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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완서 선생님, 푸르메재단 격려

“너무 더워서 차라리 죽고 싶은 날씨에요.”

하늘에 큰 구멍이 뚫린 듯, 여름 햇볕이 장대비처럼 사정없이 퍼붓던 날,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께서 손수건으로 연신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시면서 푸르메재단을 찾아 주셨습니다.

박완서 선생님은 푸르메재단 설립 초기부터 큰 그늘이 되시는 든든한 정기후원자이십니다.

후원을 해오셨지만 정작 재단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셨다고 합니다. 모처럼 나들이를 하신 선생님을 모시고 나눔치과와 어린이재활센터 이곳저곳을 둘러봤습니다.

때마침 푸르메어린이재활센터에서 준비한 ‘언어치료 부모교육’이 열리고 있어서 선생님은 장애 어린이들의 부모님들과 함께 강의를 들으셨습니다.

강의후 식구들과 함께 기념촬영도 하셨고, 푸르메재단이 준비 중인 푸르메병원 건립위원 동의서와 최근 작품인 ‘친절한 복희씨’에 서명해 주셨습니다.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서 선생님과 맛있는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식당에 자리를 잡으신 선생님은 문득 ‘날이 너무 더운데 시원한 맥주 한 잔 하자’고 제안하셨고 모두 적극(!) 찬성해, 함께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었습니다.

황해도 개성 인근이 고향이신 박완서 선생님께서는 “어릴 때 전쟁을 몸소 겪은 세대로서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젊은이들을 보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최근 촛불시위에 대해, 당신께서는 줄곧 진보적인 가치에 동의해 오셨지만 일부 젊은이들이 큰 줄기에서 벗어난  주장을 할 때면 약간 걱정스러우시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고향을 묻자 선생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최근 여러 차례 개성을 방문하실 기회가 있었으나 안가셨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고향은 개성에서 약 8km 떨어진 ‘개풍’이라는 곳인데 고향엔 갈 수 없고 개성까지만 갈 수 있다고 해서 다 거절하셨다고 하네요. ‘지금도 근처만 간다면 눈 감고도 찾을 수 있는 길인데…’ 하시며 말을 흐리시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최근 박완서 선생님은 지방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계신 사위와 따님을 대신해 구리집에서 외손녀와 살고 계신다고 합니다. 대학생 손녀를 위해서 아침 일찍 정성스럽게 싼 도시락을 ‘먹을 시간이 없다’ 혹은 ‘귀찮다’고 안가져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 같으면 안 먹더라도 받아갈 텐데 세대가 다른 것 같아요”하고 섭섭하다고 하십니다. 우리네 평범한 할머니의 모습이지요?

술을 좋아하시는 남편이 집안에서 술을 드시게 하시려고 곁에서 시작한 반주가 소주 두 세 병은 거뜬히 드실 정도로 발전되었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으시는 박완서 선생님. 늘 조근조근 말씀하시는 모습이 연로하셨어도 참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얼굴과 손등에 내려앉은 주름살이 넉넉해 보이는 평화로운 노년의 모습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수십년 동안 한땀한땀 바느질하듯 기록해 주옥 같은 책들을 앞으로도 오랜동안 읽고 싶습니다.

<재단 직원과 기념사진>
<재단 직원과 기념사진>       

박완서 선생님은 1970년 불혹의 나이에 여성동아의 여류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돼 등단하셔서 현재까지 ‘엄마의 말뚝’,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 진주 같은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온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십니다.
특히 최근 출간된 ‘친절한 복희씨’는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2007년 문인 100인이 선정한 올해의 가장 좋은 소설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글,사진=이재원 푸르메재단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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