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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잘 걸읍시다.

“지금처럼 그렇게 걸으면요, 마흔도 안 돼서 다리 다 망가질 걸?”

내가 오늘 성수동 수제화 골목에서 들은 얘기이다.

나는 지체장애로 인해 왼발을 끌고 다니며 걷는다. 열세 살부터 왼발을 끌고 걸었으니, 10년 동안 이렇게 걸은 셈이다. 나는 원래 목발을 짚지 않았었다. 어렸을 때에는 왼쪽 다리를 손으로 짚고, 발등을 꺾어 절뚝이며 걸었는데, 상상하자면 김대중 대통령이 걷던 어설픈 모습에 비유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성장하면서, 더 이상 다리가 하중을 견디지 못하게 될 것 같자 땅을 짚는 무게를 분산하기 위해 목발을 짚게 되었다.

처음 목발을 샀던 2005년 당시에는 왼쪽 발을 이용해 엉거주춤하게나마 걸을 수 있었다. 뇌병변 장애인들이 걷듯 말이다. 그러나 그 걸음걸이는 너무 느리고 볼품없다고 느꼈기에 나는 그날부로 왼쪽 다리를 포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왼쪽 다리는 자르지 못해 남겨놓은 양 달랑거리며 끌고 다녔다. 마치 걸을 때 고환이 달랑이듯이 말이다.

내 목발에는 손잡이도 없다. 목발의 손잡이 고리는 내 상의들을 다 찢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그 손잡이를 짚자고 팔을 구부려 걷기에는 금방 지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쪽 발을 끌고 다니며 손잡이 없는 목발을 짚는 나는, 정말 내가 편한 대로 막 걸은 것이다.

대학 수업도 거의 끝나고 다음 달 출국을 앞두고 나서야, 출국 전 체크로서 10년 만에 몸을 점검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몸에 대한 점검보다도 신발을 끌고 다니며 걷다 보니 보름마다 새 신발을 사야 할 처지에 놓여있는데, 해외에서도 그렇게 신발을 대량으로 주문해 사는 것이 가능할지 싶어, 신발값 좀 아껴보려고 조언을 듣고자 성수동에 간 것이다.

성수동 수제화 타운 중 장애인 신발을 맞춰주는 가게에 들어갔다. 늘 그렇게 걷듯 말이다. 50대의 사장님은 한번 훑어보더니 아까와 같이 말했다. “지금처럼 그렇게 걸으면요, 마흔도 안 돼서 다리 다 망가질 걸?”

그러고는 지적했다. “신발이 너무 커. 오른쪽 발 사이즈에 맞춘 건 이해하지만, 왼쪽 발에는 전혀 안 맞아. 그리고 지금 걷는 모양이 굉장히 구부러져있어. 사람은 다리를 쭉 펴고 곧게 걸어야 되는데, 이렇게 구부러져 걸으면, 오른쪽 다리 연골이 남아나지 않을 거야. 지금은 스무 살이라 모르겠지만, 마흔 살만 되도 다리 아픈 게 느껴질 걸.

먼저 목발을 바꿔요. 더 높은 것으로 해서, 몸을 굽히지 않고 쭉 곧게 펴서 걸을 수 있는 목발로 바꾸고 나를 찾아와요. 그럼 내가 그 자세에 맞게 신발을 맞춰줄 테니까. 그리고요. 지금 끌고 다니는 왼발. 그 발로 걸어야 돼요. 그것이 불편하고 느려도 그렇게 걸어야만 자세가 곧아져요. 지금처럼 걸었을 때 문제점은 오른 다리뿐만 아니라, 척추도 골반도 다 뒤틀리게 돼요.

나도 성수동에서 구두 만들면서 당신같이 걷는 사람들 많이 봐왔지. 한쪽 다리 질질 끌면서 신발도 제일 싸구려 신고, 보름에 한 번씩 신발 새 거 신고. 그렇게 평생 못 살아요. 그건 임시방편일 뿐이지.

제일 슬픈 게 뭔지 알아요? 나이 먹은 고객들, 40대 50대 되서 아픈 다리 말고, 안 아픈 다리가 망가져서 오는 사람들. 수술하려고 해도 못해요. 왠지 알아요? 다리 수술하면 1년간은 병상에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되거든. 그렇게 병상에 누워있으면, 누가 돈 벌어요?

그러니까 자기 다리 다 망가질 거 알면서도 뻔히 그렇게 사는 거지. 그러다가 더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하는지 알아요? 팔 힘으로만 걸어요. 다리 둘 다 끌면서. 그러니까 지금부터 바른 자세로 걷는 것이 중요해요. 이미 오른쪽 다리가 조금 굽어진 것 같아 보이기도 하니까. 목발을 키 높이에 맞추고, 다음 주에 다시 찾아와요. 그러면 8월 말까지 신발을 만들어줄 테니까.”

안 그래도 요새 오른쪽 무릎이 찌릿찌릿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기분은 정말 아찔하다. 아, 이대로 언젠가 걷지 못해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목발 문제 때문에 내일은 척추수술을 했던 대학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갈 예정이다. 앞으로 더 오래 건강하게 걷기 위해서는 어떻게 걸어야 하고, 어떤 목발을 써야하는지. 때로는 장애인 당사자가 주변 사람들보다 더 정보에 무감각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오랫동안 이 다리를 방치해두었던 나와 같이.

20살이 되어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어딘가를 다닐 수 있다는 걸음의 행복을 알게 되었다. 즐겁게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교우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며, 또 여자친구를 만나게 해준 것도 다 이 나의 의료보조기구들이다.

이러한 점에서 내 목발은 단순히 나를 보조하는 어떤 부분적 수단이 아니라 곧 나 자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신경을 썼어야만 했다. 목발뿐만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보청기, 휠체어, 워커, 지팡이, 특수안경, 투석기구, 허리 보호기구, 욕창방석 등과 같은 도구들이 곧 그들을 지탱하는 몸인 셈이다. 그러니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조금은 답답한 얘기지만 사실인 것은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이상 남들보다 훨씬 더 몸을 생각해야 한다. 많은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모든 사람이 건강을 챙겨야 하지만, 우리는 더욱 그렇다. 특히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앞두게 되면 그 중요성이 더욱 느껴진다. 내가 조금만 아프더라도 상대방이 안절부절못하며 내내 걱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걱정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건강을 챙김으로써 사랑하는 사람의 걱정을 덜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조언한다. 지금 본인이 사용하고 있는 장비 혹은 기구들이 지금 여건에서 최선의 것인지 다시 한번 점검해보기를 바란다. 지난 십수 년간 나도 그래오지 못했지만, 당장 내일부터 다시 내 몸에 대한 관리를 시작할 예정이다. 그 첫째로 먼저 곧은 자세로 걸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찾을 것이다. 지금까지 왼쪽 다리를 끌고 다닌 것이 전부였지만, 앞으로의 시간은 아픈 왼쪽 다리도 하나의 다리로써, 이 땅을 지탱하여 서는 존재로서, 나의 일부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여러분, 모두 곧은 자세로 잘 걸읍시다.

*글= 변재원 작가

변재원 작가는 1993년 10월 30일생으로 생후 10개월에 불의의 의료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있으며, 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주제의 칼럼들을 기고하고 있다. 마주하기 힘든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고, 사회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책임있는 삶을 사는 것이 그의 꿈.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존레논과 아웅산 수지 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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