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병원 건립 나선 姜智遠 변호사 [월간조선]

중도 장애인과 관련이 있는 자동차 회사들도 나서 달라

―한국 인구 4700만 명 중 470만 명이 장애인, 이 중 30%인 140만 명은 재활치료를 받아야

姜智遠
1949년 서울 출생. 서울大 정치학과 졸업. 제12회 행정고시 합격. 제18회 사법시험 합격. 재무부 행정사무관, 청소년보호위원장, 서울 고검 부장검사 등 역임. 現 청지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푸르메재단 공동대표.

장애인 470만 명에 재활치료 병상 6000개

2005년 9월5일 姜智遠 푸르메재단 공동대표의 안내로 프레스센터 서울갤러리에서 열린 「푸르메 장애인 사진전」을 둘러보고 있는 권양숙 여사와 관람객들.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법률사무소 「淸芷(청지)」에서 만난 姜智遠(강지원·57) 변호사는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았다. 부인 金英蘭(김영란) 판사가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 되자 그는 청지 법률사무소 대표 자리를 내놓았고,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까지 그만뒀다.

사회의 민감한 현안을 다뤄야 할 아내의 판결에 영향을 주기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청소년보호원장, 어린이청소년포럼대표, 이우교육공동체 공동대표를 역임한 그는 청소년 「지킴이」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2005년 5월 새 「사업」을 시작했다. 「푸르메재단」의 공동대표를 맡아 「장애인 재활병원」 건립에 나선 것이다.

사법고시 수석 합격 이후 잘 나가던 검사였던 그가 청소년 운동으로 인생의 방향을 大전환한 데는 두 딸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두 딸은 모두 「대안학교」를 졸업했다. 경기高-서울大 문리대를 나온 검사 아버지와 경기女高-서울법대를 나온 판사 어머니는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큰딸의 이야기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姜변호사는 종종 『그 일이 세상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얘기한다.

―청소년 보호 운동에 전념해 오셨는데, 장애인 재활병원 건립에 나선 계기가 있습니까.

『2004년에 푸르메재단 이사로 있는 白庚學(백경학·43·前 동아일보 기자)씨를 만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白씨는 1998년 독일 유학 중 부인이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절단했습니다. 중도 장애인이 된 거죠.

한국으로 돌아온 白씨 부부는 장애인 재활병원 건립을 위해 자신들이 받은 보상금과 재산 1억원을 내놓았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합류하게 된 겁니다』

―白庚學씨 부인과 같은 중도 장애인을 포함해 장애인이 얼마나 됩니까.

『장애인이 470만 명 정도니까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합니다. 이들 중 30%인 140만 명 정도는 재활치료를 꼭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재활치료를 담당할 병원과 病床(병상)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재활 病床이 6000개에 지나지 않아서 재활 치료를 받으려면 신청 후 서너 달을 기다려야 합니다. 병원 입장에서는 재활치료의 수익성이 낮다 보니 환자들을 빨리 내보내려고 합니다. 제대로 된 재활치료를 기대하기 힘들죠』

장애인 지원 활동에 청소년들 참여시키겠다

姜변호사는 『장애인 지원 활동에 많은 청소년들을 참여시켜, 청소년들이 장애인들에 대해 올바른 시각을 갖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다』고 했다.

『1990년 제가 서울보호관찰소 소장을 할 때의 일입니다. 非行(비행) 청소년 선도 활동으로 장애인 봉사활동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종로 「라파엘의 집」 중증 장애아들과 보호소 청소년들을 한 명씩 짝지어 서울의 한 수영장에 갔습니다. 非行 청소년이라고만 생각했던 아이들이 중증 장애아들이 물에 빠질까봐 안절부절못하며 장애아들을 정성으로 보살폈어요. 이 프로그램을 끝내고 청소년들이 소감문을 썼습니다.

「장애인은 몸이, 나는 마음이 삐뚤어져 있다.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장애인들이 너무나 바르고 깨끗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 스스로 창피하다」고 쓴 글을 보고, 저 역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부끄러웠습니다』

―장애인과 함께 생활한 경험이 있습니까.

『방송사의 한 프로그램에 초청돼 「은평 천사원」의 장애 어린이와 한강 수영장을 갔습니다. 휠체어에 탄 장애 청소년을 버스에 태우고 내릴 때, 人道(인도)의 턱을 넘을 때, 너무 힘이 들어 제가 당황스러웠습니다. 제게 몸을 맡긴 그 장애아는 어떻겠습니까.

이 장애 어린이가 수영장에서 놀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너무 정상인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 조카 두 명이 청각 장애인입니다. 조카들이 장애를 갖고 있지만 밝은 얼굴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2008년 병원 설립이 목표
2005년 3월 설립된 푸르메재단의 목표는 재활치료 병원 건립이 목표다. 올해 안에 병원 부지를 정하고, 2008년까지 병원을 설립할 계획이다.

―건축비를 마련하고, 의료진을 확보할 계획은 세우셨습니까.

『지금은 병원 설립 비용을 마련하는 단계입니다. 그 다음까지는 생각을 못 하고 있어요. 다만 신촌 세브란스병원의 朴昌一(박창일·60) 원장이 병원 설립 후 의료진 파견을 약속하셨습니다. 의료진이나 인력 충원은 아직 구체적으로 계획되거나 말할 단계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푸르메재단은 설립비용으로 130억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부지는 지방자치단체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비용 모금 운동을 진두지휘하고 계신 셈인데, 전망이 어떻습니까.

『잘 될 거예요. 저는 기업들이 적극 나서 주었으면 합니다. 자동차 회사, 가스 회사들은 장애인을 지원해야 할 도덕적·양심적 책임이 있습니다. 교통사고로 인해 중도 장애인이 되는 사람들이 엄청납니다. 사회 환원을 한다면 재활병원 건설이 좋은 기부 대상이 아니겠습니까. 기업들을 많이 접촉하고 있습니다』

휴양지 같은 재활병원

―어떤 병원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독일의 재활병원은 휴양지처럼 만들어져 있습니다. 호수가 있고, 나무로 둘러싸인 병원 사이로 산책로가 있습니다. 병원 안에 가족들이 환자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콘도나 호텔 같은 시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휴양지 같은 느낌입니다. 이런 병원을 만들려 합니다』

 

―병원 운영에서 참고하려는 모델이 있나요.

『독일의 장애인 재활센터는 장애인이 1000명이면 이들을 치료하고 돕는 사람은 의사·간호사·상담사·행정가뿐 아니라 자원봉사자와 단순 노무자까지 포함해 1700명이 넘습니다.
재활병원이 휴양지 같은 시설과 환경을 갖춘다면 의료진 확보도 수월할 수 있고, 학생이나 장애인 가족들의 자원봉사 참여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선진국과 같은 병원 운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