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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푸르메재단에 시가 3억 토지 기증한 이재식·양남수 부부

푸르메재단에 시가 3억 토지 기증한 이재식·양남수 부부

[한겨레 2006-08-31 19:15]

 

“불행은 행복의 또다른 얼굴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이재식(63)씨는 장애 3급으로 한쪽 다리를 굽히지 못해 걷기가 불편하다. 군 복무 시절인 1968년 김신조 사건이 터지면서 긴급출동을 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인대가 파열되고 말았다. 하지만 보험감독원에서 20여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무리 없이 해냈다. 모나지 않고 무던한 성품 탓이었다.

하지만 부인 양남수(54)씨가 2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그의 인생은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병원 두 곳을 옮겨다니며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몸조차 가눌 수 없는 어머니를 보며 아들과 딸도 고통스러워했다. 집안은 어둡고 차가운 늪처럼 가라앉았다. 온 가족이 외출도 거의 포기하는 상황이 몇달이나 이어졌다. 하지만 이씨의 부인 사랑은 지극했다. 거의 모든 수발을 자청했다. 아내가 회복되도록 서울 돈암동 개운산 자락으로 이사도 했다. 그러자 아이들도 변했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받아들였다. 경제학을 전공하던 아들 정두(28)씨는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밤에는 야학교사를 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딸 윤정(30)씨도 수화를 배워 봉사활동에 나섰다. 아들딸의 든든한 지지는 집안에 온기를 되찾아주었다. 이씨 부부에게 갑자기 닥친 ‘불행의 그늘’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지난 6월 이씨 부부는 언론 보도를 통해 교통사고 피해보상금 10억원을 기부한 황혜경씨와, 장애극복상으로 받은 상금 1천만원을 기부한 강지훈씨 소식을 들었다. 두 사람은 그 순간을 두고 “새로운 삶에 눈뜨게 됐다”고 말했다. “장애인이 된 뒤 처음으로 장애인의 아픔이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얼마 전 이씨와 양씨는 푸르메재단(이사장 김성수)을 찾아 기부 의사를 밝혔다. 17년 전 주위의 권유로 사두었던 경기도 평택의 땅(427평)을 내놓기 위해서였다. 이곳은 토지거래 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어 시가로는 3억원 가량이다. 이씨는 “2~3년 뒤면 지하철역도 들어서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며 “땅값이 많이 올라 재활전문병원을 짓는 데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씨가 기부 결심을 다지게 된 건 그 자신도 겪었던 우리나라의 열악한 재활시설 때문이다. 해마다 30만명 가량이 뇌졸중이나 교통사고로 후천적 장애인이 되는데, 전국에 재활전문병원은 모두 5곳뿐이다. 푸르메재단 백경학 상임이사는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포기하는 이들이 많은 만큼 하루빨리 재활전문병원이 여러 곳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씨는 현재 작은 보험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아내 곁에 있는 것이 돈벌이보다 더 좋다. 부인 양씨도 “남편이 늘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오늘 아침도 두 부부는 손을 꼭 잡고 고려대 뒤편 개운산을 함께 걷는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지난 세월 함께 그렇게 걸어왔듯이.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사진 푸르메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