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없는 탐방] 인도에서 휠체어는 ‘뉴 릭샤’ ①


도에서 휠체어는 ‘뉴 릭샤’ ①










 


▲ 인도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휠체어. 휠체어가 낯선 인도인들에게 ‘뉴 릭샤’라고 소개했다.

인도하면 더운 나라란 인식에 춥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델리의 기온은 한국의 초겨울 날씨처럼 춥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인도 날씨는 더울 거란 생각만 하고 얇은 옷만 가져왔다. 여행 리더가 내복과 두툼한 옷을 가져오라고 했지만 설마 하고 안 가져온 것이다.


 


두툼한 옷을 가져오지 않은 이유는 또 있다. 배낭여행 특성상 자신의 배낭에 자기만의 물건을 넣고 각자 매고 다니지만 난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최대한 짐을 적게 가져오고 그나마도 필요한 물건은 현지에서 사서 쓰면서 최소화하려 했다.


 


내 짐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다. 휠체어에 배낭까지 일행의 두 배가 넘는 짐을 모두 일행이 나눠서 들고 나를 태운 휠체어까지 밀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보도블록이 매끈하지도 않고 차도가 훌륭하지도 않으며 건물마다 계단 높이도 장난 아니게 높다. 게다가 대개의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휠체어 이동과 접근이 어려운 환경이다.


 


아무리 친분있는 사이라고 해도 배낭여행에서 타인의 가방까지 들어준다는 것은 미안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염려 때문에 일부러 짐을 가볍게 가져온 탓도 있다. 할 수 없이 가져온 옷 중에 제일 두툼한 겉옷을 더 입고 거리에 나왔다.


전쟁터 같은 여행자 거리는 현지인과 여행객이 뒤섞여 뒤죽박죽 걸어다닌다. 그래서인지 아침부터 문을 연 식당들이 제법 눈에 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티베트 식당에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봤지만 영어와 힌두어, 티베트어까지 도무지 뭐라고 쓴 건 지 알 수 없다. 인도에 여러 번 여행 온 동료는 이 식당의 메뉴와 맛을 열심히 설명했지만 뭐가 뭔지 몰라 전적으로 동료의 식성에 내 입맛을 맞추기로 했다.


 


티벳식 만두 ‘모모’와 인도 음료 ‘짜이’를 시키니까 일행도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음식이 식탁에 차려졌다. 모모는 티베트 음식이지만 우리나라 만두와 닮아있다. 맛도 모양도 닮은꼴인 모모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식당 밖에서 허름한 옷차림의 걸인이 우릴 보고 손을 내민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음식을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의 몸 상태가 경악할 정도로 삐쩍 말라 아사 직전이었다. 너무 말라 해골에 가죽만 입혀 놓은 것 같았다. 피골이 상접하다는 말은 그 사람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실감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먹던 음식을 든 채 정지화면처럼 멈춰 있었다. 그리곤 음식 중에 깨끗한 곳을 골라 접시에 담아 그에게 건넸다. 그는 음식이 든 접시를 받는데도 힘이 없어서 그런지 슬로우 비디오처럼 천천히 움직이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충격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인간이란 존재는 참 이상하다. 옆에선 굶어 죽어가고 또 그 옆에선 질병과 전쟁으로 신음하는 사람을 보고도 먹어야 산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행동하는 것 같다. 충격은 컸지만 그래도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음식을 먹으면서 맘은 편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킨 음식을 싹싹 비우고 음료까지 먹고 나서 다시 거리로 나왔다.


 



▲ 티베트 음식점


 


그런데 휠체어를 타고 가는 내 모습이 신기했는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라서 생소한 행동이나 목소리가 조금만 커도 순식간에 구름떼처럼 몰려든다. 구경꾼은 휠체어를 보고 신기해하며 이리저리 떠들며 만져보고 자기들끼리 시끄럽게 난리도 아니다. 그들에게 휠체어는 처음 보는 물건이라고 한다. 휠체어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휠체어란 단어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휠체어 뒤로 아이들과 사람들이 따르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휠체어를 밀어준다며 신나서 밀기 시작했다. 그런 탓에 어딜 가든 관심이 집중됐다.


 


거리엔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즐비하고 세발자전거인 사이클릭샤와 오토바이를 개조한 오토릭샤도 많다. 릭샤는 인도인의 대중교통수단이다. 사이클릭샤는 뒷좌석에 물건을 싣고 성인은 두 명까지 탈 수 있다. 그런데 사이클릭샤를 끄는 사람이 너무 힘겨워 보인다.


 


마른 몸의 그가 있는 힘을 다해서 사이클릭샤를 끌고 간다. 그나마 운이 좋아야 손님을 많이 태울 수 있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직 노동자다. 이번 여행은 환경을 생각하는 공정여행이니만큼 이동수단을 이용할 때도 될 수 있는 대로 사이클릭샤를 이용했다. 이유는 또 있다. 우린 착한여행, 공정여행을 목적으로 떠나왔기 때문이다.


 



▲ 짐 가득한 사이클릭샤


 


우리를 따라다니던 사람들이 새로운 이동 수단인 휠체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자꾸 물어본다. 휠체어라는 개념조차 없기 때문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난감했다. 영어도 어설퍼 손짓 발짓에 아는 영어를 총 동원해서 설명해도 소통의 어려움은 있다. 한마디로 내 입에서 나오는 영어가 인도에 와서 개고생한다.


 


외국을 여행하다보면 소통의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다. 길도 문화도 낯설고 게다가 말도 통하지 않으니 5분이면 찾아 갈 곳도 돌고 돌아 한 시간 넘게 걸려 힘겹게 찾아간 적도 있다. 그때마다 언어장애와 청각장애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내 생각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할 때 느끼는 박탈감과 안타까움은 실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다. 마치 텔레비전 볼륨을 확 줄여놓고 이미지만 보는 느낌이다.


 


겉보기엔 난 장애가 전혀 드러나 보이지 않고 멀쩡해 보이니 이곳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난감했다. 그런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뉴 릭샤’ 라고 했다. 아이들과 사람들에게서 감탄사가 쏟아진다. 게다가 일행들 다섯 명이 호위를 하면서 뒤에서 휠체어를 밀고 한 명은 앞장서서 길을 여니 관심의 대상일수밖에 없다. 그들은 뉴 릭샤를 타고 가는 내가 엄청난 부자이거나 계급이 높은 외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음 편에 계속)

•문의

휠체어 배낭여행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글, 사진= 전윤선 여행작가




 


전윤선 작가는 지체장애 1급으로 휠체어를 타고 전국을 여행합니다. 한국장애인문화관광센터(휠체어배낭여행) 대표로서 인권•문화 활동가이자 에이블뉴스 '휠체어 배낭여행'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BS 3라디오 '함께하는 세상만들기, 휠체어로 지구한바퀴'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장애인들에게 자유롭고 즐거운 여행길을 안내하기 위해 오늘도 전국을 누빕니다.


 


“신체적 손상이 있든 없던, 사람은 자유롭게 이동하고 접근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하길 원한다. 손상을 가진 사람이 이동하고 접근하는데 방해물이 가로막지 않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나의 동그란 발은 오늘도 세상을 향해 자유로운 여행을 떠난다. 자유가 거기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