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수 없는 희망의 레이스

“지금 은총이 아빠가 은총이 보트에 바람을 넣고 있습니다!”

아침 일곱시, 한참 달콤한 꿈나라에서 막판 스퍼트를 하고 있을 느긋한 시간. 여주 이포보에 도착하자 장내 아나운서의 떠들썩한 호들갑이 반긴다. 아빠가 아들 보트에 바람 좀 넣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은총이 부자가 하는 사소한 일들에도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느껴졌다. 몸짱 청년들부터 배불뚝이 아저씨들까지 기합을 잔뜩 넣으며 몸을 풀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철인’들이 모였다고 한다.


경기 시작 전, 설레는 표정의 은총이 아빠(왼쪽)와 이수천 국민생활체육 전국철인3종경기연합회 이사(가운데), 가수 션(오른쪽). 션은 운동복에 ‘만원의 기적’ 캠페인에 참여한 365명의 이름을 빼곡히 적어넣었다.
경기 시작 전, 설레는 표정의 은총이 아빠(왼쪽)와 이수천 국민생활체육 전국철인3종경기연합회 이사(가운데), 가수 션(오른쪽). 션은 운동복에 ‘만원의 기적’ 캠페인에 참여한 365명의 이름을 빼곡히 적어넣었다.

이토록 뜨거운 순간


지난 6월 30일 일요일, 은총이와 함께하는 희망나눔 2013 여주 철인3종경기대회. 이번 대회는 ‘올림픽 코스’로 진행된다. 수영 1.5km, 사이클 40km, 달리기 10km를 각각 정해진 시간 안에 완주해야 하는 극한의 스포츠. 게다가 기온은 34도까지 치솟아 올해 첫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날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고 내리쬐는 땡볕에 맨살이 따갑기 시작했다.


이번 대회의 코스. 수영 1.5km를 1시간 안에, 사이클 40km를 1시간 30분 안에, 달리기 10km를 1시간 안에 완주해야 한다. 수영은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직선코스. 사이클과 달리기는 바꿈터에서 시작해서 반환점을 돌아 바꿈터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이번 대회의 코스. 수영 1.5km를 1시간 안에, 사이클 40km를 1시간 30분 안에, 달리기 10km를 1시간 안에 완주해야 한다. 수영은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직선코스. 사이클과 달리기는 바꿈터에서 시작해서 반환점을 돌아 바꿈터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caption id="" align="alignnone" width="638"]이번 대회 참석자 600여 명의 참가비 전액 3천8백5만 원을 푸르메재단에 전달하는 모습 이번 대회 참석자 600여 명의 참가비 전액 3천8백5만 원을 푸르메재단에 전달하는 모습[/caption]몸을 풀고, 개회사를 하는 동안 장내 아나운서는 “여러분의 참가비는 은총이와 같은 어린이들을 위한 병원 건립에 쓰입니다!”하고 강조했다. 철인들의 얼굴에 뿌듯함이 비쳤다. 이번 행사 진행비를 기부한 한국지역난방공사와 국민생활체육 전국철인3종경기연합회, 푸르메재단의 기부전달식에는 환호성을 보내줬다. 참가비 전액인 3천8백5만 원은 어린이 재활병원 건립을 위해 쓰인다. 땡볕에 세워놓고 행사라니 화가날 법도 한데 철인들은 누구보다 기뻐했다. 은총이네가 철인3종경기에 출전한 것도 벌써 7번째. 은총이를 위해 먼길 마다않고 와서 함께 뛰어주는 사람들도 600여 명이 된다. 가수 션도 그중에 한 명이다. 후끈한 열기가 최고조에 이를 때 쯤 수영 시작을 알리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린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철인들


수영 출발점을 지나 강으로 향하는 션과 은총이 아빠.
수영 출발점을 지나 강으로 향하는 션과 은총이 아빠.

‘뿌~’ 하는 힘찬 출발 신호에 맞춰 철인들은 강에 뛰어들었다. 이번이 두 번째 철인 도전인 션은 어느 때보다 긴장된 표정으로 힘차게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은총이 아빠는 은총이가 탄 보트를 끌고 헤엄치기 시작했다. “파이팅!”하고 응원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뭍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목소리가 더 이상 철인들에게 닿지 않을 때까지 응원을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잔잔하다고 해도 흐르는 강물을 헤엄쳐 1.5km를 간다는 것은 힘겨워 보였다.


(왼쪽)일제히 수영을 시작하자 은총이 아빠는 안전을 위해 조금 멀리 떨어져서 헤엄쳤다. (오른쪽)은총이가 탄 보트를 끌고 수영 도착점으로 힘겹게 이동하는 모습.
(왼쪽)일제히 수영을 시작하자 은총이 아빠는 안전을 위해 조금 멀리 떨어져서 헤엄쳤다. (오른쪽)은총이가 탄 보트를 끌고 수영 도착점으로 힘겹게 이동하는 모습.

지켜보던 사람들은 수영 도착점으로 이동했다. 수영하고 있는 남편, 남자친구, 동료를 위해 강가를 따라 뛰는 사람들도 있었다. 철인들이 다시 보이기까지 기다리는게 고역이었다. 행여 사고가 난건 아닌지 발을 동동 굴렀다. 션과 은총이 아빠는 어디쯤 오는걸까. 괜찮은걸까. 왠지 눈물이 울컥 나오려고 한다. “은총이 파이팅! 다왔어요!” 사람들의 함성이 가리키는 끝에 은총이와 아빠가 보인다. 아 다행이다.


표정은 일그러졌지만 그래서 아름다운, 자전거 탄 풍경


수영을 끝낸 후 은총이를 업고 바꿈터로 가는 은총이 아빠. 이제 한 종목을 끝냈을 뿐인데 이미 충분히 지쳐보인다.
수영을 끝낸 후 은총이를 업고 바꿈터로 가는 은총이 아빠. 이제 한 종목을 끝냈을 뿐인데 이미 충분히 지쳐보인다.










은총이가 탄 트레일러를 끌고 힘겹게 자전거 패달을 밟는 은총이 아빠.
은총이가 탄 트레일러를 끌고 힘겹게 자전거 패달을 밟는 은총이 아빠.

은총이 부자가 바꿈터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시 달려나간다. 은총이는 보트에서 트레일러로 갈아탔다. 사이클은 은총이 아빠에게 가장 힘든 코스다. 부쩍 자라버린 은총이와 트레일러의 무게, 마주오는 바람의 무게까지 견뎌내며 패달을 밟아야만 한다. 은총이는 시크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파이팅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두 사람이 가야하는 거리는 40km. 산을 끼고 강을 내려다보는 코스는 더없이 아름답지만 은총이 아버지의 표정은 아름답지 못하다. 하지만 그 모습이 더없이 든든하고 가슴 벅찼다.

션이 가장 부담을 느끼는 종목인 수영을 끝내고 자전거를 타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기록 단축을 위해서는 이동 중에 뛰거나 옷을 갈아입기도 한다.
션이 가장 부담을 느끼는 종목인 수영을 끝내고 자전거를 타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기록 단축을 위해서는 이동 중에 뛰거나 옷을 갈아입기도 한다.

은총이네가 출발할 무렵 션도 물밖으로 나왔다. 션이 가장 힘들어 하는 수영이 끝났기 때문에 이제는 최대한 기록을 단축해야한다. 자전거로 바꿔타려던 션이 자꾸만 주저앉는다. 수영하는 동안 쥐가 나서 고생했다고 한다. 그래도 할 수 있겠냐고 묻자 “이제 어떡해요. 계속 해야지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라고 말한다. 말릴 수도 없고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안쓰럽다. 해줄 수 있는게 응원밖에 없다.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션은 자전거를 끌고 시야에서 금새 사라졌다.


희망을 향해 뛰어라


자전거 종목을 마치고 다시 바꿈터에서 채비를 하고 달려나간다. 이번엔 역시 션이 먼저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떴고 길 위에는 뜨거운 해가 만들어낸 신기루 물웅덩이가 보일 정도다. 날씨가 점점 더 무더워지고 선수들이 지쳐갈수록 응원 열기도 한층 달아올랐다. 코스 바깥에서 함께 뛰는 사람들도 있고 얼굴도 모르던 사람들을 응원한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핑 돈다.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마지막 종목인 달리기를 시작하는 은총이네. 시작한지 두 시간 가량 강한 햇볕아래 앉아있는 은총이도 힘들거라며 모두 함께 무사 완주를 빌었다.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마지막 종목인 달리기를 시작하는 은총이네. 시작한지 두 시간 가량 강한 햇볕아래 앉아있는 은총이도 힘들거라며 모두 함께 무사 완주를 빌었다.

은총이네도 달리기 시작한다. 장내 아나운서도 몹시 흥분해 목청을 높였다. “은총이와 아버지가 지금 달리기 시작합니다. 힘을 주십시오 여러분!” 사람들은 파이팅을 외치며 박수를 쳤다. 은총이 아빠 힘들어 어쩌냐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울먹인다. 은총이 엄마도 길 가운데서 코스를 돌아들어올 두 사람을 기다린다. 제발 안전하게 돌아오기를 빌면서.


철인3종경기를 완주한 션이 결승점을 통과하고 있다. 기록적인 무더위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지난 경기 기록보다 10분을 앞당겼다.
철인3종경기를 완주한 션이 결승점을 통과하고 있다. 기록적인 무더위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지난 경기 기록보다 10분을 앞당겼다.

알든 모르든 서로를 응원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한 곳을 보며 파이팅을 외쳤다. 그 끝에 션이 있었다. 괴로운 표정이 역력했지만 마지막 힘을 끌어올린다. 이래서 철인3종경기를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하나보다. 이미 50km 가까이 뛴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속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2시간 51분이라는 놀라운 기록이었다. 기뻐하던 션이 금새 주저 앉고 만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내쉬는 거친 숨소리가 말해준다.


손을 잡고 함께 뜁시다


이상하게 레이스를 마친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꼼짝을 않는다. 션도 결승선 근처를 배회하고 사람들의 움직임도 수상하다. 힘들게 경기를 마치고 쉬고있던 선수들이 다시 결승점으로 돌아왔다. 은총이네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장내 아나운서의 쉰 목소리가 들린다. “은총이와 아빠가 1km 남은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하는 말에 션이 다시 코스를 되돌아 달려간다. 조금 전까지 기진맥진 했던 사람이 어디서 저런 힘이 나왔을까 싶다. 근처에 있던 모든 선수들, 응원객들이 어느 때보다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마침내 은총이와 아빠, 션이 결승점을 통과하고 모든 사람들이 환호하며 기뻐했다.


결승점을 이미 통과한 션이 은총이네를 위해 되돌아가 함께 달렸다. 사람들도 이 세 사람을 한마음으로 응원했다.
결승점을 이미 통과한 션이 은총이네를 위해 되돌아가 함께 달렸다. 사람들도 이 세 사람을 한마음으로 응원했다.

은총이에게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 달리는 은총이 아빠, 그리고 보트, 트레일러, 휠체어에 타고 시크하게 세상 구경을 하는 은총이, 은총이 삼촌을 자처하고 함께 뛰는 션. 세 사람이 보여준 뜨거운 열정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걸까.










 


션과 은총이 아빠, 은총이가 결승점을 통과한 직후 ‘장애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에 함께하자’는 현수막을 펼쳐 보였다.
션과 은총이 아빠, 은총이가 결승점을 통과한 직후 ‘장애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에 함께하자’는 현수막을 펼쳐 보였다.

 

  “우리 은총이가 우리나라에 백만 명 있어요. 은총이 아빠가 뛰고 있듯, 우리 모두가 은총이를 품고 같이 걷고 뜁시다. 백만 명 은총이들이 어두운 곳에 혼자 있지 않게, 세상에 나와 바깥을 보고 같이 뛸 수 있게 말입니다.” 힘주어 말하는 션의 목소리가 가슴 깊이 와닿는다. 모두가 포기를 말했지만 결코 놓고 싶지 않았던 은총이의 손을 여기 모인 사람들이 함께 잡은 것 같았다. 앞으로는 함께 가자고.


3가지 희귀난치병과 6가지 병, 뇌병변1급 장애를 가진 은총이. 태어나자마자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을 살지 못할것이라고 선고 받았던 은총이. 이제는 무럭무럭 자라서 걷고, 말하고,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는 희망과 기적의 증거, 은총이가 있기에 은총이 아빠와 션의 레이스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은총이를 응원했듯 더 많은 사람들이 백만 명의 은총이를 위해 손을 잡아주길 바라본다.


*글=이예경 홍보사업팀 간사 / 사진=이예경 홍보사업팀 간사, 전승배 대외사업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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