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동대문 속으로!
살랑거리는 바람에 발 닿는 대로 걷고 싶은 가을날, 종로3가에 위치한 세운상가 앞 광장의 파란 깃발을 향해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백경학 상임대표와 함께한 '걸어서, 동대문 속으로'
지난해 백경학 상임대표가 가이드로 나서 북촌 구석구석을 걸었던 ‘걸어서 북촌 속으로’의 호응에 힘입어 이번에는 서민들의 오랜 이야기를 간직한 동대문으로 갔습니다. 백경학 상임대표와 시장과 시장 사이, 골목골목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떠난 ‘걸어서, 동대문 속으로’에 10여 명의 참가자들이 함께 했지요.
“장애어린이를 돕기 위해 매월 걸은 만큼 기부하는 ‘한 걸음의 사랑’ 회원이에요. 작년 행사에 참석했을 때 너무 좋아서 반차를 내고 왔어요.” “오랜 기부자인데 백 대표님을 한 번 뵙고 싶어서 천안에서 올라왔습니다.”
광장시장
모두의 기대를 가득 안고 향한 첫 코스는 광장시장입니다. 이보다 다양한 맛, 멋, 삶이 어린 곳이 또 있을까요? 서울을 대표하는 시장다운 엄청난 규모와 각양각색의 가게들, 수많은 외국인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에 참가자들의 눈이 커집니다. 하지만 이건 동대문이 가진 매력의 1/10도 되지 않습니다. 진짜는 이제부터입니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동대문의 낡은 골목들
시장을 나와 낡은 골목으로 접어듭니다. 벗겨지고 녹슬고 쓰러져가는 가게들. 사실 동대문은 어느 골목이든 80년대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모습입니다. 참가자 중 한 분이 “이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그때의 모습들이 그대로 남아있다”며 오랜 기억 속 묻어뒀던 추억들을 소소히 풀어놓습니다.
평화시장 앞 전태일 추모 동상
백경학 대표가 평화시장 입구의 한 동상 앞으로 참가자들을 안내합니다. 노동법을 지키라며 분신으로 항거했던 전태일의 추모 동상입니다. 그이가 평화시장 봉제공장의 재단사였기에 이곳에 자리를 마련해 줬다는군요. 숙연한 마음으로 그 얼굴을 마주한 후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
동대문의 대표 명소는 누라 뭐래도 흥인지문입니다. 다른 문(숭례문, 돈의문 등)과 달리 흥인지문만 네 글자인 이유는 지반이 낮아 기운이 약하기 때문에 이를 북돋기 위한 이유였다네요.
약 50년 전에 지어진 동대문 아파트
다시 걷습니다. 큰 빌딩이 들어선 옛 전차회사(경성궤도회사) 터도 보고요. 60년이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멋들어진 동신교회 건물도 지나칩니다. 부동산과 음식점으로 바뀐 화가 박수근의 집터와 67년에 지어져 50년을 단단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대문 아파트도 잠시 구경합니다. 당시에는 연예인들이 많이 살아서 ‘연예인 아파트’로 불렸다죠?
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백남준 집터
현재는 카페로 운영 중인 백남준 집터로 향합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그의 일생과 작품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습니다. 그곳에서 화기애애한 티타임을 가진 후 다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가수 김광석 생전의 집
동묘의 냉면가게로 바뀐 가수 배호의 집터 앞에서 그의 노래도 감상하고요. 오토바이 수십대가 바쁘게 지나다니는 창신동 비탈길을 오르고 올라 한 낡은 집 앞에서 발길을 멈춥니다. 평범한 서민의 집 같은 이곳이 바로 가수 김광석이 생전에 살았던 집입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명반을 남긴 가수의 집이라기엔 참 조촐합니다. 안내판 하나 없는 것이 아쉽지만, 누군가는 또 이곳에서 안락한 삶을 살아가야 하니까요.
이곳을 마지막으로 ‘걸어서, 동대문 속으로’ 행사가 마무리됐습니다. 참가자들은 “서울 곳곳의 숨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신기하고 즐거웠다”며 “좋은 가을날에 근사한 선물을 받았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서민들의 희노애락을 품어온 동대문의 골목들. 그곳에 머물고 오가던 사람들 속에는 장애를 가진 이들도 분명 있었을 겁니다. 누군가를 빼고는 그토록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을 테니까요. 여러분은 집 앞 골목, 다니는 거리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나요?
*글, 사진= 지화정 과장 (마케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