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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장애인들 16명 특별한 거제 여행 “파도반주에 희망노래”

장애인들 16명 특별한 거제 여행 “파도반주에 희망노래”

 

‘거제도로 떠나는 특별한 여행’에 참여한 장애인들이 28일 오전 경남 거제 학동 몽돌해수욕장에서 새해 소망을 적은 종이비행기를 날려 보내고 있다.

장애인들의 겨울나들이는 행복했다. 무대는 경남 거제의 아름다운 바닷가.

서울농학교 졸업반 학생 6명(청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 정신지체장애인 등 16명은 27~28일 이틀간 겨울여행의 재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푸르메재단이 중앙씨푸드(대표 장석)의 도움으로 마련한 ‘거제도로 떠나는 특별한 여행’이름의 행사였다. 한려수도의 굴 양식장과 조선소 등을 둘러보았고, 해돋이를 보면서 가슴 속에 묻어 뒀던 아픔과 새해 희망을 종이비행기에 실어 날려 보내기도 했다.

#1

27년 만이다. 차재엽(51ㆍ지체장애 1급)씨가 1979년 결혼한 남편과 함께 먼 길을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7일 오후 차씨 부부를 태운 버스는 서울을 떠난 지 여섯 시간 만에 거제도의 바닷길로 들어섰다. 시리도록 파란 수면에서 반사된 햇살이 버스 유리창을 두드리자 돌부처처럼 무뚝뚝하던 남편 최기창(59ㆍ지체장애 1급)씨의 표정에도 살짝 설레임이 비친다.

“고교를 졸업하면서 고향인 전남 순천을 떠난 뒤로 바다는 처음이에요.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어요.”불편한 몸으로 시계수리를 하며 살아온 차씨 부부는 결혼 날 친구 차를 얻어 타고 경기 가평군까지 드라이브했던 것이 여행 경험의 전부였다. 차씨 부부는 통통배를 타고 갓 건져 올린 생굴을 까먹으며 젊은 신혼부부보다 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2

“뭘 그렇게 오래 고민하니?” 교사가 수화로 말을 걸자 이상윤(18ㆍ서울농학교 3년)군이 화들짝 놀라 쓰던 것을 감춘다. 28일 오전 학동 몽돌해수욕장에서 이 군은 마지막까지 버스 안에 남아 종이비행기에 쓸 글을 고민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올해 잊고 싶은 일과 새해 바라는 일’을 적어 넣은 종이비행기를 들고 희부윰하게 밝아오는 바닷가를 거닐고 있다. 긴 망설임 끝에 이 군도 종이비행기에 새해 소망을 실었다.

‘올해는 좋지 않은 일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갈로뎃대(미국의 농인(聾人)교육 전문 대학) 같은 곳에 진학해 나와 같은 이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 이 군은 7월 간절히 바라던 미용학원에 들어가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반년도 못 돼 학교로 돌아왔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청각장애 1급’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음을 모두들 알 수 있었다. 해가 떠오르자 이 군은 누구보다 힘차게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3

소아마비 박영권(31)씨의 종이비행기는 제대로 날 수가 없었다. 손가락을 펴는 것조차 불편한 박씨가 접은 비행기 날개는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박씨는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종이비행기를 주워 두 서너번 다시 날려 보내려고 애를 썼다. 내용을 볼 수 있느냐고 묻자 박씨는 “별 것 아니에요”라며 힘들게 얘기하며 수줍게 웃었다.

올 봄 서울시청 앞에서 60일 넘게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던 박 씨가 직접 지은 시가 적혀 있었다. “숨이 막힌다/ 힘껏 뛰고 싶어진다/ 이 우물은 너무 좁다/ 이 긴 다리를 이용해서 뛰고 싶어진다/ 눈을 뜨는 연습을 해 본다/ 꿈에서 본 천국/ 그 천국에 가기 위해/ 이 우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난 그 천국에 갈 것이다.”

거제=글·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