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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장애 어린이 재활치료, 정부·지자체가 적극 나서야”

[인人터뷰]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장애 어린이 재활치료, 정부·지자체가 적극 나서야”

2017-01-11

장애어린이 재활전문병원을 운영하는 푸르메재단의 백경학 상임이사. 생사의 갈림길에서 아내를 살린 신의 뜻이 분명히 있다고 했다. 그가 재단을 구상하고, 모금을 하고, 운영을 하고 있는 과정은 감동의 연속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로는 좀 부족하다 할 정도로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하지 않은 도움들이 있었다. 그는 그들을 의인이라고 불렀지만, 백 이사도 그런 사람이다. 늘 “참 좋은 인연입니다”는 말을 달고 다닌다. 곽경근 선임기자

얼굴을 보면 선한 이들이 있다.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느낌 말이다. 푸르메재단 백경학(54) 상임이사가 딱 그렇다. 눈매가 소설가 고 박완서 선생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듣기도 한다. 그는 1990년대 초중반 CBS 정치부 기자를 하고 있었다. 그때 “이렇게 착한 인상으로 어떻게 이 판에서…”라고 농담을 건넨 적이 있었다. 그 선한 얼굴이 지금은 착한 일까지 하고 있다. 푸르메재단은 백 이사가 여러 뜻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2006년 만들었다. 재단의 목표는 장애 어린이 모두가 최선의 재활치료를 받아 온전한 사회적 자립을 꿈꿀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일에 뚜렷한 소명(召命)의식을 갖고 있다. 해외에서 아내의 교통사고라는, 재단을 만들게 된 동기도 극적이고 지금까지 장애 어린이 전용 병원 두 곳을 세운 과정을 들어보면 더 극적이다. 앞으로 이들의 재활을 위해 노력하는 데 어떤 뜻하지 않은 도움이 올 것을 기대하면 하는 일이 행복하단다. 지난 4일 백 이사를 서울 종로구 효자동 푸르메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특별히 어린이를 위한 재활병원을 만든 이유는 뭔가.

 “정신·지체 장애아가 있으면 절반이 이혼한다. 엄마는 전국을 뛰어다니고 돈버는 아빠는 점점 지쳐간다. 결국 엄마가 얘를 맡게 되면 처음에는 집이 줄어들고 나중에는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다. 개인과 가정의 불행은 물론이고 이 사회가 떠안아야 할 비용이 엄청나게 커진다는 뜻이다. 아주 부자면 외국 가서 치료받고, 중산층이면 몇 개 없는 재활시설에라도 간다. 대부분은 그런 도움조차 받지 못한다. 장애는 조기에 발견, 치료하면 성인이 돼서도 혼자 생활하고 사회에서 한몫할 수 있을 정도로 개선시킬 수 있다. 사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야 할 영역이다.”

-우리 어린이 재활병원 실태가 열악하지 않나.

 “전국에 장애를 가진 어린이가 30만명 정도다. 입원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 10만명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설립한 서울 마포구 상암동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이 첫 입원시설이다. 어린이는 빨리 치료받으면 상당히 좋아진다. 그런데 입원하려면 2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나마도 (서울에만 있으니) 이산가족 생활을 해야 한다.”

 -운영도 어렵겠다(푸르메재단은 효자동과 상암동 두 곳에 병원을 지었다).

 “지난해 상암동 29억8000만원, 효자동 4억 적자였다. 서울시가 안전망병원으로 지정해 올해 10억원을 지원한다. 나머지는 일반 시민들의 모금액으로 충당해야 하는데 올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우리는 민간병원이 아니다. 1만명 시민과 500여개 기업·단체의 모금, 마포구의 부지 제공으로 만들어졌다. 이곳을 찾는 아이들은 대부분 서민의 자식들이다. 지방에서 오는 이들이 많은데 이중으로 고통이다. 우리가 버티다 적자로 문을 닫으면 이 아이들이 사실상 치료받을 곳이 없다. 이런 부분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어린이 재활은 보건복지부나 지자체가 나서야 하는데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선례가 없다’거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만 되풀이한다. 우리에게 지원하면 다른 곳들이 손 벌리고, 또는 조작까지 해 부정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한다.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를 가능성 때문에 아예 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은 옳지 못하다. 법적 근거를 만들어 장애아 치료를 지원하고, 회계 및 운영 감시를 엄격히 해 어기면 형사처벌 등 강력한 제재를 하면 될 것이다.”

 -개선 방안은.

 “우선 관련 부처나 지자체장들이 장애 어린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선진국은 다 그렇다. 그리고 중증 장애아에 대한 의료수가를 높여줘 관련 병원들의 적자를 줄여줘야 한다. 한 해 300억원이면 권역별로 어린이 전문 재활병원을 10개쯤 운영할 수 있다. 그런데 최순실한테 정부나 대기업이 지원한 액수를 보면 정말 화가 난다. 지자체가 뜻만 있다면 푸르메재단이 어린이 재활병원을 운영하는 데 여러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병원을 더 짓거나 운영에 도움을 주는 게 우리 재단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선출직이라면 자기 지역의 장애 어린이들이 서울로 가서 이중 고생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나.”

 -그렇다면 정부나 지자체가 직접 병원을 운영하는 게 더 좋은 것 아닌가.

 “열정과 성실이 충족된다면 아주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될 것이다. 어떤 공립병원에 근무하던 직원이 화가 나 그만두고 우리 재단으로 옮긴 적이 있다. 규정에 따라 의료진은 5시 퇴근하고 하루에 환자 5∼6명만 본다는 것이다. 밖에는 수백명의 아이들이 고통받으며 절실하게 치료를 기다리고 있는데…. 잘할 수 있고 의지도 있는 민간에 맡기고, 지자체는 엄격한 감시를 하는 게 더 효율성이 있다고 본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정부, 기업에 이어 제3섹터인 비정부기구(NGO)나 공공성을 가진 민간의 활동 비율이 30%나 된다. 우리도 그렇게 협조, 상호지원, 견제 등 유기적 관계로 활동할 때가 됐다.”

 -재단 활동하면서 기부나 자원봉사,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겠다.

 “정말 고맙다. 학생이나 교인, 기관에서 많이 참여한다. 기부는 정말 돈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다. 큰돈 기부도 있지만 90% 이상이 10만원 미만의 월급 몇 %, 이런 식이다. 요즘에는 생일, 부의금, 결혼기념일, 돌·회갑잔치 등 의미 있는 날에 의미 있게 기부한다는 사연이 꽤 많아졌다. 당장 적은 금액이라도 시작이 중요하다. 자원봉사는 너무 고맙다. 시간 내서 청소하러 오는 사람, 재활기구 소독이 무척 중요한데 이를 하기 위해 멀리서 오는 분…. 어떤 미용사는 간단한 파마 기구 등을 갖고 와서 아이들이 치료받을 동안 엄마들의 머리를 만져준다. 장애 아이들과 온종일 같이 있는 이 엄마들은 대부분 머리가 부스스하다. 시간도 정신적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이게 얼마나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재능기부인지 아는가. 가진 사람들이 큰돈을 내거나 정성껏 재능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회가 발전하고 있음을 느낀다.”

두 곳 병원에는 정신지체 청소년들이 일하는 카페가 있다. 월급도 받는다. 이들이 정상 생활에 참여해서 좋고, 가족들은 이들과 잠시 떨어져 있을 때 휴식하고 안도감을 느낀다고 한다. 푸르메재단 후원 문의는 02-720-7002.

■푸르메재단 왜·어떻게 만들었나

1998년 6월, 2년간 독일 뮌헨 대학에서 통일 전문기자가 되기 위한 공부를 마친 백경학(당시 35세·기자)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는 귀국 한 달을 앞두고 아내, 유치원 다니는 딸과 함께 마지막 영국 여행을 떠났다. 글래스고를 지나는 국도에서 차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기 위해 도로 옆에 차를 세웠다. 아내가 자동차 뒤쪽으로 갔을 때 벤츠 승용차가 사정없이 들이받았다. 잃었던 정신을 차려보니 사람들이 차 밑에 깔린 자신을 빼내고 있었다. 아내는 두 차 사이에 낀 채 피투성이였다. 간신히 몸을 움직여 아내에게 응급조치를 했는데 손에 카메라가 잡히더란다. 정신없이 본능적으로 현장을 몇 장 찍었다. 이게 8년이라는 긴 소송 끝에 아내 황혜경씨가 배상금을 받는 데 결정적 증거자료가 된다. 2006년 백 이사 부부가 배상금의 반(10억6000만원)을 출연함으로써 요건이 갖춰져 푸르메재단은 출범하게 된다. 인간적으로 견딜 수 없는 불행한 사고였지만 재단의 출발점이었다. 백 이사는 나중에 이 사고가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직접 우물을 파보라는 신의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아내는 100일 동안 혼수상태였다. 대수술도 세 번 했다. 첫 수술에서 다리를 잘라냈고, 두 번째 수술 전에는 영국 의사가 죽음을 준비하라고까지 말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신장 기능 중지, 체온 43도, 혈압 270까지 올라가고 노폐물 배출도 못했던 아내가 서서히 안정을 되찾으며 깨어난 것이다. 이후 1년 반 고통 속 독일에서의 재활훈련을 통해 부부는 국내와는 다른 환경, 의료진의 태도, 의사가 아닌 환자 중심의 병원 생활을 몸소 느끼고 장애인 병원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귀국한 뒤 비영리재단을 만들기로 했지만 재단 기본 재산으로 필요한 10억원이 문제였다. 그 돈을 벌기 위해 뮌헨에서 맥주양조학을 공부했던 후배와 일을 벌였다. 지인들에게 ‘앵벌이 모금’은 이렇게 했단다. “장애인 병원 설립을 위한 재단 출연금을 벌어야 한다. 망할 수도 있다.” 59명으로부터 5000만원씩 모았다. 이래서 2002년 강남에 연 게 국내 첫 하우스맥줏집 ‘옥토버페스트’다. 4년 뒤 자신의 지분 10%와 아내의 배상금 중 절반, 그리고 여러 의인들의 도움으로 재단이 출범했다.

이철재(50)씨. 고3 때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다. 너무 공부를 하고 싶어 졸업장도 없지만 미국 내 유명 대학에 입학을 간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모두 거절했으나 마지막으로 버클리 대학이 면접을 보고 뉴런 엔지니어링(neuron engineering·신경공학)을 공부하겠다는 이씨의 의지를 받아들였다.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학문이다. 박사과정까지 한 뒤 실리콘밸리를 거쳐 한국 테헤란로에 벤처기업을 세웠다. 그가 효자동 집 근처를 휠체어로 오가다 어린이 장애인 병원을 추진하는 푸르메재단 간판을 봤다. 그냥 들어와 백 이사를 만나 취지를 설명 들었다. 당시 상황은 종로구에서 부지를 제공했지만 85억원 건축비 중 20억원은 도저히 마련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두 달 뒤 이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방금 전 10억원을 입금했습니다.” 그가 벤처기업을 큰 게임회사에 넘기고 주식을 받았는데 그것으로 담보대출을 받았다는 것이다.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이 사연을 백 이사는 신문에 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가 절대 나서지 않겠다고 했다. 석 달 설득 끝에 동의하자 동료 기자에게 사연을 얘기했다. 신문 사회면에 큼지막하게 나간 기사를 게임회사를 경영하는 김정주(49) NXC 회장이 유심히 읽었다. 왜 유심히 읽었느냐면, 이씨 회사를 인수한 게 바로 김 회장의 넥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 회장 부부는 바로 백 이사를 찾아와 10억원 기부를 약속한다. 게임 ‘메이플 스토리’로 회사가 이익을 냈으니 어린이들을 위한 사회공헌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 얼마나 기막힌 일들인가. 그래서 효자동의 푸르메치과와 한방병원, 재활병원 건축비가 또 거짓말처럼 해결됐다. 이 인연이 이어져 김 회장은 상암동 재활병원을 짓는데 건축비의 반인 200억원을 기부한다. 하루 500명, 연간 15만명 장애 어린이 치료를 목표로 하는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밖에 도움을 준 유명 인사, 연예인,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 많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출처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675462&code=11131100&cp=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