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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기자→맥주집사장→복지재단 이사’ 그가 이런 삶을 사는 까닭

‘기자→맥주집사장→복지재단 이사’ 그가 이런 삶을 사는 까닭

2011-06-20 (월) 12:09

푸르메재단 백경학 상임이사 기자, 국내 최초 하우스맥주 사업 거쳐 복지재단 설립까지
아내 교통사고 이후 장애인재활전문병원
세우기 위한 발걸음 뚜벅뚜벅

 

통일전문기자가 되고 싶어 떠난 독일 연수 시절이었다. 2년 간의 공부를 마친 1998년 여름. 귀국을 앞두고 가족 여행 도중 예기치 못한 일이 터졌다. 영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아내가 100일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것. 사회부 기자 시절 숱하게 봤던 불행한 참상을 직접 겪을 줄이야. 다행히 아내는 깨어났지만 한쪽 다리를 잃었다.

그 후 인생의 궤적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잘나가던 신문기자를 관두고 국내 최초 하우스맥주 사업자를 거쳐 장애인복지 사업에 뛰어들었다. 푸르메재단 백경학(48) 상임이사 얘기다. ‘따뜻하고 건강한 사회’를 꿈꾸며 팔을 걷어붙인 그를 최근 서울 종로구의 푸르메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국의 장애인을 위한 재활실태 충격”

1999년 말, 독일에서 아내의 재활치료를 마치고 귀국한 이후부터 끔찍한 나날이었다. 열악한 국내 재활 환경 탓이었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온 것 같았어요.” 마치 국립공원 안에 있는듯 독일 재활병원은 쾌적한 환경에다 환자 입장에서 환자를 중심으로 한 치료가 이뤄졌다. 의료진이 24시간 아내를 돌봤고, 아무리 보호자라 해도 오후 4시 이후에는 병원을 나가야 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처음 찾아간 재활병원에서는 “병실이 없다”는 말부터 들었다. 2∼3개월을 기다려야 입원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찾은 또 다른 재활병원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환자와 보호자, 간병인들이 좁은 병실을 가득 메웠고, TV 소리와 음식냄새 등으로 환자가 안정을 취하기는 커녕 상태가 악화하겠더라고요. 산책할 곳이 없어 병원 로비와 주차장을 서성거렸을 정도니.” 그래서 아내는 인적이 드문 새벽 시간을 이용해 복도에서 걷는 연습을 해야 했다.

백 이사는 곧 ‘한국의 재활병원을 바꿔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영국과 독일처럼 자기 집 같은 환경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가족처럼 돌보는 곳을 세워 보자고.

◆직접 만든 맥주로 종잣돈을 마련하다

문제는 돈이었다. 장애인을 위한 재활병원 짓기 위한 재단법인 설립 자금이 필요했다. 모아둔 돈도 없이 사업 구상을 하던 그에게 잘 아는 취재원한테서 솔깃한 말을 들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소규모로 맥주를 제조하는 사업이 허가가 날 것이란 거예요. 이거다 싶었죠. ”

백 이사는 독일 연수시절 만났던 대학 후배에게 연락했다. 그 후배는 ‘맥주의
본고장’인 독일로 유학을 가 맥주양조학을 전공했다. “유학 당시 후배가 내게 ‘선배 맥주사업 한 번 같이 해봅시다’라고 할 때는 ‘사업에
관심없다. 기자로서 계속 좋은 글만 쓰련다’고 거부했었는데, 그렇게 손잡게 되더라고요.” CBS와 한겨레 신문, 동아일보를 거친 기자 이력에도
마침표를 찍었다. 주위에서는 뜯어 말렸지만 그의 결심은 확고했다. 지인들을 만나 재단법인 설립을 위한 맥주 사업의 취지를 설명해 59명한테서 5000만원씩 30억원 가까이를 투자 받았다.

하지만 국내 최초 하우스 맥주 집을 차리는 것은 간단치 않았다. 독일에서 직접 공수한 양조 기계는 세관에서부터 막혔다. “세관에서도 처음 보는 기계라 통과시킬 수 없었어요. 국내법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때라. 결국 모양이 엇비슷한 ‘보일러’로 신고해 들여오게 됐죠.”

2002년 6월, 우여곡절 끝에 한국 최초의 하우스 맥주집인 ‘옥토버훼스트’가 서울 강남에 문을 열었다. 다행히 사업은 성공적이었고, 지금은 마포 등 서울  6개 지역에 지점을 두고 있다.

사업이 안정권에 든 즈음 백 이사는 맥주집 지하 한 켠에서 재단 설립 작업에 착수했다. 옥토버훼스트 사업지분에다
아내가 영국의 가해차량 보험사와 8년간의 지루한 소송 끝에 받은 피해보상금 중 11억원을 쏟아부었다. 또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와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강지원 변호사 등을 설득해 2005년 3월 마침내 ‘푸르메재단’을 세웠다. “재단 이름은 ‘푸르른 산’이란 뜻이고, 1대주주는 ‘옥토버훼스트’입니다. 옥토버훼스트 수익금이 장애인 복지 사업에 쓰이는 셈이죠.”

재단 설립 직후에는 재단과 재활병원의 필요성을 알리는데 주력했다. “한국에서 갑작스레 장애인이 된다는 것이 어떤건지, 말 그대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현실을 알리고 재활병원의 필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2007년 7월에는 민간 최초로 장애인 전용 치과인 ‘푸르메나눔치과’를 재단 건물 1층에 열었다. “장애인에게 가장 절박한 치료는 의외로 치과치료였어요. 보험이 안 되는 게 많아 비용도 비싸고, 대부분 치과 건물이 2층 이상에 위치해 접근성이 떨어지는데다 병원들도 장애인 환자를 꺼리는 경향이 많거든요.” 재단 측은 장애 유형과 등급에 따라 최고 70%까지 치료비를 할인해주고,
장애인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편하게 치료 받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그러자 전국에서 장애인 치과환자들이 찾아와 예약이 2∼3주씩 밀려들고 있다.

그해 8월에는 장애아동 한방진료를 위한 ‘푸르메어린이재활센터’도 개소했다. 이후 재단은 서울 종로구와 협의해
600평 규모의 부지에 재활전문센터와 복지관을 짓기로 했다. 가칭 ‘세종마을 푸르메센터’는 어린이 재활센터와 장애인 전용 치과, 재활의원, 복지관 등을 결합한 형태로 내년 6월 개관 예정이다.

2012년 6월 서울
종로구에 개원 예정인 세종마을 푸르메센터

 

◆공동체가 참여하는 ‘사회적’ 재활전문병원을 꿈꾸다

세종마을 재활센터 건립은 백 이사에겐 시작에 불과하다. 재단의 목표는 여전히 재활전문병원의 설립이어서다.
“장애인들이 재활센터에서 낮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섬처럼 고립돼요. 곁에서 가족이 돌봐주는 여건이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갑작스런 장애 환자가 생기면 가족들이 우왕좌왕하다 최악의 경우 해체될 수도 있습니다.” 그가 장애인 재활 문제를 사회적 책임으로 보는 이유이다. 재활을 넘어 자활이 가능할 때까지 환자를 24시간 책임지는 병원이 국내에서도 많이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는 바로 내일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다’는 인식 하에 장애인 재활과 자활을 사회적으로 부둥켜 안아야 할 대상으로 보는 문화를 만들고 싶은 소망입니다.”

이를 위해 우선 돈이 부족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재단에 기부하는 개인과 기업이 이들의 치료비를
보태는 것을 하나의 사회 운동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재활병원 옆에 세울 자활기업도 구상 중이다.

“장애 아동을 가진 어머니는 아이보다 하루 늦게 죽는 게 소원인 경우가 많습니다. 장애 자식이 어머니의 평생 굴레가 되지 않도록 하고 싶어요. 스스로 일해 자활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현재 서울시내 한 자치구가 재활병원과 자활기업을 함께 설립하는 재단의 계획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매달 소액을 기부하는 정기 후원자 3000여명한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도 그는 국내의 척박한 기부문화에는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재단 설립 이래 삼성을 비롯해 굴지의 대기업 등 수 많은 기업들을 찾아갔지만 대부분 ‘우아한 거절’을 했다는 것이다.

“사회 공헌 꽤나 한다는 기업은 기업의 로고나 이름을 박은 재단을 설립해 운영하는 걸 선호하더라고요. 일면식도
없는 전문가들한테 돈을 그냥 주기보다는 연말에 티나게 자체 봉사활동 등을 해서 기업 홍보에 활용하는 게 낫다는
생각인거죠.”

그는 큰 돈을 버는 국내 글로벌 기업과 기업인들이 더 큰 그림을 그리길 바랐다. 엄청난 영업이익을 내는 기업이나 배당금을 받는 재벌 회장 등이 일부를 떼내 국내·외 장애 어린이들을 위한 복지사업을 도우면 오래도록 박수 받지 않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형편이 넉넉치 못한 사람들이 월급을 쪼개 기부하는 경우가 훨씬 많단다.

그는 재단 설립 직후 찾아온 노년 부부를 잊지 못한다. “두 분다 사고로 장애를 가진 분들이었는데, 재단 관련 기사를 보고 노후 자금으로 마련한 땅문서를 가지고 왔더라고요. ‘장애인이 되고 보니  세상에 기댈 곳이 없더라. 좋은 병원 세우는데 써달라’면서.”

백 이사는 “이 길을 걸어가라고 나와 우리 가족이 죽을 듯한 고통을 겪고, 그 속에서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던 것 같다”며 ‘건강한’ 기부자들을 찾아 부지런히 뛰었다.

이유진 기자 heyday@segye.com

■푸르메 재단 후원문의(www.purme.org,
02-720-7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