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에게 독서가 필요할까?

<발달장애인의 읽을 권리> 1화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방학을 맞은 서점은 공기가 다릅니다. 학생들이 볼 책이 있는 곳에서 시작된 활기가 서점의 분위기를 바꿔 놓았나 봅니다. 영역별로 수많은 책들이 정리되어 있는 책장들 사이사이에는 읽을 책을 찾아 나온 아이와 부모들로 북적입니다.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나온 서점의 고무된 분위기에 이끌려 ‘오늘은 좋은 책이 눈에 띄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부지런히 돌아다닙니다. 아이는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이지만 인지 능력에 맞는 책이 필요하기에 초등 중학년 코너부터 찬찬히 살핍니다. 지칠 만큼 시간이 흘러도 적정한 난이도를 가지면서 청소년기의 생각과 감성을 짚어주는, 그래서 제 아이와 같은 장애 청소년들이 조금이라도 흥미를 갖고 읽을 책을 찾는 것은 역시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저는 어김없이 찾아온 실망감에 힘이 빠지고 아이는 핸드폰 삼매경에 빠집니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우리 모자의 서점 나들이 풍경입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자기 나이대에 맞는 수많은 책들의 향연 속에서 마음껏 책을 펼쳐 보는 아이들로 가득한 이곳에 오늘도 제 아이를 위한 공간은 없습니다. 익숙한 소외감과 부러움이 물밀 듯 밀려옵니다. 더 씁쓸하게도 이런 소외감과 부러움은 꼭 좋은 것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비장애 아이들이 죽을 만큼 싫어하며 이 학원 저 학원 다니는 것을 볼 때도, 잠이 부족해 초췌한 모습으로 학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을 볼 때도, 심지어는 군대 갈 날짜를 앞두고 세상이 끝난 듯 괴로운 표정으로 지내는 것을 볼 때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상황에서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그런 감정들을 느낍니다. 오늘은 서점에서 그렇습니다.


'발달장애인'과 '독서'의 거리


지적장애를 가진 고등학생 아들이 읽을 책을 찾기가 너무 어려워서 1인 출판사를 내고 직접 책을 출간한 지 벌써 6개월이 되어갑니다. 책이 나온 후, 제 아이가 겪는 어려움으로만 보이던 많은 현상들이 보다 구체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로 다가오면서 발달장애인들이 독서문화에서 얼마나 소외되어 있는지 더욱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란 단어와 ‘독서’란 단어 사이에 몇 백만 광년의 거리가 있는 듯 아득합니다.


“요즘은 비장애인들도 안 읽는 책을 우리 애들이 무슨 수로…”
“매일 매일이 전쟁인 일상인데 책 읽기는 사치 아닌가요?”


굳이 대중들의 인식까지 살펴보지 않더라도,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많은 부모들이 독서에 대해 이런 부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의 독서까지 신경 쓰며 지낼 여유가 없다는 것은 경험상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의 범주에 포함되는 양상이 매우 다양하기에 독서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독서가 주는 교육의 효과가 명백한데, 독서가 가능한 다수의 발달장애인들이 그 혜택을 누려볼 작은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채로 일생을 보내게 된다면 이 또한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요? (책 출간 후 여러 사람을 만나며, 글을 읽고 쓰는 것에 큰 관심과 재능을 보이는 발달장애인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발달장애 청년들이 꾸려 나가는 4년차 독서 동아리 회원들도 만나 보았는데 이 모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이야기 할 계획입니다.)


책을 통해 본 발달장애인 독서의 효과


이쯤에서 독서의 효과, 이것은 이미 지겹도록 들어왔으니 발달장애인에게 나타날 독서 효과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일본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임상심리사인 미야구치 코지가 발간한 베스트셀러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의 내용에 따르면, 발달지연으로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보는 힘’, ‘듣는 힘’, ‘상상하는 힘’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기본적인 능력인 ‘보는 힘’과 ‘듣는 힘’부터, 앞날을 예측하고 사고하고 계획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힘의 근간인 ‘상상하는 힘’의 부족은 살아가는데 치명적인 어려움을 가져옵니다.


접근성과 비용 등의 효율성 측면에서 이런 능력들을 키워 줄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요? 우리 사회가 비장애인에게 독서를 장려하려 만든 수많은 구호들을 떠올리면 쉽게 짐작이 갑니다. 입시 공부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아이들에게 쓰는 에너지의 백만 분의 일이라도 시간이 남아도는 우리 아이들에게 써준다면 그 효과는 상상 이상일 것이라 자부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 「농담, 응시, 어수선한 연결」에서 장애인 극단 ‘애인’의 김지수 대표는 장애인으로서의 삶과 장애 연극에 대한 신념을 자신의 언어로 담담히 얘기합니다. 읽을수록 내면의 견고함에서 오는 강한 힘이 느껴집니다. 오랜 세월 쌓인 읽기와 쓰기의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아이를 비롯한 발달장애인들도 자신의 생각을 적절히 표현하고 그것을 책으로 남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발달장애인 독서교육을 위한 여정의 시작


아이의 일상을 책으로 쓰고, 장애아의 엄마로 17년 넘게 살고 있을 뿐 저는 장애 당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아직도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와 소통의 문제로 갈등이 생깁니다. 아이가 인식하는 자신의 삶과 생각과 마음을, 제가 과연 얼마나 헤아리고 있을지 늘 의문입니다.


당사자의 목소리만큼 강력한 것은 없기에 발달장애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모든 현장에 그 목소리가 나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단단한 사고와 표현 능력을 키우는 것이 특수 교육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어릴 때부터 책을 통한 읽기와 쓰기를 제대로 가르친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이것이 발달장애인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 사회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책장 앞에 책이 펴진 이미지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발달장애'와 '독서'를 키워드로 검색해서 나오는 정보 찾기가 일상이 되다 보니 가슴 아프게 깨닫게 되는 사실들이 있습니다. 세상엔 사람들로 하여금 책을 읽게 하려고 만든, 정말 많기도 많은 기관과 단체와 정책들이 존재하는구나. 그리고 그 많은 것들 중 우리 아이를 위한 것은 없구나.


어딘가에 있을 그 무엇을 위해 저는 내일도 탐색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끝내 어디에도 없다면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 허전함을 달래 봅니다. 그리고 거기까지 가는 긴 여정의 기록을 이 곳을 통해 남기려 합니다. 저를 반기는 사람만큼 불편해 할 사람도 많겠지만 무엇이든 들어보고 함께 해결책을 찾을 것입니다. 이 칼럼을 읽는 많은 분들의 지지와 응원을 기대합니다.


*글= 조윤영 (도서출판 날자 대표)




조윤영은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이자 발달장애인을 위한 책을 만드는 '도서출판날자'의 대표입니다. 걱정이 많은 아들 예준이의 일상 에피소드로 「걱정이랑 친구할래?」를 펴낸 작가이기도 합니다. 발달장애인도 책을 읽을 권리가 있고, 그를 통해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희망으로 읽고, 듣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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