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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위한 마음 – 엄마 다리는 다시 자라잖아요? 월간 <샘터>

글_박혜란 기자|사진_한영희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4백7십만 명의 장애인이 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수이다. 그리고 그들 중 65%는 입원 치료와 지속적인 재활 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재활의학과 의사 한 사람이 돌보아야 할 장애인이 무려 6천 명이고, 장애인 1천 명에게 허락된 병상이 겨우 세 개라는 것. 이것이 바로 현실이다. 재활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 중 겨우 2%만이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거기에 속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푸르메재단(이사장 김성수)’은 바로 그 ‘더 많은 나머지’를 위한 밑거름이 될, 한국 제1호 재활전문병원을 꿈꾸며 한 발 한 발 걸음을 내딛고 있다. 푸르메재단이 그리는 재활병원의 모습은 ‘인간적인 배려로 충만하고, 환경친화적이며, 수익을 남기지 않는’ 병원이다. 처음 뜻있는 몇 사람이 전원마을같이 아름답고 산뜻한 병원의 모습을 이야기했을 때는 가슴 벅차지만 너무 멀기만 한 꿈으로 보였다. 하지만 꿈의 병원을 위한 현실의 벽돌은 하나씩 차근차근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의미 있는 행보에 기꺼이 합류한 김용해(예수회 신부,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이사는 재단 설립의 씨앗이 된, 6년 전의 안타까운 사고를 떠올린다.

 

 

 

 

 

▲ 푸르메병원에 대한 아름다운 계획들은 아직은 조그마한 홈페이지 속에 씨앗의 모습으로 담겨 있다.
하지만 곧 현실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울 것이라고 김용해 신부는 기대하고 있다.

“독일에서 만난 백경학, 황혜경 씨는 이웃과 나누며 사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은 부부였습니다. 그런데 교통사고로 부인이 그만 한쪽 다리를 잃는 불행을 당했지요. 그를 아끼는 많은 이가 병실로 찾아와 함께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그 때, 줄곧 엄마 곁에 있던 딸 민주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슬퍼하지 마세요. 우리 엄마 다리는 또 다시 자라나면 되잖아요? 나뭇가지를 잘라도 또 자라나듯 다리가 곧 자라날 거예요!’ 어른들이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아이는 벌써 희망을 보고 있었던 겁니다.”

귀국한 후 한국의 열악한 재활치료 환경을 접한 백경학 씨 부부는 이 문제가 개인이 아닌 사회가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황혜경 씨가 사고 보상금의 50%를 내놓았고 백경학 씨가 뜻을 함께할 사람을 모으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조그마한 힘을 모아 큰일을 도모하자니 그야말로 기적이 필요한 순간이 많았죠. 놀랍게도 진심은 기적을 불러오더군요. 누군가 큰돈을 선뜻 내놓는가 하면, 누군가는 병원 부지로 쓰라며 땅을 내놓을 뜻도 전해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재단 설립 허가를 받던 날, 그 동안 그들 부부가 겪었을 고통을 짐작해 보며 감회에 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6년 전 아이가 했던 말대로 황혜경 씨의 다리는 새로 자라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푸르메재단에 도움의 손길을 보태는 것은 물론 ‘누구에게나 인간다운 대우를 받을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개인의 불행을 개인의 몫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는 큰 뜻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것 말고도 “백 아무개 때문에”라는 어쩌면 지극히 사사로운, 하지만 훨씬 더 인간적인 이유도 있다. 김용해 신부도 그렇게 ‘백 아무개 때문에 기분 좋게 엮인’ 셈.

“거창한 명분이 사람을 움직이는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오히려 어느 한 사람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큰일을 이루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요. 제게도 소아마비로 걷지 못하게 된 조카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안고 업고 다녔지요. 그런데 아이의 할아버지만은 어떻게라도 아이를 걷게 만들려고 틈만 나면 애를 썼지요. 푸르메재단이 생겼을 때 그 생각이 나더군요. 무엇보다 ‘한 사람’을 보자. 바로 가족의 마음으로.”

장애인 복지가 잘 정착된 독일이나 영국, 일본에서는 그렇게 환자를 인간적으로 대하고 가족처럼 돌보는 재활병원의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고 한다.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에게도 치료 목적과 방법, 진행 과정을 일일이 설명해 주는가 하면, 환자 가족들을 위해서 의료진은 언제든 기꺼이 시간을 낸다. 푸르메재단이 꿈꾸는 병원 또한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환자를 인간으로 대하는 곳이다.

“병원을 세우기 위해선 아직도 더 많은 수의 벽돌이 필요합니다. 금전적인 후원은 물론, 병원에서 기꺼이 봉사해 줄 의료진과 간병인의 도움도 절실하죠. 한 사람을 위한 마음, 김 아무개나 박 아무개 때문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 번 더 돌아보는, 그런 관심을 기다립니다.” (푸르메재단 홈페이지 www.purme.org)

월간 <샘터> 2005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