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외출을 꿈꾸며

나는 장시간의 외출을 모두 여행이라 부른다. 그런데 여행은 듣는 것만큼 아주 낭만스럽지만은 않다. 오히려 어렵고 고된 것이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대체로 여행지에서의 추억만이 따뜻하게 남는 법이지만, 본래 여행은 떠난 순간보다 가기 전의 과정이 훨씬 긴 법이다. 떠나기 전 여행 계획을 세우려면 오차 없는 시간을 확약해야 하고, 여행지에서 부족하지 않도록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며,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여 최악의 조건을 미연에 방지하고 나서 잠시 떠났다 돌아오는 것이 여행이다.


누군가는 그러한 절차를 줄이기 위해 나름 여행사를 통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염두에 둬야 할 장애물이 하나도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행은 원래 그렇게 까다로운 것이다. 더구나 앞에 수식어가 붙으면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더 많이 생긴다. ‘장애인과 동반하는’ 여행은 더욱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가 계획하는 여행 또한 그렇다. 장애인이 쉽사리 여행을 실천하기 힘든 이유는 여행 중 부딪히는 몇 가지 과정보다도 사전 계획에 있어 고려해야 할 정보와 열악함을 마주하는 일이 힘들기 때문이다.


배낭을 멘 남자


나는 초등학교 때 소풍가는 것이 싫었다. 나 하나로 인해 반 학생들이 등산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거나 귀가 시간이 지체되거나 하는 등 나를 배려해주는 선생님의 계획이 때로는 오롯이  나를 제외한 학급 구성원 누구도 행복해하지 않을 타협안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에게 소풍으로써의 완전한 자유를 허락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와 같은 미안함은 그렇게 거창하고 심오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자연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지는 법이다. 물론 선의의 배려를 단지 폐를 끼친다고 확언하여 말할 수는 없지만, 장애당사자의 심정으로서 나를 중심으로 한 모든 야외활동 계획이 변경되는 과정이 주변에 폐를 끼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풍을 앞둔 어느 순간부터 “이번 소풍은 가지 않겠어요.” 또는 “저는 괜찮으니, 등산하고 오세요. 저는 버스에 남아 있을게요.”라고 말하고는 소풍 목적지에 도착해 돌아갈 때까지 몇 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것은 어린 날의 나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어른스러운 성숙함이자 돌이켜보면 어린 아이의 상처였다. 그래서 이 모든 야외활동이 연속되는 과정과 소풍을 비롯한 여행이라는 것은 모름지기 마음을 어렵게 한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여행을 가기 시작한 것은 서울로 상경한 대학생 때부터였다. 고백하자면, 나는 지난 20여 년간 고향 제주도에 살며 그 유명한 올레길도, 한라산 성판악도 가보지 못했다. 왜 나는 서울에 상경한 후부터 여행할 수 있었을까. 단지 내가 성인이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때로는 미세먼지에 뒤덮이고, 퇴근길 지하철역에는 사람의 얼굴을 마주볼 수 없을 만큼 등허리만이 가득 찬 인파 속에서, 누군가는 징글징글하다고 부르는 이 서울에서부터 그나마 나의 개인적인 이동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불빛으로 반짝이는 도시 번화가


나만의 소소한 외출을 허락한 은인을 나는 지하철이라고 부른다. 6호선 끝자락에 위치한 돌곶이역에 2년간 살았었고, 또 나머지 2년은 2호선과 7호선이 교차하는 건대입구역에 살았었다. 집으로부터 역까지의 거리는 아주 멀지 않았다. 홍대에 약속이 있으면 지하철을 쭉 타고 가거나, 기껏해야 한번 환승하면 그만이었다. 사실 역에서의 환승은 ‘기껏 해야 ~ 그만’이라고 표현할 만큼 만만한 것은 아니었으나, 제주도에서의 몇 없는 대중 교통수단에 비하면 지극히 양호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은인이라고 칭하는 지하철은 사실 오늘날 모든 장애인에게 은인은 아니다. 아직도 종로3가의 환승 구간에 두려움을 느껴야 하고, 휠체어 리프트에 의존해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묵묵히 고개 숙여 계단을 내려가며, 스크린도어가 완전히 설치되지 못하여 때로는 선로 사이로 추락하는 사건 사고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서울살이의 가장 냉혹하고 두려운 공간이 바로 지하철이기도 하다. 그토록 무서운 교통수단이라는 점과 장애인에게 장시간의 외출인 여행을 허락한 은인이라는 점은 모순되면서도 맞는 말이다.


지하철 내부


많은 이들이 버스는 어떠냐고 묻는다. 한국에서의 버스는 아직 장애인이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저상버스가 많이 없을뿐더러 버스 내 휠체어를 고정할 공간이 완전히 보장되어 있지 않다. 그마저도 관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하듯 고정시키는 것이 전부이다. 노선과 도착 예정 시각도 지하철만큼 정확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 장애인 택시는 어떠냐고 묻지만 나는 지체 3급 장애인이라 탈 수 없어 알지 못한다. 대개 콜택시 차량이 부족해 호출한다고 바로 오지도 않기 때문에 개인적인 장시간의 외출, 즉 여행을 완전히 보장하는 수단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의식해 장애인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지금 살고 있는 지방에 있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교통과 병원 시설 등의 인프라가 잘 구축된 서울로 상경하는 게 좋은지를 묻는 분이 계셨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문제는 단지 사회적 환경에서 고려해야 할 것만이 아니라 개인적 여건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내가 조언해줄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서울에 거주하는 장애아동들이 그나마 대학병원에 통원하고, 각종 시설을 이용하는 것 등에 있어서는 조금 더 수월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서울에 사는 장애인들 역시 마찬가지로, 지하철을 타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과 출퇴근 시간의 통학 등의 어려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계단 앞에 선 휠체어


우리는 이 불완전한 현실을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지방과 수도간의 격차, 더 나아가 세계 기준으로서의 장애인의 접근권 및 시설 이용에서의 평등한 권리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장애당사자 및 관련된 주변인들의 요구와 지자체의 협조가 균형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이와 관련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두 가지 소식이 있다. 첫 번째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스토리펀딩 온라인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지민이의 그곳에 쉽게 가고 싶다’ 시리즈이다. 소아암으로 현재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고 활동적인 초등학생 지민이와 그 어머니인 홍윤희 님의 이야기다. 장애인들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가까이 지하철 타기부터 시작해서 제주 올레길 투어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장애인들의 접근권이 비장애인에 비해 얼마나 제한적인지 그 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다음 스토리펀딩 ‘지민이의 그곳에 쉽게 가고 싶다’ 연재 페이지 화면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316
다음 스토리펀딩 ‘지민이의 그곳에 쉽게 가고 싶다’ 연재 페이지 화면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316

또 하나는 하버드대 정치학부에 재학 중인 장애인 김건호 님의 ‘장애인을 위한 여행책자’ 만들기 활동이다. 위의 두 사례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겪은 어려움을 유쾌하며 진솔하게 풀어낸 장애당사자의 요구라고 볼 수 있다. 비록 누군가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직접적인 대상을 두고 겨냥하며 시작된 요구는 아니지만, 이들의 적극적인 노력에 따뜻한 협조와 응답이 정책 등을 통해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모든 장애인이 같은 방식으로 적극적인 요구를 할 수 없는 것을 잘 안다. 서로 다른 장애의 정도뿐만 아니라 그 외적으로도 각기 다른 사정을 지니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할 것은, 적어도 장애당사자 우리들에게 있어 당장 외출이라는 것이 너무도 무섭고, 여행이라는 것은 엄두도 못 낼 만큼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계획이라는 것을 지금처럼 알려야 한다는 점이다.


어느덧 다 끝난 2015년 연말에 이제 또 다가올 여행이라는 것을 앞두고 고민을 하며 일기를 쓴다. 프랑스에서 지내고 있는 나는 주변의 유럽국가로 여행가는 데 있어 한국에서만큼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우선 어디나 장애인이 머물 수 있는 숙소가 충분히 있고 이동수단도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욱 한국 생각이 난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비교적 홀가분한 마음이 드는 한편, 남모를 죄책감도 들고 내 친구들이 방안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을 모습도 상상이 된다. 열 살짜리 나를 업고 한라산을 구경시켜주겠다며 아기를 업을 때 쓰는 캐리어를 주문하려던 아버지도 떠오른다.


제주 올레길


생각은 만족을 느끼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당장 풍족한 오늘을 맞이할수록 빈약하고 결핍되어 있는 과거가 더욱 떠오르는 법이다. 다가올 편안한 여행지에 대한 기대보다 내가 더 기대하는 것은 한국에서 모든 장애인이 두려워하지 않는 여행이 실현되는 것이다.


초등학생 장애인 친구들이 더는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소풍을 갈 수 있을 만큼, 때로는 부모님과 제주도 여행을 통해 올레길도 다니며, 버스를 타고 강원도 숲길도 구경하러 갈 수 있는, 장시간의 외출 즉 여행이 보장되는 여건을 우리 장애인들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하며 새해 소원을 빈다. 내년에는 오랜 외출이 올해보다 더욱 낭만스러워지기를 바라며.


*글= 변재원 작가










변재원 변재원 작가는 1993년 10월 30일생으로 생후 10개월에 불의의 의료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있으며, 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주제의 칼럼들을 기고하고 있다. 마주하기 힘든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고, 사회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책임있는 삶을 사는 것이 그의 꿈.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존레논과 아웅산 수지 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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