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강지원 푸르메재단 이사장 "어린이재활병원 개원은 1만 시민이 만들어 낸 기적"

강지원 푸르메재단 이사장
"어린이재활병원 개원은 1만 시민이 만들어 낸 기적"

2016-04-05


공공의료인 어린이재활병원에 정부 적극 지원 나서야
'상처 사회' 벗어나 사랑이 충만한 사회로 나아가야

[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2004년 푸르메재단 창립발기인대회를 거쳐 이듬해 재단을 설립한 이후 꼬박 11년이 걸렸다. 이달 말 재단 숙원사업인 어린이재활병원 개원을 앞둔 강지원(67·변호사) 이사장은 “가수 션, 작가 이지선씨 등을 포함해 1만 여명의 시민과 500여개 기업의 뜻이 모여 만들어 낸 기적”이라고 말했다. 강 이사장은 재단 설립 이후 공동대표직을 맡아오다 지난달 21일 제2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강 이사장을 서울 신교동 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젠 트레이드 마크가 된 차이나칼라 셔츠 차림의 강 이사장은 “조찬 강연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며 “백수(白手)가 단명한다는데 여전히 정신이 없다”고 웃었다.

창립발기인으로 참가한 만큼 병원 개원을 앞둔 소회가 남달랐다. “재단 설립 이듬해인가. 백경학 상임이사가 부인의 교통사고 피해보상금을 기증하겠다고 해 깜짝 놀랐어요. 장애를 입으신 분이 오히려 보상금을 기부하겠다고 하니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받았죠.”

기자 출신인 백 이사는 독일 뮌헨대 정치학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을 지내고 귀국 전 영국에서 가족여행을 하다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귀국 후 여러 병원을 찾았지만 결국 부인은 장애인이 됐고, 국내의 열악한 재활치료 환경을 절감한 그는 지루한 소송 끝에 받아 낸 피해보상금을 재단에 내 놓았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전 일이지만 아직 어린이재활치료병원 하나 없는 게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강 이사장은 “이제야 병원급 어린이재활병원이 처음 문을 연다는 건 국제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라며 “우리 사회가 그만큼 장애인 자립에 무지했다는 회개와 반성을 해야 한다”고 개탄했다. 강 이사장은 “장애 아동은 ‘어린이’와 ‘장애’라는 약점을 가진 중첩적 약자”라며 “어렸을 때부터 재활을 도와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첫발을 내디뎠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다. 병원 건립비·운영비 총 440억원 가운데 아직 15여억원이 부족하고 개원 이후 연말까지 약 37억~38억원 정도의 적자가 예상된다. 이 가운데 7억여원은 서울시가 지원키로 했지만 30여억원 정도는 여전히 자체 모금을 통해 해결해야 할 처지다.

강 이사장은 “어린이재활병원은 공공의료인데 마땅히 정부가 나서야 하는 사업임에도 민간에 떠맡겨 놓은 것”이라며 “매년 수십 억원의 손실이 날 게 뻔한데 민간 차원의 모금으로 해결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중앙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이사장은 아동·청소년·여성 문제에 천착해 온 만큼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아동 학대나 사회를 ‘헬조선’에 빗대는 청년들에 관심이 많다.

강 이사장은 “아동 학대 주범들은 80% 이상이 친부모들”이라며 “부모 자신이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라 아이들에게 되물림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상처 사회’를 극복하지 못하면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압축 성장과 민주화를 이뤘지만 갈등은 점점 깊어갔다. 갈등과 대립의 상처 사회를 벗어나 사랑이 충만한 사회로 나아가는 게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를 넘어 이젠 ‘N포 세대’란 말까지 나오는 고달픈 상황이지만 청년들에겐 두 가지를 당부했다.

강 이사장은 “자신의 타고난 적성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며 “보수가 많든 적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 역시 법복을 벗은 뒤 시민사회단체 일을 하면서 비로소 행복을 찾았다고 했다.

“초임 검사 시절 제 사진을 찾아보니 우락부락한 얼굴이 금방이라도 도둑놈 때려잡게 생겼었는데 그나마 지금 많이 부드러워진 건 좋아서 하는 일을 찾은 덕분”이라며 웃었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사회 개혁에 눈감지 말 것을 주문했다. 강 이사장은 “사회의 불균형 성장 과정에서 생긴 갖가지 쏠림 현상 탓에 기회 불균등이 심하다”면서 “하지만 불평을 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사회 개혁에 청년들이 지혜와 힘을 보태 직접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소년보호위원장·매니페스토실천본부 대표·자살예방대책추진위원장 등 손으로 꼽기에도 부족한 많은 일을 해 온 터에 아직 더 하고 싶은 일이 있을까 싶어 물었다.

강 이사장은 ‘사회공동체의 행복 찾기’란 답을 내놓았다. “탐욕을 비우고 사랑을 채우는 게 행복인데 그간 걸어온 길 역시 상처 사회를 행복 사회로 바꾸는 법을 연구해 온 셈”이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애기애타(愛己愛他) 정신, 사회 공동체가 행복한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 바로 홍익(弘益)이죠. 어린이재활병원은 그 시작입니다.”

이성기 기자 beyond@

출처 :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G31&newsid=01207046612613168&DCD=A00703&OutLnkCh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