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속 찾아온 나의 천사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과 함께하는 제주도 가족여행 후기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과 푸르메재단의 지원으로 희귀난치어린이 10가족이 지난 11월 5일부터 3박 4일간 제주도의 가을을 즐기고 돌아왔습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온 주성이 엄마는 이번 여행으로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얻었답니다. 주성이 가족에게 이번 여행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고통 속 찾아온 나의 천사


10월의 어느 날 주성이 학교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푸르메재단에서 제주도 가족여행을 지원한다고 해요. 주성이와 어머니가 같이 가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순간 멍해졌다. 한 번도 주성이와 단둘이 여행을 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중학교 2학년 때 찾아온 소아당뇨. 그로 인한 여러 합병증으로 수차례 응급실행과 입·퇴원을 반복하던 중 운이 좋게도 췌장이식수술을 받았다. 당뇨에서는 벗어났지만 이미 걸렸던 합병증으로 인한 통증에서는 수많은 마약성 진통제와 수면제로도 도망칠 수 없었다.


고통 속에서 기적처럼 찾아온 천사 주성이. 제발 이 아이만 지키게 해달라고 매 순간 간절하게 기도했지만 척박한 엄마의 뱃속에서 주성이는 미처 다 자라지 못한 채 9개월만에 1.81kg의 미숙아로 태어났다.



생후 5개월부터 경미하게 시작된 경기. 6개월만에 영아 연축 (영아기에 발생하는 잦은 발작) 진단을 받고 약조차 듣지 않아 경기가 점점 심해지는 주성이를 위해 뭐든 해야만 했다. 때를 놓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내 모든 걸 포기하고 주성이에게만 집중했다.


하지만 주성이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병원치료와 재활치료를 열심히 다녔지만 2016년 10월 뇌병변 3급 진단을 받았고 2년 후 지적장애 1급까지 받게 되었다. 믿을 수도 없고 믿기도 싫었던 순간들. 주성이를 사랑했기에 희망을 버릴 수는 없었다.


주성이의 경기는 생명을 위협할 수준이 됐다. 마음을 다잡고 수술을 결심했다. 다행히 뇌량절제술이 주성이의 경기에 효과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수술을 한 후 처음 몇 달 동안 경기가 없었다. 하지만 4달 후... 경기는 다시 시작됐다. 내년 2월 다시 수술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제안을 받은 가족여행. 나 또한 매일매일 통증 때문에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날들을 견디며 살아오고 있었기에 꿈조차 꿀 수 없던 일이었다. 주성이만 괜찮다면 난 어떻게 되더라도 상관없다고 얘기했지만 무의식중에 스스로를 더 걱정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주성이에게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여행을 가보기로. 직계가족만 함께 할 수 있는 여행이었지만 다행히 우리 가족의 어려운 점을 이해해주셔서 언니가 동행할 수 있게 됐다.


주성이와의 첫 장거리 여행. 가겠다고 결정은 했지만 하루하루 걱정으로 잠도 설치고 한참 전부터 준비한 짐도 수차례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드디어 4일 밤, "주성이와 첫 여행 무사히 갈 수 있게 내일은 제발 제 통증이 잠잠하게 해주세요." 수차례 기도를 했다.



5일 새벽, 불안한 마음으로 눈을 떴는데 몸 상태가 괜찮았다. 시작이 좋다. 주성이도 나도 언니도 모두 좋은 컨디션으로 출발! 고맙게도 지인의 도움으로 차를 얻어타고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를 어째... 국제선이었다. 다들 김포공항은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여유롭게 온 덕분에 제 시간에 모임장소를 찾았다.


푸르메재단 간사님들과 몇몇 가족들과 가볍게 인사한 후 짐을 부치고 드디어 여행무식자 3인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비행기 안에서 창밖의 구름과 그 아래 풍경들을 보니 가슴이 떨렸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제주도 도착! 들뜬 마음으로 첫 식사를 위해 본디국수를 찾았다.


테이블마다 도토리묵이며 고등어구이 등 맛있는 음식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외식의 경험이 거의 없기도 했지만 잘 씹을 수 없는 주성이는 먹을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다양한 음식을 경험할 수 있는 이번이 기회라는 생각에 이것저것 먹여보느라 내 입에는 뭐가 들어가는지 모르게 뚝딱 해치웠다. 첫 식사를 그렇게 끝내고 레고로 만든 작품이 가득한 브릭캠퍼스에 도착했다.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다양한 작품과 체험공간이 있었다. 이곳에서 난관에 봉착했다. 굳게 믿었던 주성이가 살짝 배신을 하기 시작한 것. 주성이가 잘 걸을 것이란 큰 믿음을 갖고 자신 있게 유모차를 놓고 왔는데 낯선 곳이라 그런지 계속 안아달라 보채기 시작했다. 우린 시간을 지켜야 했기에 언니와 함께 주성이를 교대로 안고 업으며 전시장을 돌아다녔다. 사진 찍을 때도 도와주지 않던 주성이.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건질 수 없었다. 아쉬움이 가득 남은 브릭캠퍼스였다.


일정을 마치고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리조트로 향했다. 3박 4일간 이 좋은 곳에서 묵는단다. 힘들었던 하루가 싹 씻기는 느낌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저녁을 먹기 위해 바비큐장으로 이동하자마자 깜짝 생일파티가 열렸다. 끝이 아니었다. 식사를 끝낸 후 숙소로 돌아온 우리에게 물과 여러 가지 간식 그리고 케이크까지 준비해 전달해주셨다. 이렇게 세세한 것까지 준비해주시다니.. 감동 또 감동. 감동의 연속인 하루였다.


이튿날이 밝았다. 큰 창밖으로 바다가 밝아온다.


늦은 시간 집결이라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조식이 9시 30분까지라는 걸 뒤늦게 생각해내고는 20분을 남기고 부랴부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우선 주성이가 배고프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음식을 나르고 먹이느라 제주도 둘째 날 아침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식사 후 막간을 이용한 산책시간. 리조트 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를 보며 밀려오는 걱정을 씻고 깨끗한 마음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주성이가 잠이 든 덕분?!에 맛있는 묵은지돼지찜으로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가져간 김으로 주성이 도시락을 싸서 휴애리로 출발했다. 노란 귤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귤농장에서 귤 따기 체험도 하고 맛있게 도시락도 먹고 포토존에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고 다음 일정인 아쿠아플래닛을 기대하며 부족함 없는 여정을 이어가던 중 잊고 있던 통증이 시작되었다.


마약성진통제를 한 알 먹고, 또 한 알 먹고, 이마저 듣지 않아 수면제까지... 어떻게든 통증을 잊고 이 행복한 순간을 이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독한 통증은 날 놓아주지 않았다. 아쿠아플래닛을 포기하고 버스에서 사람들을 기다려야 했고 저녁을 먹으러 들른 횟집까지의 일들은 모두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숙소에 돌아와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둘째날은 그렇게 큰 아쉬움을 남긴 채 지나가고 말았다.


3일째가 되자 조금 여유가 생겼다. 준비도 미리미리, 아침도 여유있게 먹고 방을 나섰다. 점심을 위해 찾은 곳은 서귀포에 있는 차이나타운. 집 근처에는 맛있는 중국집이 없어서 TV에 맛있는 짜장면과 짬뽕이 나올 때마다 ‘맛있겠다’면서 한숨만 쉬었는데 낙지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가 국물이 끝내주는 짬뽕과 맛있는 해물짜장에 탕수육까지... 정말 오래오래 머물며 다 먹고 나오고 싶었지만 너무 여유로운 주성이 덕분에 다 먹지도 못하고 나와야 했다. “주성아, 서울에서는 먹기 힘든건데... 너도 나중에 알면 후회할걸?”



다음으로 간 곳은 국내 최대 미니어처 테마파크라는 소인국테마파크. 바로 코 앞에 한라산도 보이고 세계 각국의 대표 건축물과 캐릭터 조형물이 모여있는 이곳에서 간사님들이 사진도 찍어주시고 모두 힘드실텐데도 우리 대신 주성이를 안아주셨다. 정말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착시 테마파크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 가끔 기분이 좋아져서 웃더니 마지막 일정인 ‘초콜릿랜드’에서는 체력이 한계가 온 듯, 직전에 경기를 해서 더 피곤한 듯 보였다. 그래서 초콜릿 만들기 체험은 언니 혼자 하는 걸로.


마지막 저녁식사는 내가 좋아하는 샤브샤브. 살짝 콧노래를 부를 뻔 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주성이가 운다. 처음엔 낯선 곳에서 변을 보지 못해 배가 아파서 우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배가 고파서 운 것! 덕분에 주성이도 잘 먹고 언니와 나도 조금 여유있게, 배부르게, 맛있게 먹었다.


아~ 내일이면 벌써 서울로 돌아가는구나. 시간이 정말 빠르게도 마지막 날이 밝아왔다. 우리는 다른 날과 같이 준비를 하고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전복뚝배기를 이른 점심으로 먹은 후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를 타기 전 잠깐의 휴식시간. 같이 여행 온 가족들을 한 번 쓱 돌아봤다. 주성이를 신경 쓰느라 나를 걱정하느라 다른 가족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어 많이 친해지지 못한 아쉬움이 뒤늦게 밀려왔다. 우리 귀염둥이들의 형제, 자매, 부모, 할머니, 할아버지. 그냥 미안함과 안쓰러움, 걱정, 근심들을 많이 짊어지고 사셨을 텐데 이번 여행에서 많이 행복해하셨고 씩씩함도 보여주셨다. 그분들을 보며 나도 좀 더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주성이와 함께하는 여행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사라졌다. 모두에게 감사했다.


제주도의 멋진 곳들과 맛있는 식사, 매번 챙기고 걱정하며 항상 웃음으로 답해주신 푸르메재단 선생님들. 저희에게 따뜻한 감동과 추억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서운 겨울추위 잘 이기시고 모두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글= 홍주성 가족

*사진= 홍주성 가족, 푸르메재단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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