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장애 청소년들의 거제도 희망여행

13편 동화마다 장애 날린 ‘13개 희망’

12주동안 ‘동화책 만들기 프로젝트’ 참여
보고 듣지 못하는 역경 딛고 책으로 엮어

한겨레 권오성 기자


» 푸르메재단의 ‘동화책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가한 장애 청소년들과 소설가 박완서(왼쪽 네번째)씨가 29일 오후 경남 거제의 한 굴 양식장을 견학한 뒤 붉은 해넘이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30일 새벽 경남 거제도 몽돌해수욕장. 가오리연 10여개가 동트기 전의 어둠을 뚫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오늘 따라 바람이 조는듯 몇몇 연은 오르자마자 떨어졌다. 참다 못한 시원(18)은 둑을 따라 힘껏 뛰었다. 그를 따라가던 연이 공중제비를 돌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하은(10)이 빙그레 웃었다. 곁에 서 있던 ‘자원봉사 선생님’이 “하은이 연, 하늘에 떴다”고 말해줬기 때문이다.

 

색색의 연에는 저마다 ‘우리 가족 모두 짱’, ‘수능 대박 나게 해주세요’,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등 글귀가 씌어져 있었다. 전날 밤, 연에 각자의 새해 소망을 써 둔 것이다. 재현(17·청각장애)의 연은 글자로 빼곡했다. ‘열정’, ‘신뢰’, ‘행복한 가정’ 등 소망도 많다.

장애 청소년 13명의 거제도 여행은 내내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하은은 전날 도착하자 드넓은 진해만 바다가 보이는듯 “와, 바다다!”라고 외쳤다. 귀가 들리지 않는 별(17)은 마치 출렁이는 파도소리가 들리듯 귀를 바짝 세웠고, 휠체어를 탄 하늘(12)은 몸을 들썩거렸다. 이들의 여행에 동행한 소설가 박완서씨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질 줄 몰랐고, 미국에서 와 여행에 동참한 이지선(31)씨도 특유의 맑은 웃음을 지었다. 그는 사고로 안면에 큰 화상을 입고도 꿋꿋이 미국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해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에게도 큰 감동을 준 사람이다.

전날 저녁에는 시 발표회가 있었다.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왜소증을 앓고 있는 소연(14)은 “거제도 바닷가 양식장/ 제일 싱싱한 굴을 보았습니다/ 도대체 어른들은 왜 이렇게 굴을 좋아할까요?”라고 재치있는 삼행시를 지어 폭소를 자아냈다. 창묵(19·청각장애)은 “지금까지 십대의 집에서 노느라 정말 즐거웠어. 시간의 신을 만나면 시간을 멈추라고 뺨을 때릴거야. 그래도, 스무살의 세상에 당당히 들어가자!”며 십대의 아쉬움과 성년의 기대를 수화로 노래했다. 창묵이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우려해 대구대 만화창작과 진학을 두고 수차례 고민하다 이번 여행 전날 진학을 결심했다.

이들의 거제도행은 푸르메재단이 마련하고 현지에서 굴을 생산하는 ‘중앙씨푸드’가 후원한 졸업여행이다. 이 재단이 지난 9월부터 시작한 ‘동화책 만들기 프로젝트’에 동참한 장애 청소년들은 12주 동안 함께 지내며 그림작가의 도움을 받아 동화책을 스스로 만드는 작업을 해 왔다. 지난 22일 성공적으로 사업이 끝났다.

아이들을 가르쳤던 동화작가 고정욱(48)씨는 “장애 청소년 7명의 동화를 묶어 책을 내는 것을 목표로 포기할 아이들을 생각해 13명을 가르쳤는데 놀랍게 모두 한 번도 수업에 빠지지 않고 끝까지 와줬다”고 말했다. 13편의 동화는 ‘스노보드를 타고 거꾸로 에베레스트산을 오른 얼큰이’, ‘모든 것이 종이로 된 마을에 온 화가’, ‘호랑이가 되고서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은 고양이’ 등 기발한 아이디어들로 넘쳐난다. 박완서씨는 “장애 청소년들의 글은 나에게는 놀라운 발견이자 기쁨이었다”며 “우리가 애들을 돕는 것인지 애들이 우리를 돕는 것인지 모를 일”이라고 평했다. 이들의 동화는 내년 4월 책으로 나온다.

거제도/글·사진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