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발달장애 청년들에게 묻다

<발달장애인의 읽을 권리> 2화


 


푸르메소셜팜 직원 이수연 씨푸르메소셜팜 직원 이수연 씨


조윤영(나): <걱정이랑 친구할래?>를 읽고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이수연(푸르메소셜팜 직원): 저는 예준이와 공통점이 많다고 느꼈어요. 예준이가 겪었을 힘든 점들이 너무 다가왔고요. 어렸을 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예준이의 걱정과 불안이 뭔지 알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책이 되었어요.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도 느껴져요.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 어릴 때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나요.


조윤영: 수연씨에게 책이란 어떤 거예요?
이수연: 저는 책이 너무 좋아요. 시력도 아주 안 좋아서 글씨를 보는 것이 어렵지만 날마다 읽고 싶어요. 그리고 좋아하는 구절을 다이어리에 항상 적어 놓고요. 엄마가 그리고 선생님이 읽어 주셨던 책의 구절들이 계속 생각이 나요. 요즘엔 제가 가끔 글을 써요.


조윤영: 일하느라 힘들 텐데 책은 주로 언제 읽어요?
이수연: 그래도 날마다 책을 봐요. 그런데 집에 책이 두 권밖에 없고 도서관 이용은 생각도 못해 봤으니 아쉽죠. 핸드폰으로 책을 찾아 보기도 해요. 쉽고 그림도 있고 용기를 주는 책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수연 씨가 쓴 글수연 씨가 쓴 글(왼쪽)과 필사한 시


<걱정이랑 친구할래?>를 읽으면 엄마가 생각난다는 말에 마음이 요동쳤습니다. 엄마 없이 살아 온 수연씨의 시간들에 대한 연민에 가슴이 쓰렸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세심한 누군가는 감지해내던, 책에 담긴 엄마의 마음을 읽어내는 수연씨의 감수성이 놀랍기도 했습니다. 장애자녀를 둔 엄마지만 아직도 뿌리 깊은 편견을 다 털어내지 못했나 봅니다. 책과 이렇게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 발달장애인을 만났다는 것이 정말 뜻밖이란 생각이 드는 걸 보면요. 반성과 배움이 교차되어 쌓이는 나날들입니다.


다음은 발달장애청년 독서모임 '책날다' 회원들과 나눈 이야기입니다.


발달장애청년 독서모임 '책날다' 회원들발달장애청년 독서모임 '책날다' 회원들


조윤영(나): 나에게 독서란?
이용혁: 삶과의 연결고리입니다.
오성민: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요.
손예진: 자신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정범진: 편안한 휴식이자 공부입니다.


조윤영: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최현호: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고 하나의 사실을 다른 방식으로도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정범진: 지식도 쌓고 서로 소통하며 공감할 수 있으니까요.
이용혁: 사람들의 삶에 공감하고 나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어서요.


조윤영: 발달장애인을 위해 어떤 책이 나와야 할까요?
손예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해요.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훌륭한 책이요. 너무 길지 않아도 내용이 좋은 책이요.


조윤영: 발달장애인을 위한 독서 교육은 언제부터 하는 것이 좋을까요?
모두 함께: 유아기요, 유치원 때요, 한 다섯 살 때부터요!


지면상 모두 싣지는 못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들은 작금의 상황에서 부족한 것, 해결되어야 할 것,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적절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거침이 없었습니다. '책날다'는 올해 4년차로 한 달에 책 한 권을 지정해 읽고 마지막 주 토요일에 만나 토론을 합니다. 그 후 협의를 통해 필요한 관련 활동을 해보며 독서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삶에서 책이 주는 의미를 실감하고 그것을 타인과 누리며 다양한 경험을 함께 쌓는 모습들이 지나침도 부족함도 없이 딱 좋아 보였습니다.


가장 최근에 나온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성인 중 절반 이상은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습니다. 전체 평균은 1년에 4권 정도라고 합니다. 이런 시대에 그 누구보다 독서에 진심인 청년들이 그곳에 있어 줘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이들의 앞길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어야 한다는 것, 다른 발달장애 청소년들도 이런 경험을 누려야 한다는 것 등등 수많은 생각과 다짐이 뒤를 잇습니다.


시집을 좋아하는 서진이시집을 좋아하는 서진이


최근에 만난 서진이와 서진이 어머님도 생각이 납니다. 어릴 때부터 종이의 질감에 애착을 보이던 서진이는 내내 책과 가까이 지내다 <문학과 지성사> 시집 시리즈를 너무 사랑해서 어디든 들고 다니는 어른으로 자랐습니다. 어느 가을날 엄마와 산책을 하다 낙엽이 쌓이는 모습을 보고 “나뭇잎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나 바스락 바스락 소리를 내며 이야기를 나눈다”라고 귀띔해 주었다고 합니다.


지난 두달 여 동안 책을 사랑하는 많은 발달장애 청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기쁨으로 충만한 기억이 되어 제 삶이 한껏 풍요로워졌습니다. 책 읽기를 힘들어 하거나 거부하는 친구들, 특히 발달장애인에게 책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할 사람들을 만나기 앞서 에너지를 충분히 비축해 둔 기분이 듭니다. 귀한 만남을 허락해 주신 많은 분들께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글= 조윤영 (도서출판 날자 대표)




조윤영은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이자 발달장애인을 위한 책을 만드는 '도서출판날자'의 대표입니다. 걱정이 많은 아들 예준이의 일상 에피소드로 「걱정이랑 친구할래?」를 펴낸 작가이기도 합니다. 발달장애인도 책을 읽을 권리가 있고, 그를 통해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희망으로 읽고, 듣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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