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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장애를 ‘다름’으로 바꾸는 홀씨들

장애를 ‘다름’으로 바꾸는 홀씨들

[편집자, 내 책을 말하다] ‘푸르메 책꽂이’ 시리즈

고백컨대, 나는 눈물이 많은 인간이 아니다. 오히려 감정건조한 편에 더 가깝다. 그런 내가 서너 달에 한 번씩은 원고를 보다가 꼭 울컥하게 된다. 올 초부터 만들고 있는 ‘푸르메 책꽂이’ 시리즈 때문이다.

푸르메 책꽂이는 장애인재활을 돕는 푸르메재단과 우리 부키 출판사가 함께 만드는 장애 관련 시리즈로서, 장애인의 생생한 경험담과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가슴 아프고 때로는 감동적인 그들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고 마는 것이다.

사실 나는 장애와 거리가 멀다. 가족이나 친구 중에 장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장애인과 생활한 적도 없다. 장애 문제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던 만큼 처음 이 시리즈를 맡았을 때는 난감함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더구나 첫 책 <나는 멋지고 아름답다> 원고를 받았을 때는 자신감이 땅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이었다. 앞서 진행하던 원고가 출간 기한을 훌쩍 넘겼는데도 번역자와 교정 수위를 두고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역자와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의욕을 잃고,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고민에 빠졌다.

편집자는 원고에서 위로를 얻는다 : <나는 멋지고 아름답다>

그런 상태에서 원고를 집어 들었다.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 ‘말아톤’ 배형진, ‘한국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 교수 등. 24명의 필자들은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의 표본으로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된 유명 인사들이었다. 솔직히 처음 원고를 받았을 때는 흔한 감동 스토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뻔하지 않은가. 어느 날 갑자기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됐고 그 때문에 절망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했고 마침내 장애를 이겨내고 꿈을 이루었다고.

그러나 작업을 시작하고서야 마치 장애인에게 우리가 편견을 갖고 있듯이 원고에 대한 첫인상이 선입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 꼭지의 내용은 비슷했지만 그들이 겪은 아픔과 눈물, 수없이 넘어지고 또 일어선 과정은 결코 뻔하다는 한마디 말로 넘겨 버릴 수 없었다.

한 꼭지 한 꼭지 원고를 읽고 사진을 고르는 동안 내 머릿속도 점차 평온해졌다.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우리는 종종 남의 불행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에 안도하지 않는가. 나도 그랬다. 아, 이 정도의 좌절은 아무 것도 아니구나. 말 그대로 날벼락처럼 장애를 입은 그들에 비하면 내 괴로움은 티끌보다도 작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힘과 용기를 얻었다.

이 책이 나오고 난 뒤, 출간이 미뤄졌던 원고도 무사히 작업을 끝내고 책으로 발간됐다. 그러니 <나는 멋지고 아름답다>로 가장 큰 힘을 얻은 독자는 편집자인 나 자신이다.

 ▲ <나는 멋지고 아름답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
그는 감전 사고로 두 팔을 잃은 뒤 화가로 다시 태어났다. ⓒ부키

편집자에게 원고는 세상을 향한 창이다 : <장애 자녀 평생 설계>

그리고 푸르메 책꽂이의 두 번째 책 <부모가 알아야 할 장애 자녀 평생 설계>가 지난 7월 초에 나왔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장애아의 장래를 위해 부모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세심하게 알려 준다.

저자 자신이 지적장애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책 곳곳에서 그런 절절함과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특히 무엇보다 가슴이 와 닿았던 건 ‘내가 죽으면 내 아이는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이었다. 장애를 온전히 부모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서 혹여 부모가 사고라도 당하게 되면 아이는 혼돈과 불안 속으로 내던져진다. 그러다 보니 부모는 늘 이런 고민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직접 겪어 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들의 고통을 짐작하기도 어렵다. 오죽하면 ‘아이보다 5분만 더 살고 싶다.’는 말을 할까.

더군다나 참고 도서를 찾아보니 장애인, 특히 지적장애인의 자립을 다룬 책은 몇몇 특수교육 교재 외에는 전무한 실정이었다. 부모가 아이의 자립을 설계하려 해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조차 없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이 자립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 주는 반증인 셈이다.

도움말을 구하기 위해 장애인 복지관의 실무자를 만났다. 그에게 들은 장애인의 현실은 내 짐작보다 더 열악했다. 자폐나 지적장애인은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고 옷을 입는 기본적인 생활도 혼자서 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 생계를 유지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직업을 구한다고 해도 대부분 장애인 작업장에서 단순 작업을 하는 일이라서, 일당이 고작 몇 백 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니, 장애 자녀의 자립과 미래를 설계하라는 우리 책이 한국 사회에서는 조금은 앞서 가는 듯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점점 더 많은 부모들이 장애 자녀의 자립을 준비할 것이다. 그들이 막막한 어둠 속을 헤맬 때, 우리 책은 작으나마 또렷한 희망의 등불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부키

세상을 향해 날아가는 작은 홀씨들

푸르메 책꽂이는 올 하반기에 한 권 더 나올 예정이다. 11월께 발간될 <숏버스(원제)>라는 책으로, ‘숏버스(short
bus)’는 장애 학생들이 타고 다니는 작은 스쿨버스를 말한다. 저자 조너선 무니는 난독증ADHD(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를 이겨내고 명문 브라운 대학 영문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 책은 그가 낡은 숏버스를 타고 미국 곳곳을 여행하며, 과연 ‘정상’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과정을 기록한 유쾌한 여행기이다. 발랄하면서도 감동적인 책이라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장애가 ‘장해’가 되지 않는 세상. 장애가 ‘다름’일 뿐인 세상. 그런 세상이 되면 이 시리즈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겠지. 그때까지 ‘푸르메 책꽂이’의 작은 홀씨들은 계속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갈 거다.

/ 김남희 도서출판 부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