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고생해 번 돈 꼭 필요한 곳에 가야죠” [한겨레]2006-08-01

 

[한겨레]

[이사람] ‘푸르메재단’에 1천만원 기부한 이현아씨

 

2일 미국 컬럼비아대 박사과정 유학을 떠나는 이현아(27)씨. 31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푸르메재단(www.purme.org) 사무실을 찾은 긴 머리 구릿빛 그의 얼굴엔 시종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는 “남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몇번이나 되풀이했다.

며칠 전 푸르메재단 후원 통장에 1000만원이 입금된 사실을 발견한 재단식구들은 깜짝 놀랐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후원금만 보내온 것이었다.

송금된 은행으로 문의해 볼까, 재단과 관계된 사람들한테 연락할까 고민 고민하다 회원명단에서 ‘이현아’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여보세요, 이현아씨죠? 혹시….” 맞았다. 바로 그 ‘이현아’씨였다.

이씨는 “우연히 가톨릭 월간지 〈야곱의 우물〉을 읽다가 푸르메재단 기사를 보고 기부를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작년 한해 도이체방크에서 주로 인수합병(M&A) 일을 해서 돈을 꽤 벌었어요. 올해 초 사표를 내고 유학 떠나기 전에 그동안 모은 돈을 어디에 쓸까 고민하다가 운좋게 푸르메재단을 만난 거죠.” 그는 “많지는 않지만 푸르메재단이 꿈꾸는 병원을 짓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통계학 석사학위를 받은 이씨는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 박사과정 이수를 위해 또다시 유학길에 오른다.

“지난해 말 도이체방크를 그만두고 트레킹 하려고 네팔을 다녀왔어요. 동생과 네팔 산지를 걸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까’ 고민했어요. 경영학을 공부해 우리 사회에 도움을 주게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했지요.” 그는 “교단에 서게되면 최고경영자들에게 ‘기업도 명분 있게 돈을 쓰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어려운 장애환자를 도우십시오’ 하고 강조하겠다”고 했다.

지난 5월에는 한달 동안 프랑스와 스페인을 여행했다. 이씨는 피레네산맥 북쪽 국경도시 생 장 피에드 포르에서 스페인 서부 산티아고까지 장장 800㎞가 넘는 길을 혼자 걸었다고 한다.

성 야고보가 스페인 전도를 위해 걸었던 바로 그 순례길이었다. “살아오면서 제 자신 부족한 게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았지요. 이 기회에 종교적인 정체성을 찾고 싶었어요.” 이씨는 푸르메재단 1000만원 기부 이전에도 아프리카 난민돕기에 매달 3만원씩 내고 있다고 했다. “제 작은 정성이 남한테 조금이라도 희망을 준다면 이것보다 더 기쁜 축복이 어디 있겠어요?”

 

이상기 기자 amig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