사’ 안내자가 되어 주며 언제까지고 ‘서촌유랑’을 다닐 그의 행보를 가까이에서 응원하겠습니다.



*푸르메재단 기획강연 공共유有는 2013년 8월부터 매월 두 번째 화요일 다양한 주제로 열립니다. 기부자들과 지역주민들을 위한 지식을 공유하고 소통을 이어나가는 인문강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글, 사진= 정담빈 간사 (홍보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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