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장애인과 ‘씹는 즐거움’ 나눠요”

“장애인과 ‘씹는 즐거움’ 나눠요”

장애인 전용 치과 운영하는 ‘푸르메재단’

 

2008-12-05 오후 1:31:53 게재

환자 늘어 시설확장 계획 … 의사 일손 더 필요해

고등학생인 소망이(가명·여·17)는 어릴 때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건물 청소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소망이도 학교 수업이 끝나면 어머니의 일을 돕곤 한다.

소망이는 지난해 말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 서울 신교동의 ‘나눔치과’를 찾는다. 이곳 의사선생님과 위생사 언니들은 소망이를 예뻐해 준다. 얼마 전에는 “날씨가 추운데 왜 양말만 신고 있느냐”며 돈을 모아 스타킹을 사주기도 했다. 소망이의 어머니도 시가의 절반도 안 되는 비용으로 안심하고 딸을 맡길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걱정을 한결 덜었다.

‘나눔치과’는 푸르메재단에서 설립한 장애인 전문 치과다. 올해로 개원 1년 6개월째다. 장애인 재활전문병원 건립을 목표로 만들어진 이 재단에서 처음으로 세운 병원이 치과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백경학 상임이사는 “대다수 장애인들은 정신, 신체, 경제적인 문제로 치아 손상에 시달리는 일이 많다”며 “상한 치아 때문에 음식물 섭취가 힘들어져 건강이 더 악화되는 게 문제”라고 설립배경을 설명했다.

나눔병원은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고 치료비가 일반 치과보다 30~70% 정도 싸다.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다른 병원과 달리 장애인 접근성을 고려해 1층을 택했다. 개업의 및 전문의들의 무료봉사로 운영된다는 점도 특색이다.

◆손쓰기 힘든 환자에 ‘눈물 왈칵’ = 지난 1년 반 동안 나눔치과 의사들은 ‘산전·수전·공중전’까지 두루 겪었다. “드릴이 무섭다”며 자꾸 달아나는 통에 보호자와 다른 사무실 직원까지 달려와 온 몸을 붙잡고 치료한 환자도 있다.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는 환자는 직접 부축해서 진료의자에 눕혀야 했다. 젊은 나이임에도 이가 심하게 망가져 틀니를 넣어야 하는 경우는 부지기수.

시각장애인에게 “어떤 색깔의 치아를 원하느냐”고 물었다가 ‘아차’ 했던 적도 있었다. 각양각색의 환자들 때문에 치과는 종종 응급실처럼 급박하게, 때로는 시장바닥처럼 시끌시끌하게 돌아가기도 한다.

장애인들의 치아 상태는 비장애인에 비해 심각할 때가 많다. “가장 건강한 상태를 100점이라고 한다면 60~70점대로 회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할 정도”라는 게 의사들의 설명이다. 그래서 다른 곳 보다 보철(틀니) 시술 빈도가 높다.

개원 멤버인 이동준 원장은 얼마 전 찾아왔던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눈에 밟힌다. 의식이 없어 음식물도 관으로 섭취해야 했다. 그 아이의 입을 열어 본 이 원장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미 빠졌어야 할 유치도 그대로 남아 있고, 영구치가 그 아래로 덧나 있었다. 입안은 온통 치석으로 덮여 있었다. 이 원장은 결국 침대에 환자를 옆으로 눕혀 스케일링을 해줬다.

 

그는 “장애인들은 대부분이 경제적으로도 열악해 손쓰기 힘든 지경까지 가서야 찾아오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5개월째 활동 중인 오승환 원장은 한 달 전 “사랑니를 뽑고 싶다”며 찾아 온 30대 남자가 기억난다고 말했다. 가벼운 뇌성마비를 앓고 있던 그는 유난히 주눅이 들어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병원 여러 곳을 다녀봤는데 대부분 나를 꺼렸기 때문”이란다. 오 원장은 그를 안심시킨 후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니를 뽑고 스케일링도 추가로 해 줬다. 그는 과분할 만큼 고마워하면서 돌아갔다. 오 원장은 “치료 못지않게 정이 필요한 분도 많다”며 “정을 나누다 보면 개인병원에서 느끼기 힘든 유대감을 자주 느낀다”고 말했다.

◆“경기 어려울수록 전문 의료인 손길 더 필요” = 설립 이래 지난 11월 28일까지 이 병원은 총 1163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6261건의 진료를 했다. 하루 평균 18회의 진료를 한 셈이다. 대부분의 환자는 서울, 경기지역에 살지만 종종 제주, 강원, 경상도 등지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갈수록 이곳을 찾는 장애인이 늘어 조만간 건물 3층에도 진료실을 더 열 예정이다.

그런데 최근 나눔치과에도 고민이 생겼다. 개원 당시 10명에 달했던 의사들이 개인적인 이유로 하나 둘 이곳을 떠나면서 현재 5명이 두 사람 몫을 하고 있는 상황인 것. 이동준 원장은 “경기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 같은 전문 의료인들이 나서서 나누는 마음을 실천하는 데 앞장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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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