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지 않아도 되는 여행을 꿈꿉니다

<박윤영·채준우의 다르다Go?> 마지막화



박윤영과 채준우는 장애·비장애 커플이다. 함께 여행하고, 둘이 떠드는 게 여전히 제일 좋다. 둘은 45일간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 여행에세이 <너와 함께한 모든 길이 좋았다(2018)>를 펴냈고, 최근에는 장애 인권을 다룬 책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2023)>을 출간했다.



준우


윤영을 만나기 전, 거칠 것 없이 많은 곳을 여행했다.
윤영을 만나기 전, 거칠 것 없이 많은 곳을 여행했다.


저는 여행을 참 좋아합니다. 윤영을 만나기 전에도 산티아고 순례를 하고 프랑스, 대만, 인도, 일본 등을 혼자 여행했습니다. 홀로 다니는 동안에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발길 닿는 대로 걸었고 힘들어도 최대한 많이 관광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유일하게 발목을 잡은 것이 있다면 ‘여비’ 정도랄까요? 숙소는 컨디션이 어떻건 저렴하면 그만이었고 기차는 가장 저렴한 좌석만 골라 탔습니다.


그랬던 저에게 윤영과 함께한 여행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숙소를 고르는 기준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느냐가 최우선 조건이었습니다. 여의찮을 때는 숙박비와 편의시설 중 무언가를 포기해야 했어요. 그마저도 어느 쪽이 덜 치명적일지 신중해야 했지요.


우리는 여행중에도 경사로와 엘리베이터를 찾아헤맸다.우리는 여행중에도 경사로와 엘리베이터를 찾아헤맸다.


혼자 여행할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제약도 생겼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지하철을 타지 못하거나, 계단밖에 없는 전망대는 오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가는 전망대를 그저 바라만 보고 지나쳤고 꼭 먹어야만 한다는 맛집은 입구에 턱이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했어요. 많은 정보가 있었지만 별 도움이 되진 못했습니다. 오히려 실패로 이어지는 요인이었어요. 정보를 그대로 따라갔다가 발걸음을 돌리며 아쉬워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에게 새로운 역할 같은 것도 부여되었습니다. 연인으로 윤영과 함께하는 것뿐인데 곧잘 보호자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한국에 돌아와 윤영과의 여행기를 꺼낼 때면 저의 위치가 달라지더군요. “데리고 다니느라 고생이 많았겠구먼” 합니다.


분명히 말하자면 저희는 함께 다닌 것이지, 누가 누구를 데리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제가 하게 되는 일이 있긴 합니다. 턱이 있는 곳에선 휠체어 앞바퀴를 들어 지나가게 돕거나, 좁은 길을 만나면 더 나아가도 괜찮은지 먼저 가서 확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물리적 환경에서 비롯된 것일 뿐, 장애의 유무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모든 길에 턱이나 계단이 없다면 제가 그런 역할을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면 남들이 다 가는 맛집이나 명소도 가고, 여태 혼자 하던 방식과 별 다를 바 없는 여행을 윤영과도 하게 되겠죠.


그러나 당장 이 세상 모든 길에서 턱과 계단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그 방법은 저를 보호자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습니다.


베네치아의 수상버스의 경사로 서비스. 제약에는 물리적 제약만 존재하지 않는다.베네치아의 수상버스의 경사로 서비스. 제약에는 물리적 제약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 가능성을 유럽 여행에서 분명히 느꼈습니다. 입구에서 눈만 마주쳐도 경사로가 놓였고, 엘리베이터로 안내를 받았죠. 베네치아의 본섬에는 섬마다 휠체어용 동선이 표시된 지도가 있어 헛걸음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비장애인으로서의 지원을 내려놓게 만들더군요. 비로소 저는 윤영과 함께 나란히 서서 여행을 즐겼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칼럼으로 담게 되었습니다. 에세이에 그치지 않고 여행지에서 일어난 일들에 새로운 해석을 붙여나갔습니다. 지난 5화였던 <장애인은 장애인 전용공간으로?>도 그렇습니다. 단순히 편의시설이 ‘부족하다, 더 필요하다’와 같은 맥락이 아니라 일반적 고정관념을 비트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장애인에게는 전용공간만이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이 고정관념이라면, 장애인 전용공간 자체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는 의미의 '분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피력했죠.


피렌체에서의 윤영과 준우피렌체에서의 준우와 윤영


윤영이 당사자로서 펼치는 논리는 저에게는 언제나 신선했고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칼럼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야말로 저의 위치가 분명해져서 좋았습니다. 윤영은 당사자로서의 이야기하고, 저는 장애 이야기가 더 이상 장애인만의 것이 아님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비장애인으로서의 지원자나 보호자가 아닌 또 한 명의 스피커로서 말이죠.


윤영


“아아~ 승객 여러분, 아니 독자 여러분! 타임머신에서 내릴 시간이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눈치채신 분도 계시겠지만, 칼럼의 주 무대였던 유럽은 우리의 오래 전 여행기를 재구성한 것이에요. 그곳에서 겪었던 사건과 감상들은 여전히 생생한 것이라 저야말로 시간이 이렇게나 흐른 줄 몰랐답니다. 덕분에 바로 어제 겪은 일처럼 기억을 소환하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아! 여행을 다녀온 뒤에 책을 내기도 했었어요. 그곳에서 일어난 흥미로운 사건(?)도 싣고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가이드도 담은 책이죠. 독자들의 감상평이 여럿 나왔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이것이었어요. “두 사람의 여행은 얼마나 다른지, 나와 같은 코스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런던에서 시작해 스페인으로 끝나는 가장 보편적인 코스로 여행했어요. 생경한 여행지도 아니고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흔해서 더 이상 흥미롭지 않을 소재죠. 그런데도 책을 낼 수 있었던 까닭은 순전히 제가 휠체어를 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보통은 리프트가 없어서 예매한 기차를 아예 놓치거나, 내리지 못할뻔한 일은 생기지 않으니까요.


그런가 하면 휠체어를 타고 있는데도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인 융프라우에 오르고, 휠체어를 타고 있는데도 2천 년이 넘은 건물인 콜로세움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은 의외성을 갖기도 했어요. 여행 코스만 같을 뿐 비장애인은 겪지 않아서 몰랐던 이야기로 넘쳐났어요. 우리의 경험이 죄다 신.선.한 것들인 덕분에 시장에 내놓을 만한 가치가 있었던 거예요.


글을 쓰면서 새롭게 발견한 사실도 있어요. 장애인의 여행은 일상의 연장선일 뿐이라는 점이에요. 그러니까 여행지에서 부딪쳤던 제약들은 사실 평상시에 끊임없이 겪고 있던 것들이었어요. 입구에 턱이 있어서 카페나 식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경사로와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을 찾아 헤매고, 비행기나 기차를 탈 때 휠체어 사용자라는 걸 미리 알리지 않으면 탈 수 없는 것과 같은 일들 말이죠. 이런 상황은 여행을 떠나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았어요.


피렌체 두오모 종탑. 대부분의 전망대는 계단 뿐이었다.피렌체 두오모 종탑. 대부분의 전망대는 계단 뿐이었다.


그런데도 유럽에 다녀왔다고 하면 꼭 듣는 말이 있어요. “유럽은 다니기에 낫죠?”라는 질문이에요. 그때마다 뭐라 설명하지 못할 감정이 들었는데 이제는 딱 잘라서 답할 수 있겠네요.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라고요. 적어도 물리적 환경만 보자면요. 유럽도 한국만큼 수많은 턱과 계단이 있는 걸 목격했으니까요.


하지만 물리적 제약을 빼고 말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져요. 장애인이 경험하는 ‘제약’ 안에는 물리적 제약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 사회의 구성원이 장애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이나 고정관념, 그리고 태도처럼 여러 요소가 맞물려 그런 제약을 만들거나 없애기도 해요.


그래서 유럽에서는 마음이 편했어요. 비록 물리적 환경은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사람들의 태도가 저를 당당하고 자유롭게 만들었죠. 아무도 뚫어져라 쳐다보지 않았고, 무례한 말을 걸어오지 않은 덕분이에요. 그뿐인가요? 턱이나 계단 때문에 들어갈 수 없을 땐 관계자가 나와 사과할지언정 대충 ‘보호자’에게 떠넘기려고 한다거나, ‘들어오지 않았으면’ 하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비치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준우를 보고 ‘장하다’라고 말하지 않으니 살 것 같더라고요! 준우는 나와 함께하는 동안 보호자가 됐다가(주로 한국에서), 또 어떤 때는 동반자가 됐거든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에 따라 준우의 위치가 결정되었던 셈이에요.


이처럼 새롭게 발견한 사실을 공유할 때는 신이 났고, 여행 중 겪은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고발(?)할 때는 통쾌한 기분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에요. 많은 사람에게 알려서 문제의식을 심고, 함께 해법을 찾아갈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품었고요.


사실 처음부터 이런 마음은 아니었어요. 유럽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다녀와서 글을 쓰게 될 줄은 추호도 몰랐죠. 아주 개인적인 여행이었으니까요. 원고를 쓸 결심이 서기까지 상당한 고민이 필요했어요. 책이 되고 칼럼이 되는 순간, 더 이상 우리 둘만의 이야기가 아니게 될 테니까요. 그렇다고 후회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지금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고 있죠. 21세기에도 장애인의 여행만큼은 여전히 대수롭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 건 서글프잖아요?


스위스 인터라켄에서의 윤영스위스 인터라켄에서의 윤영


그러나 이제는 기록할 필요가 없는 여행을 좀 더 하고 싶어요. 편의시설이나 관계자의 태도가 경악스러워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여행 말고요. 어떠한 의무나 사명감이 생기지 않는 여행을 하고 싶어요. 편의시설과 서비스가 완벽하다면 그곳의 정취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을 거예요. 이를테면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이나 스위스의 인터라켄, 프랑스의 니스와 같은 곳이 그랬어요. 장벽이 없는 환경과 환영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완전히 일치해서 안전함마저 느꼈죠. 이런 곳에서는 준우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가득 차요. 그 어떤 것도 기록할 필요가 없는, 아주 사적인 여행이 되는 거예요.


언젠가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는, 그런 여행길에서 푸르메 식구들과 다시 만나게 되길 기대해요. 그때는 있는 힘껏 안아드릴 거예요. 무려 1년이나 저희 두 사람에게 글의 공간을 마련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말이죠.


*글, 사진 = 박윤영 작가, 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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