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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장애 어린이 눈물 닦아준 ‘따뜻한 기업가’ 잊지 않겠습니다”

“장애 어린이 눈물 닦아준 ‘따뜻한 기업가’ 잊지 않겠습니다”

2022-03-06

8년 전 200억 통 큰 기부로
국내 첫 어린이재활병원 건립
2016년 개원 뒤도 운영비 지원
코로나에도 매일 300여명 치료
“장애아이들 두 팔 벌려 안아주는
따뜻하고 겸손한 사람이었죠”

작년 4월 서울 상암동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건립 5돌을 기념해 제막한 ‘김정주홀’ 앞에 선 고인. 사진 푸르메재단 제공
작년 4월 서울 상암동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건립 5돌을 기념해 제막한 ‘김정주홀’ 앞에 선 고인. 사진 푸르메재단 제공

“어린이재활병원은 어린이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사업모델입니다. 병원에 들어선 순간, 구석구석 모든 것에 어쩌면 이렇게 정성이 담겨있는지 감동했습니다.”

지난해 4월 서울 상암동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방문한 넥슨 창업주 고 김정주 엔엑스씨(NXC) 이사는 웃는 얼굴이었지만 눈가가 젖어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이 세워진 지 5년 만에 이뤄진 공식 방문이었습니다. 더 많은 기적이 이어질 수 있도록 열심히 돕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날 우리는 200억원의 건립기금을 쾌척해준 고마운 뜻에 보답하는 의미로 그의 얼굴을 동판에 새긴 ‘김정주홀’ 제막식을 했습니다. 평소 말수가 적은 그였지만 상기된 표정으로 감동을 표현했습니다. “병원 안에 제 이름을 딴 강당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를 위한 소중한 공간에 제 이름이 새겨지다니 너무 영광입니다.”

오랜 기간 자신을 믿고 기다려준 부모님을 모신 자리여서 그는 더 행복해 보였습니다. “사업을 핑계로 외국을 떠돌며 제대로 찾아뵙지 못했는데 오늘 10년치 효도를 한 것 같습니다.” 김 이사의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꼭 쥐었습니다. 김 이사는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고, 그의 어머니는 피아노를 전공한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모자가 김정주홀에서 함께 연주하는 모습을 눈앞에 그려봤습니다. 코로나 위기가 끝나면 꼭 그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1일 그가 며칠 전 이국땅 하와이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습니다. 너무도 때 이른 죽음이 안타깝고 허망하기만 합니다. 세상은 그를 새로운 게임산업의 선두주자, 투자의 귀재라고 평가하지만 제가 만난 김 이사는 장애 어린이들과 눈을 맞추고 두 팔 벌려 안아주는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만날 때면 진심으로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장애 어린이가 당당히 세상에 나갈 수 있도록 작은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매일 전국에서 온 300여명의 어린이가 치료받고 있는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과 내년 문을 열게 될 서울대병원 넥슨어린이통합센터 등은 그가 남긴 어린이 사랑의 증표가 아닐까 합니다.

2014년 12월 국내 최초 어린이재활병원 건립 기금 200억원 기부 약정식 때 고인(왼쪽)과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사진 푸르메재단 제공
2014년 12월 국내 최초 어린이재활병원 건립 기금 200억원 기부 약정식 때 고인(왼쪽)과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사진 푸르메재단 제공

김 이사와 푸르메의 인연은 2011년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습니다. 넥슨 대표가 푸르메재단을 방문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딱딱한 중년 사업가를 예상했는데 뜻밖에도 청바지와 흰 운동화 차림에 미소 띤 청년이었습니다. 성품도, 찾아온 뜻도 옷차림만큼 소박하고 진솔했습니다. 한때 넥슨에서 일했던 이철재 대표가 푸르메재단에 통 큰 기부를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신도 장애 어린이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재단을 다녀간 뒤 그는 10억원을 보내왔습니다. 새로 짓기 시작한 어린이재활의원의 건립 기금이었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부인 유정현 감사를 비롯한 넥슨 임직원들은 차가운 진료실과 대기실에 예쁜 그림을 그려 놀이동산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마치 유치원에 온 것처럼 어린이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치료받길 원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김 이사 부부의 진정성에 감동했습니다. 2014년 어느 날 그는 우리 부부를 제주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날 밤늦은 시간까지 김 이사 부부와 대화하며 장애 어린이를 내 아이처럼 치료하는 아름다운 어린이재활병원을 함께 세우자고 설득했습니다.

사람이든 별이든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2014년 12월 김 이사가 병원 건립기금의 절반인 200억원을 흔쾌히 기부하겠다고 말했던 때가 바로 그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후 1만명의 시민과 500개 기업이 힘을 보태 그로부터 2년 뒤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은 기적처럼 문을 열었습니다. 그의 결단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나라에는 어린이재활병원이 아직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구조적인 적자에 허덕이는 병원에 매년 적지 않은 운영비를 보태준 것도, 코로나로 병원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30억원의 발전기금을 약속하고 이행해준 것도 그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저는 김 이사가 절망에 빠져있던 장애 어린이와 부모들의 눈물을 닦아준 마음 따뜻한 기업가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장애 어린이 가족에게 희망의 천사가 되어준 김정주 이사의 명복을 빕니다.

백경학/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출처: https://www.hani.co.kr/arti/society/obituary/10337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