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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 푸르메재단 백경학 상임이사의 ‘선한 영향력’

푸르메재단 백경학 상임이사의 ‘선한 영향력’

아내의 사고로 재활병원 건립에 앞장서다

2014-07-08

가족의 아픔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슬픔이 된다. 그에 대처하는 방식은 누구나 다르기 마련이지만, 슬픔에 낙심하지 않고 가족의 상처를 보듬어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많은 이들을 위해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모금 운동을 통해 어린이 재활병원을 건립하는 푸르메재단 백경학 상임이사의 이야기다. 그는 불현듯 찾아온 인생의 시련을 극복하고 10년 가까이 어린이 재활병원 확산에 힘써 온 숨은 주역이다. 건전한 사회 발전을 위해 ‘선한 이웃’을 자처한 그는 어린이 재활병원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벽을 허무는 아름다운 청사진을 그린다.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아내의 교통사고로 그늘진 다른 세상을 보다

백경학 상임이사는 20여 년 전 기자로 활동했다. 당시 그는 독일 사회가 통일된 이후 여전히 통합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이 문제를 연구해 ‘통일 문제 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기자로서 독자적인 전문성을 고민하던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고심 끝에 통일 문제 연구를 위해 그가 향한 곳은 독일의 뮌헨대학이었다. 뮌헨대학에서 초빙 연구원 생활을 하기 위해 그는 고국을 떠나 때 늦은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통일 문제 전문가가 되려고 준비를 하다가 독일 뮌헨대학에 2년 동안 초빙 연구원으로 가게 됐어요. 사실 한국에 있을 때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공부까지 하다 보니 가정을 돌볼 여유가 없었죠. 하지만 독일에서는 가족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면 서 즐겁게 지냈고, 세 권의 책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행복한 순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가족들과 함께 영국 여행을 하던 중 아내가 큰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사고 이후 아내는 100일간 혼수상태에 빠져 사경을 헤맸고, 불가피하게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국도와 고속도로의 중간 개념인 모토웨이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아이가 대변이 급하다고 해 서 비상 깜빡이를 켜둔 채 차를 세워 놓고 있었는데, 아이의 속옷을 챙기려고 트렁크로 가던 아내가 한순간 ‘쾅’ 소리와 함께 차에 치였어요. 그 사고로 아내는 다리를 심하게 다쳐서 혼수상태에 빠졌어 요. 스코틀랜드 외곽에 있는 작은 병원에서 감염된 다리를 절단해야 했죠. 아내는 두 번의 수술을 더 받고 나서 불행 중 다행으로 의식을 회복했어요.”
그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고통의 시간들을 겪고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독일 생활을 접고 고 국으로 향하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아내가 대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장시간 비행을 견딜 만한 체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현지 항공사를 수소문해 아내의 사정을 설명하고 비즈니스 4석을 확보했다. 거처가 있던 독일에 가까스로 도착한 그는 황망한 심경으로 아내의 재활치 료를 돕는데 전념해야 했다.
“이전에는 가족이나 친척이 모두 건강한 편이어서 병원 치료를 받은 적이 없었는데, 아내가 그날 사 고로 독일 재활병원에서 1년 3개월 동안 재활치료를 받게 된 거죠. 얼마나 마음이 무겁고 안타까웠 는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 아픈 일이에요. 귀국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아내의 재활치료를 도와 주던 독일 의사가 ‘가장 좋은 병원에서 한국식 재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해주더군요. 저는 그 때까지만 해도 독일처럼 한국에서도 병원에 찾아가기만 하면 원하는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줄 알고 있었죠.”
하지만 그의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당시 한국에는 재활 전문 병원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대형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으려면 2~3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아내는 재활 시기를 놓치면 근육 이 굳어질 수 있는 상태여서 매일 전문적인 재활치료를 해야 했는데, 국내에는 재활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을 즉각적으로 수용할 만한 병원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우리나라에 재활병원이 없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고, 조금씩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나갔다.
“재활병원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의료 수가가 너무 낮기 때문이에요. 환자가 오래 입원할수록 적자 가 나는 구조이니까요. 그래서 대형 병원에서는 1인실이나 2인실로 비싼 의료비를 받아서 적자를 보전하는 상황이었죠. 의료 선진국에서 재활치료를 받거나 기다림을 감내하고 나서라도 1~2인실 에 입원하려면 아무래도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중산층 이하 사람들은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때 저 혼자가 아닌 뜻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하면 재활병원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비영리 재단이 필요했는데, ‘시기가 오면 재활병원을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푸르메재단을 만드는데 동참하게 된 겁니다.”

 ▲ (위)어린이재활병원 착공식 모습 (아래) 지난 2012년 10월에 열렸던 이해인수녀와 함께하는 희망나눔콘서트

2015년 완공될 예정인 어린이 재활병원

푸르메재단의 핵심 사업은 재활 전문 병원을 건립하는 것이다. 현재 세계분쟁지역을 돌며 구호에 앞장서는 유니세프나 선교봉사단체인 월드비전 등과 같이 푸르메재단의 목표는 분명하다. 재활치 료가 필요한 어린이들에게 재활치료의 기회를 주고, 나아가 장차 아이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실제로 어린이 재활치료 시설을 갖춘 신교동 세종마을 푸르메센터에는 장애를 가진 청년들의 ‘삶의 터전’인 빵집이 있다. 백 이사는 “재단은 아이들의 치료는 물론, 그들이 성장한 이후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단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재활치료를 받으면 상당히 호전될 수 있는 아이들에게 재활 치료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갈 만한 아이들에게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제공해서 삶의 터전을 만들어 주는 것이죠. 현재 재활병원 내에 장애인 청년들을 위한 작업장을 구상 중인데, 그곳에서 직업 교육과 훈련을 통해 취업을 도와주자는 취지예요. 현재 세종마을 재단센터에 있는 1층 빵집에서 장애인 청년들이 취업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어머니들은 자녀가 돈을 버는 것보다 일을 하는 것 자체를 큰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푸르메재단의 오늘이 있기까지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민 기부자들의 힘이 컸다. 백 이사는 기부자 한 명 한 명을 가슴에 새기고 있지만, 특히 한 명의 기부자에게 큰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유학 시절 척수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되었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회사를 운영해 성공을 일군 중소기업체 대표다. 장애에 굴복하지 않고 자수성가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지만, 더 나아가 장애인들의 재활병원 건립을 위해 10억원을 쾌척함으로써 진정한 나눔 정신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의료 기술과 과학이 접목된 인체 보조 기구를 제작하는 한 벤처기업 대표의 이야기예요. 그분은 미국 유학 시절 척수를 다쳐 하반신 마비로 장애를 갖게 되었는데, 불굴의 의지로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나서 기업을 운영해 성공을 이룬 경영자죠. 그분이 청운동에 살고 계셨는데, 과거 임대로 상주해 있던 재단 건물 앞을 자주 지나다니다가 우연히 재단 로고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해요. 그러다 재단 홈페이지에서 재단의 활동 내용을 확인하고 설립 정신에 공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장애를 가진 우리나라 아이들도 자신처럼 성공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세종마을 재단센터를 짓고 있을 때 10억원을 기부하셨죠. 그분이 대단한 것은 또 다른 기부를 낳게 한 점이에요. 넥슨의 김정주 사장이 우연히 신문을 보다 이 중소기업 대표의 이야기를 접하고는 감동을 받아 재단에 찾아오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는 상암동 어린이 재활센터를 짓는데 10억원이라는 기부금을 약정하셨어요. 이처럼 한 명의 선한 기부자는 나눔의 물결을 일으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는 건강한 중산층이 이끌고 있는 우리의 기부 문화를 높게 평가했다. 건강한 중산층의 기부가 더욱 빛나는 것은 기부금에 담긴 의미 때문이었다. 그는 “부친의 조의금으로 모인 돈이나 돌잔치를 계획하며 모은 돈을 어린이 재활치료비로 내놓은 기부자들을 볼 때면 나눔의 의미를 신중하게 되새길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어떻게 보면 많이 넉넉하지는 못하지만,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건강한 중산층, 또는 그보다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다른 가난한 이웃들에 대해 공감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조의금이나 돌잔치 준비금을 고민 끝에 내놓았을 기부자들을 통해 저 역시도 깨닫는 바가 클 수밖에 없죠. 그런 점에서 아직까지는 부유층보다 서민들이 이웃과 나누고 함께 아파하는 일에 동참하려고 하는 선의가 더 큰 것 같아요.”

막연한 편견 대신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 주길

현재 그의 주된 관심사는 상암동 어린이 재활병원에 쏠려 있다. 기부자들의 도움으로 병원 건립에 필요한 돈이 조금씩 마련되는 과정에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병원이 들어서는 상암동 인근 일부 주민들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 사람들이 기피하는 건물, 시설 등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이른바 ‘님비현상’이다. 백 이사는 그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어린이 재활병원 역시 세종센터 푸르메센터처럼 지역사회에 편의와 교육 프로그램, 의료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의료문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이 재활병원에 대해 환영하는 분들도 있지만, 교통 혼잡과 장애아로부터 나쁜 영향을 받는다는 이유로 완강하게 반대하는 주민들이 있어요. 그분들이 워낙 외골수이고 강성이어서 설득하는데 조금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죠. 세종마을 푸르메센터도 처음에는 반대했던 분들이 지금은 더 좋아하고 있어요. 지역 주민을 위한 치과나 소아청소년과, 그리고 회의실, 도서관까지 개방하고 있어서 많은 주민들이 좋아하세요. 특히 장애와 비장애의 벽을 허물 수 있는 공간이어서 인근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환영의 뜻을 내비치기도 해요. 당장 ‘반대하는 분들의 선입견을 어떻게 깰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지만, 잘 설득해서 병원을 운영해 보면 그분들의 생각이 분명 달라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는 어린이 재활병원이 재활치료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매김하기를 희망했다.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이 치료비를 걱정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푸르메재단이 건립 중인 재활병원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상대적으로 강북 지역 장애아들이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데, 상암동 재활병원이 완공되면 장애인 복지 부분에서 강남과 강북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린이 재활병원은 외래와 입원을 포함해서 총 250~300명 정도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에요. 강북이 강남 지역보다는 재활치료 시설이 부족하고 경제난으로 치료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어린이 재활병원이 그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는 재단의 상임이사로서 병원 운영에 따르는 재정 문제를 걱정해야 하는 입장이다. 수익보다는 공익적인 역할이 부각되는 재활병원인 만큼 병원의 재정 적자는 불가피해 보이지만 나눔의 손길이 더해진다면 넘지 못할 산은 아니라는 게 백 이사의 생각이다.
“이미 서울시가 재활병원 운영에서 발생하는 적자의 절반 정도를 지원하기로 합의한 상태예요. 여기에 현재 6천 명 정도 되는 기부자들이 1만 명 정도로 늘어나면, 병원의 적자를 메우는데 어느 정도 숨통을 틔우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재단은 기업으로부터 기부를 받아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의 치료비를 지원해 주는 역할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해요. 만약 상암동 어린이 재활병원이 잘 운영되고 많은 아이들이 그 혜택을 받게 된다면,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도 재단이 주도적으로 재활병원 건립을 추가 제안할 수 있겠죠. 앞으로 푸르메재단을 통해 건강한 움직임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푸르메재단은…>
푸르메재단은 장애인과 가족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재활치료 및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재활 전문 의료기관을 건립·운영하는 곳이다. 장애인이 사회구성원으로 차별받지 않고 지역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사회문화를 조성하며 개인과 단체, 기업들과 함께 장애인 자립과 연대를 위해 2005년 3월 9일 설립한 비영리공익법인이다. 푸르메재단은 ‘장애인이 장애인으로 인식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는 설립 이념을 기반으로 2015년 어린이 재활병원 개관, 푸르메재단 사회적 기업 매출 50억원 달성 등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후원 문의 : 02-720-7002 / ARS 060-700-1002

박천국 기자 havnpar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