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두 얼굴의 '천사'

[일사일언] 두 얼굴의 '천사'

▲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지난해 어느 날 사무실로 한 중년의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28년 동안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하며 많은 돈을 벌었다는 그분은 건강하던 남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돈도, 인생도 덧없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여러 해 전부터 대학에 장학금을 기부해왔는데 우연히 푸르메재단을 알게 돼 매년 1억원을 기부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분은 자신의 신분증과 '아름다운 기부 ○○대학교에 1억원 기탁'이란 신문기사까지 꺼내 보였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직원 모두가 그분의 선행에 감동했다. 인생역정을 어쩌면 그렇게 술술 풀어내는지 모두가 울고 웃었다. 생선을 팔아 모은 1억원도 소중한 돈이지만 그 아주머니의 기부가 널리 알려져 더 많은 분들이 푸르메재단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떨렸다.

나는 마침 선약이 있어, 직원들이 그분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칠 무렵 아주머니가 "서울에 온 김에 1억원짜리 수표를 찾아올 테니 차비를 빌려 달라"고 했단다. 수표를 직접 전달받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 택시비를 건넸다고 한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기부받았다는 대학에 전화했더니 "우리도 당했다"고 말했다.

거금을 희사하겠다고 말했을 때 그분의 모습은 천사였지만 사기당한 후에 보니 사진 속 모습은 영락없는 사기꾼이었다. 반나절의 혼란을 접고 나서 나는 이렇게 마음을 정리했다. 좋은 분 만나서 한 시간 동안 행복했다고 말이다. 순간이라도 세상이 아직 살 만한 곳이라고 느끼게 해 준 그분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선사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다시 평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