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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저커버그, 한국에서 기부했다면 19조원 세금 폭탄

저커버그, 한국에서 기부했다면 19조원 세금 폭탄

2016-04-06

[’40년 규제’ 묶인 공익법인] [下]

변칙 증여 막기 위해 만든 면세 상한선 5% 규제 때문
미국·독일 이사회 의결로 원금도 자유롭게 사용 가능

장학재단이 복지사업도 하려면 주무관청서 까다로운 허가 필요

세계 최대 자선재단(공익법인)인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자금 규모 435억달러·약 50조원)은 지난 2006년 ‘깜짝 선언’을 발표했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수십조원에 달하는 재산을 이 재단에 기부한다는 소식과 함께 “빌 게이츠 부부와 버핏이 모두 사망한 시점부터 50년 안에 모든 기금을 소진하고 (재단을) 해산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 재단의 주 활동 분야인 아프리카 질병 퇴치 등 사회 문제를 ‘가능한 한 많이, 최대한 빨리(as much as, as soon as possible)’ 해결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선진국의 공익법인들은 빈곤 퇴치와 교육, 사회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선진국처럼 이런 공익법인들의 활약을 기대하기 어렵다. 공익법인 활동을 사사건건 간섭하는 과도한 규제 때문이다.

이사회가 의결하면 원금을 자유롭게 공익 활동에 쓸 수 있는 미국·독일 등과 달리, 한국에선 기본 재산(원금)을 사용할 수 없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기부금을 현금으로 내면 세금을 물리지 않지만, 주식으로 내면 최대 50%의 증여세를 부과하는 세법(稅法)도 대표적인 규제로 꼽힌다.

◇저커버그가 한국서 기부했다면 세금만 19조원

이달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개원하는 백경학(53)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는 지난 2005년 어린이들의 재활의료 여건을 개선하겠다며 공익법인을 설립했다가 낭패를 겪었다. 그가 5년 넘게 운영해온 맥주 프랜차이즈 ‘옥토버훼스트’ 주식의 10%(당시 시가 2억5000만원)를 재단에 출연했는데, 특정 기업의 주식을 5% 넘게 기부하면 증여세를 물린다는 규정에 걸린 것이다. 백 이사가 세운 재단은 증여세를 내지 않기 위해 할 수 없이 증여받은 주식의 절반을 팔았다. 백 이사는 “주식을 처분한 다음에 분점이 서울 곳곳에 세워지면서 주식 가치도 높아졌다”면서 “재단이 계속 주식을 갖고 있었다면 좋은 일에 쓸 수 있었던 자금을 허공에 날린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 저커버그(32)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2월 자신과 아내가 가진 페이스북 총 주식의 99%(487억달러·약 56조3000억원)를 기부하기로 했다. 페이스북 총 발행주의 15% 정도다. 미국은 주식을 기부해도 20% 이하의 지분에 대해서는 과세를 하지 않는다. 일본은 상한선이 50%이고, 독일은 아예 제한이 없다. 저커버그가 한국에서 같은 규모의 주식을 기부했다면 기부를 받는 공익법인은 162억달러(약 18조8000억원)를 물어야 한다. 15% 지분 가운데 면세 상한선인 5%를 초과한 주식 10%의 반을 증여세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농지가 포함된 땅은 기부할 수 없어

농사를 짓고 있거나 앞으로 지을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규정한 농지법도 공익법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서울 돈암동에 살았던 고(故) 이재식(당시 69세)씨는 지난 2006년 시가 3억원에 달하는 1260㎡(420평) 규모의 땅을 한 공익법인에 기부하려다 실패했다. 농지가 포함된 땅을 기부받을 공익법인이 농민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이씨는 “평생 어렵게만 살았는데 죽기 전에 꼭 다른 사람을 위해 베푸는 기쁨을 느끼고 싶다”고 했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채 2014년 노환(老患)으로 숨졌다고 아내 양남수(64)씨는 전했다.

허가받은 공익사업 외에 다른 분야의 사업을 할 수 없게 하는 ‘칸막이식’ 규제도 문제로 지적된다. 교육부의 관리를 받는 장학재단이 복지 사업을 하려면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사실상 허가가 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이나 일본은 간단한 신고만으로 원하는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교육 목적으로 설립된 장학재단이 불우이웃을 돕는 사회복지 활동을 하려면 별도 법인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과잉 규제에 따른 행정적·금전적 낭비가 심하다”고 했다.

이민석 기자 백수진 기자 박상현 기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4/06/201604060026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