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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면죄부 사회공헌기금’ 이렇게 쓰자 한겨레

고정욱 (소설가)

굶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 만든 노래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 곡은 1985년, 40여명의 미국 최고 가수들이 자선기금을 마련하고자 열창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앨범 판매로 수익금도 엄청났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구호금으로 전달된 돈은 고작 10억~20억원이다. 음반 제작비, 인건비, 기획비 등 이것저것 떼어내고 자기 호주머니에 챙겨 흐지부지 없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지난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이날만 되면 온나라가 평소 장애인을 아끼고 사랑해 온 것처럼 호들갑이다. 이날 하루만 장애인의 날이고 나머지 364일은 비장애인의 날이기 때문이다. 과연 일과성 관심으로 언제까지 장애인의 마음을 달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시간에도 많은 장애인들이 사회의 냉대 속에서 가난과 질병으로 신음하고 있는데 말이다.

최근 비자금과 불법상속을 저지른 대기업들이 면죄부의 의미로 거액의 기부를 약속했다. 돈으로 죗값을 치르자는 것이다. 지난 2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편법증여 등을 사과하면서 8천억원을 내놓더니 비자금 수사를 받고 있는 현대·기아차 그룹 정몽구 회장 부자가 1조원을 사회공헌비로 약속했다. 외국계 펀드인 론스타까지 편법과 탈세 혐의 등으로 1천억원 기부 의사를 밝혔다. 애초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윤리경영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미 저질러진 잘못은 어쩔 수 없고 과연 그 큰돈을 누가, 어떻게 쓸까 하는 점이 궁금하다. 1조9천억원을 4800만 국민에게 골고루 나눠주면 1인당 대략 4만원이다. 언젠가 일본이 저축만 하는 국민에게 소비를 진작시키고자 상품권을 나눠줬다는데, 우리도 경기 안 좋은데 그런 방법을 써서 온국민이 한차례 축제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황당한 상상도 해본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두려운 건 자칫 〈위 아 더 월드〉짝이 나는 것이다. 더러운 곳에 쉬파리 꼬이듯, 돈을 쓰기 위해 위원회니 기구니 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관행 아닌가. 이 돈을 가지고 각종 인건비와 각종 경상비용으로 탕진하고 전시행정으로 쓸데없는 사업을 벌이다 본래의 의미가 잊혀질까 걱정이다.

그렇다면 정말 뜻있게 이 기부금을 사용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이 기회에 정부와 지자체, 기업과 국민이 함께할 수 있는 캠페인을 벌이면 어떨까. 이곳저곳 질금질금 나눠서 부스러기로 만들지 말고 지속적으로 사회 소외계층을 돌볼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게 말이다. 가장 어렵고 소외된 사람은 아마 장애와 질병이라는 이중고를 겪는 장애환자들이다. 이들을 치료하는 재활전문병원과 장애인 종합복지센터를 전국에 몇 개라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서울시와 경기도 같은 지방자치단체가 흔쾌히 터를 제공하고 국민과 다른 기업들도 뜻을 합한다면 비록 잘못을 비는 데서 시작된 대기업 기부금이 정말 가장 필요하고 뜻깊은 열매를 맺지 않을까. 기업 신입사원과 청소년, 지역사회 주민이 어울려 사회봉사를 실천하는 살아 있는 교육장으로 말이다. 그것은 정부가 부르짖는 양극화 해소의 일환이기도 하며, 우리 사회에 오래도록 남을 인프라 구축도 되고, 고용창출 효과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곁에 오래도록 남아 불법과 비리를 끊임없이 경고하는 각성제 구실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정욱 /소설가

 

 [한겨레 2006-04-24 2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