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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민이의 아주 특별한 5월

민이의 아주 특별한 5월

 

치료는 꿈도 못꾸다 복지재단 온정 만나
발달장애 3년 만에 기적같은 첫 걸음마
“유치원 운동회·어린이날 나들이 꿈만같아”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지난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교동 국립 서울농학교 대강당에서 유치원과 초등부 체육대회가 열렸다. 올해 유치원에 입학한 최민(4)군은 흥에 겨웠다. 세발자전거로 이어달리기도 하고, 큰 공도 굴렸다. 춤추기 시간엔 강당 복판에서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민이의 쌍둥이 누나인 초등부 3학년 보람, 아람(9)이도 춤 삼매경에 빠졌다. 최분란(47)씨는 아들 민이의 활달한 몸짓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아이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늘 누워 지냈다.

2005년 9월 민이를 낳았을 때 최씨는 의사에게 갓난아이의 청력 검사부터 의뢰했다. 식당을 운영하다가 늦게 결혼해 낳은 쌍둥이 딸은 백일 무렵 차례로 고열을 앓더니 청력을 잃었다. 혹시 아기도 그 병을 타고 났을까봐, 엄마는 노심초사했다. 불행히도 기우(杞憂)가 아니었다. 아기는 소리에 반응이 없었다.

더욱이 소리를 들을 수 없을 뿐 건강했던 누나들과 달리 민이는 태어난 지 석 달이 넘도록 목도 못 가눴다. 뼈도 물렀다. 발달장애의 징후였다. 5년 전 두 딸의 귀를 고쳐보려 버스를 네 번씩 갈아타며 병원에 다녔던 ‘늙은 엄마’는 다시 아이를 들쳐 업었다.

임신 중 얻은 당뇨로 쉽게 피로해지는 몸을 이끌고 종로구 누상동의 언덕배기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1㎞ 비탈길을 2년 내내 오르내리며 대형병원을 다녔다. 물리치료만 받는데도 1주일에 7만~8만원. 수입은 남편 월급 150만원이 전부인 빠듯한 살림엔 이마저도 부담이라 다른 치료 병행은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민이는 차도가 없었다.

2007년 8월, 치료와 더위에 지친 민이를 업고 귀가하던 최씨는 집 근처 장애인 복지재단인 푸르메재단이 새 달부터 저소득층 장애아를 위한 한방병원을 연다는 플래카드를 봤다. 허영진(40) 원장도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었다. 진료대상으로 선발된 장애아동 30명 중 민이가 가장 심각해 보였지만, 허 원장은 아이의 호전을 자신했다.

주 2회, 꾸준한 치료를 받으며 민이는 목과 허리를 가누기 시작했다. 몸을 뒤집고 가끔 앉기도 했다. 엄마의 가슴에 희망이 조금씩 자라났다. 2008년 9월 어느날 오후, 누워있던 아들을 살피려던 최씨는 깜짝 놀랐다. 어느새 두 다리로 방바닥을 딛고 일어선 민이가 자신을 향해 힘찬 첫 걸음마를 한 것이다.

최씨는 아들은 안고 운동장으로 갔다. 금방이라도 뛸 듯, 부지런히 두 다리를 놀리는 민이를 보며 최씨는 허 원장에게 흐느끼며 전화했다. “원장님! 민이가 걸어요! 지금 학교 운동장에서 저와 함께 걷고 있어요.” 허 원장은 “평소 무덤덤하던 민이 엄마가 감격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 놀랍고 기뻤다. 의사만이 누릴 수 있는 보람일 것”이라고 회상했다.

4일 다시 만난 민이네 가족은 오랜만의 어린이날 외출 계획에 들떠 있었다. 지난해만 해도 누워 지내는 막내 때문에 어린이날도 집안에서 보냈다. 직장이 멀어 주말에만 집에 오는 아빠도 모처럼 연휴를 냈다. 다섯 가족은 집에서 멀지 않은 서울광장과 청계천을 찾을 생각이다. 민이가 걷고 뛸 수 있게 된 후부터 엄마를 졸라 즐겨 찾는 곳이다. 이달 중순 쌍둥이 딸의 생일날엔 가족들이 오붓하게 교외로 기차 여행을 떠날 계획도 세웠다.

최씨는 “민이가 청력만 어느 정도 되찾는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커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입력시간 : 2009/05/05 03:15:56 수정시간 : 2009/05/05 03:2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