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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의 희망을 나눠요]“장애인은 짐 아냐…경제활동 기회줘야”

[재활의희망을나눠요] 두 ‘인간승리’ 앨리슨 래퍼-강원래 만남

» 구족화가 앨리슨 래퍼와 가수 강원래씨가 30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래퍼의 숙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원래씨. 당신 권리위해 싸워라. 영국도 그랬다”

구족화가 앨리슨 래퍼-가수 강원래 만나다

한국을 방문 중인 ‘살아 있는 비너스’ 앨리슨 래퍼(41)와 가수 강원래(37·푸르메재단 홍보대사)씨가 30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래퍼의 숙소에서 만났다. 두 팔이 없는 선천적 장애를 지니고 구족화가로 활동하는 래퍼와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휠체어 가수’ 강씨는 서로 다르지만 같았다. 래퍼는 “사회가 도와줘 오늘의 내가 있다”고 하자, 강씨는 “사고 뒤 진심이 실린 노래를 부르게 됐다”고 화답했다. 두 사람은 사회가 장애인을 감싸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강원래: 텔레비전에서 볼 때마다 휠체어를 어떻게 운전하는지 궁금했다. 나는 손으로 휠체어를 운전하는데 래퍼씨는 팔 없이 어떻게 운전하나?

앨리슨 래퍼: 이 휠체어는 전동 휠체어다. 어깨를 이용해 스틱을 조종한다. 영국에서 이런 휠체어는 매우 보편적이다. 상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3000파운드(500만여원) 정도 내면 쉽게 구할 수 있다.

: 데뷔 때 앨범과 사고 뒤 낸 앨범을 선물로 가져왔다. 데뷔 때 앨범은 품절돼서 정말 구하기 힘들었다. 꼭 들어봐야 한다.

래퍼: 고맙다. 꼭 들어보겠다. 사고가 난 뒤 장애인이 되고 나서 당신의 음악활동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하다.

: 예전에는 인기만 얻기 위해 음악을 했지만 사고 뒤에는 나의 진심이 실린 노래를 부르게 됐다.

래퍼: 이해할 수 있다. 몸이 바뀌고 나서 아마 인생이 달라지고 사고 방식도 바뀌고,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유럽에도 장애인이면서 가수가 되려고 힘겹게 싸우는 사람들이 있지만 당신처럼 활약하고 있진 못하다. 당신의 존재 자체가 세계의 장애인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예술작품 활동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내 작품을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앨리슨 래퍼 아이갖기 두려워 말라 장애부모 감싸 안을것

: 한국에 온 지 일주일 정도 됐는데, 한국의 인상이 어떤가?

래퍼: 그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

:나도 데뷔한 지 10년이 지났는데 ‘쿵따리 샤바라’가 무슨 뜻이냐는 질문을 아직까지 받고 있다.(웃음)

래퍼: 한국사람들이 매우 친절해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마치 팝스타처럼 사람들이 사인을 원하고 또 사진도 찍어가고. 하지만 길거리에 턱이 많고 건물과 주택은 장애인들을 위한 배려가 매우 부족하게 지어졌다. 그런 어려움 때문인지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내가 여기에 와서 한국의 정치인과 정부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투자를 늘렸으면 좋겠다.

: 내가 9년 전 런던에 갔을 때는 길거리에서 장애인들을 많이 본 기억이 있다. 확실히 우리나라는 장애인들이 길거리를 활보하기 어렵다. 사람들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래퍼: 나는 장애를 갖고 태어났지만 행복하다. 장애인을 일컫는 ‘disable’이란 말은 사회에서 만들어졌지 앨리슨, 나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장애가 치료를 받아야 하고 고쳐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 적 없다. 나는 그저 남들과 다를 뿐이다.

: 현재 푸르메재단에서는 장애환자들의 부족한 재활시설 및 병원을 건립하기 위해 민간 차원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래퍼: 말도 안 된다. 정부가 그런 시설을 위해 기꺼이 돈을 내야 한다. 사고로 장애인이 된 사람들이 이전처럼 사회에 다시 온전히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물론 완벽히 복귀하는 건 힘들겠지만 장애인들이 사회의 짐이 돼야 할 이유는 없다. 나는 영국에서는 정부가 제공하는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고 있다. 장애인들이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도록 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건 자선이 아니라 스스로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환경이다. 활동보조인이 도와준다면 장애인들은 많은 걸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영국에서는 대다수의 장애인들이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으며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살거라 공동생활가정에서 가족처럼 살고 있다.

: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장애인의 이미지는 까탈스럽고 공격적이거나 불쌍하고 연약한 이미지다. 장애인이 된 지 5년이 지난 나도 감정을 억제하지 못할 때가 있다. 어떤 계기로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게 됐는지 궁금하다.

래퍼: 운이 좋게도 긍적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을 타고 났지만,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던 장애를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화가 나면 그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려고 한다. 나는 두렵지 않다. 사람들이 나를 스테레오 타입에 가두는 걸 개의치 않는다. 그들의 좁은 소견일 뿐이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그건 내가 신경써야 할 일이 아니다. 당신은 장애인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모든 것을 느끼고 드러낼 권리가 있다. 나의 작품 ‘얼굴’에는 내가 가진 16가지 이상의 표정이 담겨 있다.

: 당신의 그림, 사진찍기 등 예술 활동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래퍼: 세계구족화가협회 회원으로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집과 생활을 영위하고 스튜디오를 운영할 수 있다. 또 장애여성들과 장애인 모두를 위한 작품들이다. 장애인들의 몸이 다르다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다름이 내 몸을 특별하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걸, 작품활동을 할 때마다 깨닫는다.

강원래 사고뒤 장애인 권익옹호 노력 노래도 진심 담아 부르게돼

: 이제까지 당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은 누가 있나?

래퍼: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도왔다.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나를 그들의 날개로 감싸주고 포용해주고 또 격려해줬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갖도록 도와줬다. 이렇게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 꼭 한 사람을 꼽을 수 있나? 나에게는 나의 아내 김송이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인데.

래퍼: 나는 당신처럼 아내가 없다.(웃음)

: 나도 언젠가 아이를 갖게 되면 장애를 가진 아빠를 둔 것에 대해 어떻게 교육시킬지 생각 중이다. 아들 페리스가 사춘기가 되면 장애인 엄마를 가진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더 의식하게 될 것이다. 이때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조언을 듣고 싶다.

래퍼: 당신이 아이를 굳이 교육시키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본능적으로 엄마를 사랑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참으로 놀랍게 와서 안기고 사랑을 요구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못되게 굴 때 아이는 당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거다. 사람들의 부모에 대한 수근거림, 비방이 있겠지만 그건 잘못된 거라고 아이에게 꼭 가르쳐야 한다. 부모가 된다는 건 당신에게 정말 놀라운 경험이 될 것이다.

: 한국에서는 장애인이 뭐하러 밖에 나와 돌아다니냐고 생각하는 등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매우 심하다. 영국에서 어떤 편견들을 받았고, 어떻게 이겨냈나 궁금하다.

래퍼: 영국은 매우 긴 역사를 갖고 있지만 장애인을 감싸는 문화는 오래되지 않았다. 당신은 좀더 강해지고, 힘을 내서 당신의 권리를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한다.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아내라. 영국에서도 이렇게 되기까지 30~40년이 걸렸다.

이날 강씨는 대담 뒤 래퍼에게 자신의 데뷔앨범을 선물로 건넸고, 강씨가 아내 김송씨를 위한 사인을 부탁해 래퍼도 펜을 입에 물고 강씨 앨범 재킷에 사인을 해줬다.

정리/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앨리슨 래퍼(41)는 ‘해표지증’(Phocomelia)이라는 선천적 질병으로 두 팔이 없고 기형적으로 짧은 다리를 지녔다. 그러나 신체적 장애와 가정폭력의 아픔을 벗고 입과 발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 겸 사진작가가 됐다. 1999년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아들 패리스를 임신해 출산했다. 2005년 세계여성상 성취부문을 받았으며, 영국의 트라팔가 광장에는 영국 조각가 마크 퀸이 4. 높이로 조작한 만삭의 래퍼 대리석상이 전시돼 있다.

 

강원래(37·푸르메재단 홍보대사)씨는 강릉대학교 공예학과 2학년 때인 1990년 ‘현진영과 와와’ 백댄서로 데뷔한 뒤 1996년 구준엽씨와 함께 인기 그룹 ‘클론’을 결성했다. 2000년 겨울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불법 유턴하던 승용차에 치어 척수가 손상돼 하반신이 마비됐다. 그러나 장애를 극복하고 가수로 또 방송인으로 활약하며 장애인의 권익 옹호를 위해 애쓰고 있다. 2005년부터 재활병원 확충운동을 펴고 있는 푸르메재단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