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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즈헬스] 초인처럼 벌어서 천사처럼 쓴다!

스포츠로 나눔을 실천하는 다섯 남녀

초인처럼 벌어서 천사처럼 쓴다!

달리고, 헤엄치고, 물살을 가르며 사람들을 돕는 이들은 스스로 ‘기부’보다 ‘나눔’이라고 표현한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지만, 또 그 누군가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2014-09-24 [2014년 9월호]

32,000,000,000
어린이 재활병원 건립에 현재까지 모금된 액수

[션, 뮤지션_트라이애슬론]

Donatory is Energy!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 국내에 재활치료가 필요한 어린이는 30만 명이 넘지만 시설이 미비해 치료가 어려운 상황이다.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은 그나마 관련 시설이 갖춰져 있는 시각 장애, 청각 장애를 제외한 모든 장애 어린이를 위한 시설이다. 지난 3월 착공식을 가졌지만 더 나은 시설을 위해 110억 원을 추가 모금하고 있다. 션의 ‘만원의 기적’ 캠페인을 통해 도울 수 있다.

말은 누구의 입에서 나오는가에 따라 무게가 바뀐다. ‘이겨내면 이겨내져요’ 하는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도 션의 입에서 나오면 꽤 단단하게 들린다. ‘너도 할 수 있다’는 심심한 말도 션이 장애아의 손을 쥐고 내뱉으면 열띠게 들린다. 그 모든 말들이 허투루가 아니라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여 얻어낸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재작년 여섯 가지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 은총이를 위해 트라이애슬론을 시작했다.

처음 그가 느낀 건 ‘아무리 노력해도 넘지 못할 벽’이었다. 하지만 지독한 훈련 끝에 결국 같은 해 코스를 완주했고, 작년에는 서브3(코스를 3시간 내에 완주하는 것)를 기록했다. 올해는 2시간 30분대 완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도전하니까 다 되더라.” 그는 직접 뛰고서야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고 했다. “조금씩 더해 가면 다 할 수 있어요. 10km를 뛰려면 9.9km를 뛰고 난 후에 100m를 더 가면 되죠. 운동을 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돕는 방법도 꼭 그래요.”

은총이를 지원하던 그는 지금 ‘100만 명의 또 다른 은총이’를 위해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 있다. 루게릭요양병원 건립 캠페인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홀트아동복지회에도 매년 거금을 기부하고 있다. 매일 아이들이 깨기 전에 일어나 새벽에 훈련을 하며 1년에 150여 차례 강연을 하고 일주일에 세 번까지도 대회에 출전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한 번도 지쳐본 적은 없다고 말한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가 트라이애슬론 경기이고 마라톤이잖아요. 우리가 너에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게 아니다. 너와 함께 뛰고 있다. 그 마음을 전하는 게 중요한 거죠.”

200people
육상용 휠체어 마련 2차 프로젝트의 목표 후원자 수 

[양유진, 대학생_트레일러닝]

Donatory is Energy! 장애인육상 선수들 대한장애인육상연맹에 등록된 선수는 많지만 대부분 등록만 해놓고 운동을 못하고 있는 경우다. 장애인육상을 위해서는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며, 장비가 있다 해도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운동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양유진 양은 박윤재 선수에게 800만원 상당의 선수용 휠체어를 지원하기 위한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양유진은 사하라사막 250km와 고비사막 250km 오지레이스를 정복한 여대생이다. 시간 내 완주하는 정도로 만족한 것도 아니다. 그녀는 어떤 오지에서건 뛰어다녔다. 고비사막 레이스에서는 여자 3위를 기록했고 작년 제주국제트레일러닝대회에서도 여자 3위를 기록했다. 그렇게 산전수전 다 겪은 그녀에게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 뭐였느냐고 물으면, 그녀는 ‘기부처를 정하던 때’를 꼽는다.

“기부 마라톤을 하면 운동하면서 좋은 일도 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문제는 그다음이었죠. 모두 저마다의 사연이 있잖아요. 누구를 도와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어요.” 그녀가 찾은 해답은 ‘자신이 뛰어 다른 누군가를 뛸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휠체어가 없어 운동을 하지 못하는 장애인육상 선수 박윤재 군을 위해 강릉에서 고성까지 108km를 달렸다. 그녀의 뜻을 전해들은 장애인육상 국가대표 이윤오 선수와 휠체어레이싱의 홍수화 선수도 함께했다. 셋은 예정했던 거리를 완주했지만, 안타깝게도 예정한 만큼 기부금이 모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거죠. 제가 유명인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아직도 마케팅에 너무 집중하고 싶지는 않아요. 제 생각은 그래요. 포기하지 않는다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까요?” 그녀는 지금 모금의 2차 프로젝트로 16일에 걸쳐 대한민국을 한 바퀴 돌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는 그녀가 모집한 팀 ‘드림러너’의 세 조력자가 함께 한다. 분명, 조력자는 계속 늘어갈 것이다.

288hours
RAAM 종주를 위해 쪽잠을 자며 자전거를 달린 시간 

[김기중, 주식회사 삼일 대표_사이클]

Donatory is Energy! 오뚜기 쉼터 연고가 없는 탈북 청소년들의 정착을 돕는 공간이다. 물론 자금 지원도 필요하지만 탈북 청소년의 경우 차별적인 시선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아 사람들의 관심이 시급하다. 현재 여자 아이들을 위한 공간만 조성되어 있어 남자 아이들을 위한 시설 확충도 필요하다.

“대회 후반쯤 환각 증세 때문에 결국 탈락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자꾸 오뚜기 쉼터의 아이들이 눈에 밟히더라고요. ‘이루지 못할 꿈은 포기해도 되는 것.’ 그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작년 미국 대륙횡단 레이스RAAM에 참가한 김기중 대표는 중간 탈락하고도 대회 종료일까지 계속 페달을 밟았다. 국내에 돌아와서는 못 채운 500km를 마저 달리기까지 했다. RAAM은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레이스라고 불리는 자전거 경주. 매해 사상자가 나오는 이 대회에 김기중 대표는 두 번을 출전했으며 모금액은 모두 강릉 자비원에 기부했다. 금액이 모자라면 자신의 자전거나 카메라를 팔아 충당하기까지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기부에 아주 비관적이었어요. 평생을 장학사로 사셨지만 고맙다는 편지 한 통 받아본 적 없는 아버지 때문이었죠. 기부가 꼭 ‘주는 행위’가 아니라 ‘힘을 받는 행위’라는 걸 알게 된 지는 얼마 안 되었어요.” 물론 두 번의 대회가 그에게 안겨준 모든 게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참가비나 준비 명목으로 1억 원에 가까운 비용이 들었고, 치료했다고 믿었던 희귀난치병 베체트병도 재발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상대가 눈살을 찌푸리면 김기중 대표는 그저 웃어 보인다.

“요즘 듣는 노래에 ‘그 웃음이 나에겐 커다란 의미’라는 가사가 있어요. 얼마 전에 오뚜기 쉼터 아이들이 웃는 걸 보면서, 그게 어떤 뜻인지 딱 느꼈죠. 저한테 이제 기부는 주는 행위도 힘을 받는 행위도 아니에요. 저는 그냥 우리를 위해서 달리는 거예요. 제게 그 아이들은 이제 ‘우리’거든요.”

3,810m
원정대가 찾았던 에베레스트 포르체 초등학교의 고도 

[김영식, 중학교 교사_클라이밍]

Donatory is Energy! 네팔 히말라야 오지 학교들 히말라야 산맥 곳곳의 오지에도 학교는 있으나 그 시설이 아주 열악하다. 유리창이 없는 건물에서 나무에 페인트를 칠해 만든 칠판을 사용하는 곳도 있다. 10만원이면 그들에게 1년간 영어 강사를 지원해 줄 수 있으며 헌 옷이나 학습 기자재, 학용품, 책 등 쓰다 버리는 물건들도 큰 도움이 된다.

이 칼럼에 소개된 다섯 사람 중 주변에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아보지 않은 이는 없다. 누군가는 달리다가 발톱이 몽땅 빠지고 발목이 틀어졌으며, 누군가는 수면부족과 탈수로 환각 증세에 시달리기도 했다. 심지어 김영식 선생은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지 두 달 뒤에 히말라야를 등정했다. “클라이밍을 좋아하다보니 히말라야를 자주 찾았어요. 하산할 때 보이는 열악한 오지 마을이 항상 눈에 밟혔죠. 그러다 처음 학생들을 동반해 히말라야를 찾게 되었는데 그때서야 뭔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충주 중앙중학교 교사이자 대한산악연맹 청소년이사를 맡고 있는 김영식 선생은 지난 10년간 매해 탐사대를 꾸려 히말라야 오지 학교들을 찾아다녔다. 관광지 주변 학교들은 그나마 많은 구호를 받고 있지만 산맥의 오지 학교들은 여전히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까지는 차가 닿지 않기 때문에 구호 물품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직접 물건을 갖고 오르는 수밖에 없다.

그는 매해 50명 정도로 구성된 팀을 꾸린다. 각 대원들이 짊어지는 가방 무게는 약 30kg. 버리고 버려 개인 짐은 15kg 정도만 챙기고 나머지는 1년간 모은 구호물품으로 채운다. 그간 모인 성금으로는 교실이나 수도 시설을 재정비하고 도서관을 지어주기도 한다. 그는 인터뷰 다음 날에는 킬리만자로로 떠난다고 했다. 거기에도 탐사대가 도울 것이 있는지, 답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4,500km
지난 4년간 벌인 모금 마라톤의 합산 거리

[진오 스님, 대둔사 주지_마라톤]

Donatory is Energy! 달팽이 모자원 남편사망, 이혼, 폭력 등의 이유로 파탄이 난 다문화 가정을 위한 공간이다. 결혼 이주 여성의 신변을 보호하며 그 자녀의 생활과 학습을 지원한다. 지난 3월 개원했으나 아직 설립할 때 대출받은 금액을 다 갚지 못한 상황이며 군에서 한쪽 눈을 실명한 진오 스님의 국가유공비가 유일한 운영자금으로 쓰이고 있다.

스튜디오에 들어선 진오 스님은 갑자기 바닥에 앉더니 한참을 일어설 줄 몰랐다. 가방에 현수막을 달려고 하는데 온통 녹슨 핀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비를 맞아서 그래요.” 수행자에게 청빈함이란 몸에 밴 습관과도 같은 것일 터. 스님은 처음 기부 마라톤을 시작할 때를 회상하며 ‘창피했다’고 표현했다. 수행자의 몸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물질적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어색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 2011년부터 끊임없이 ‘돈을 모아 달라’며 달려왔다.

이유는 매번 달랐다. 사고로 뇌의 반쪽을 잃은 베트남 노동자 청년을 위해, 이민 여성과 그 자녀의 쉼터를 위해, 탈북청소년과 일본 쓰나미 수재민을 위해, 한국에서 운명한 베트남 여인들의 고향에 기념비적인 화장실을 지어주기 위해. 얼마 전 펴낸 책의 제목은 처음 느꼈던 ‘창피함’에 대한 대답 같았다. <혼자만 깨우치면 뭣 하겠는가>.

“곱지 않은 시선도 많아요. 어떻게 승려가 가사를 벗고 달리기나 하냐고 말하죠. 하지만 ‘스님이 왜 달릴까’ 하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는 걸로 저는 만족해요. 지금은 선행을 몰래 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시대거든요.” 그의 ‘나눔’을 받은 것은 비단 금전적 도움을 받은 쪽만은 아니다. 그는 혼자만 깨우치는 대신 모두 함께 깨우치는 길을 택했으니까.

기자/에디터 : 오성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