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의 희망을 나눠요]장애·버림받은 아픔 ‘가족애’로 감싸요

[재활의희망을나눠요]
무연고 장애인 모여 공동가정 이룬 일용이네

»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보금자리에 모인 단란한 여섯 식구. 왼쪽부터 ‘엄마’ 오순금씨, 이봄, 정성옥, 온재훈, 김희영, 서일용.

사회복지사 ‘엄마’-장애아 5명 성은 모두 다르지만 한 가족
“우리집이 제일 좋아 여기서 오래오래 살거예요”

“재훈이는 가족 중에 누가 제일 좋아?” “희영 누나가 제일 좋아. 음… 그 다음으로, 일용 형이 좋아.” “야! 순서가 뭐가 중요하냐?”

뚱하게 앉아 있던 일용이의 얼굴에 꽃이 피었다. 순위에서 밀린 성옥이는 한껏 볼멘소리를 내며 재훈이를 흘겨본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에는 부모 없이 버려진 장애아들이 형제·자매가 돼 한 가족으로 살고 있다.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살림도 넉넉지 않지만 서로 장애를 보듬고 애정을 나눈다. 큰딸 정성옥(24), 큰아들 서일용(19), 둘째딸 이봄(17), 셋째딸 김희영(16), 막둥이 온재훈(11). 그리고 이들이 ‘엄마’라고 부르는 오순금(33·사회복지사)씨 ‘가족’이다. 정신지체와 지체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은 부모한테 버림을 받아 각기 장애인 시설에서 생활하다 2002년부터 한 아파트에서 공동생활을 해왔다. 사회복지법인 ‘기쁜우리복지관’이 마련한 ‘가족형 장애인 공동생활가정’이다.

24평에 방 셋인 등촌동 아파트는 항상 성옥이와 희영이, 재훈이가 떠드는 소리로 가득 찬다. 사춘기를 맞아 이마에 여드름이 난 희영이 목소리가 단연 크다. 하지만 손 근육이 약한 재훈이와 봄이의 요구르트 뚜껑을 따줄 때만은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봄이는 하반신 마비로 방바닥을 기어다니는데, 필요한 물건을 재빨리 갖다주는 재훈이가 있어 든든하다. 그런 재훈이에게 매일 신경안정약을 챙겨주는 건 봄이 몫이다. 말이 없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일용이는 외출할 때마다 봄이의 휠체어를 밀어준다. 장난꾸러기 재훈이의 안경알이 빠지면 큰딸 성옥이가 접수한다. 이런 아이들이 ‘엄마’ 오씨는 대견하기만 하다.

가정생활을 한 뒤부터 이들의 성격이 밝아지고, 시설생활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끼’도 나타났다며 복지관 관계자들은 ‘가정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기실 버려진 장애아동들에게 가정은 절실하지만 입양되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공동생활가정은 이들이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다.

이 복지관의 이정희 사회복지사는 “장애로 말미암아 버려진 아이와 성인들이 5명씩 하나의 가정을 이뤄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오래도록 어우러져 살아간다는 데 공동생활가정의 취지가 있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버려졌다는 비참함을 지닌 이들이 나중에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무언가를 하며 생활할 수 있는 데는 가정이란 보금자리가 최고의 치료약이며 촉진제일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기쁜우리복지관은 서울에서 14군데 이런 장애인 공동생활가정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가정의 울타리가 사회적 편견의 벽까지 치유하긴 어렵다. 오씨는 “아이들은 밝아지고 사랑스럽기만 한데 사회가 그들을 바라보는 눈은 여전히 차갑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외친다. “난 우리집이 제일 좋아. 우리집에서 계속 오래오래 살 거예요!”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2006-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