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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같은 스위스 어린이재활병원

“어린이들에겐 병원이 아니라 유치원과 학교 같은 곳이에요”
흰색 복도와 천정에 매달린 어두운 조명 속에서 핏기 없이 생활하고 있을 어린이들을 상상하고 취리히 어린이재활병원(Kinderspital Zuerich Universtaets-Kinderkiinik)을 찾았는데 결론은 한마디로 ‘참! 의외’였다. 무엇보다 어린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모습도 활기찼다. 병원은 취리히의 번잡한 도심이 아니라 한적한 교외의 자작나무 숲 가운데 위치해 있었다. 병원이라기보다 아기자기한 놀이시설을 갖춘 중세 고성에 와 있는 느낌이랄까.

병원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람보다 덩치가 큰 갈색 곰 한 마리가 인사를 한다. 어린이병원답게 로비에는 인형이, 사무실 유리창에는 만화주인공을 소재로 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종이로 만든 꽃이 장식하고 있다. 병실이나 복도라도 각 벽면마다 서로 다른 색을 칠해서 분위기가 한껏 밝아 보인다. 이곳이 어린이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이 아니라 유치원과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최근 재활의학계에 나타나고 있는 특징 중 하나가 뇌졸중과 비만, 신경정신장애 등 그 동안 성인병으로 인식됐던 질병이 어린이들 사이에 빈번히 나타난다는 점이다. 우리를 안내한 이 병원 원장 겸 취리히대학 재활의학과 교수 크네히트(Prof. Dr. Knecht) 박사는 “스위스에도 어린이 성인병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취리히 어린이 재활전문병원은 교통사고로 인한 외과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것으로 특화됐다”고 소개한다.

 

세 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이 병원에는 교통사고 어린이 환자 외에도 소아마비, 최근 유럽에서 장애로 여겨지는 비만 어린이 등을 위한 54개 병상을 갖추고 있다. 입원한 어린이 중 33%는 자동차사고로 인한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고, 엉덩이와 척추 등을 다쳐 정형외과 치료를 받는 어린이가 37%, 나머지는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와 사고로 뇌가 손상된 어린이들이라고 한다. 취리히 근교 종합병원에서 정형외과 수술을 받고 장기적인 재활치료를 위해 이곳에 후송된 어린이들이 대부분이다.

크네히트 교수는 “스위스에서는 매년 600명 정도 어린이가 교통사고로 뇌손상을 당하는데 누구나 이곳에 입원하길 원한다”고 설명한다. 1년에 12~18명의 어린이가 혼수상태로 실려와 입원하지만 재활치료를 끝내면 모두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면서 병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재활전문의 파르트카 빌(Dr. Patrica Bill) 박사는 “사고를 당한 어린이가 재활치료를 통해 혼자 말하고 걷기 위해서는 내 집과 같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병원의 철학”이라고 강조한다. 예쁘게 꾸며진 병실과 복도, 장남감방처럼 보이는 물리치료실과 작업치료실에서 아이들은 치료를 받는 것인 아니라 무슨 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스위스에서 근육이 굳어진 뇌성마비 어린이들에게 보독스 주사 치료를 통해 성공적으로 치료한 사례가 발표되면서 취리히 의과대학에서 소아과를 마친 뒤 어린이 어린이 재활의학을 다시 연구하기 위해 이 병원을 지원한다고 한다.

빌 박사의 안내로 이 병원이 자랑하는 로코마트(Lokomat)가 있는 치료실을 찾았다. 기계는 주로 뇌졸중과 척수장애를 앓고 있는 어른 및 뇌성마비 어린이의 보행치료를 돕기 위해 사용한다고 한다.

약 30제곱미터(10평)의 방안에 몸과 발을 고정시킨 뒤 고안된 로봇기계가 자리 잡고 있고 벽면에는 장애 정도와 신체 상태에 따라 착용할 수 있도록 전시된 수 십 개의 안전띠가 이채롭다. 빌 박사에 따르면 이 병원에 설치된 로코마트는 주로 사고로 걸을 수 없게 된 어린이의 보행을 돕기 위한 것으로 대당 가격이 50만 달러(약 5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어린이가 직접 운동하는 장면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로코마트를 담당하고 있는 어린이 물리치료사 파이퍼 코린네(Feiffer Corinne)씨는 “신체상태에 따라 보폭과 걷는 속도, 몸의 지탱 정도를 조절하고 천정에 묶인 고리를 통해 체중을 30~40%로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척수부분을 자극하고 결국에는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는 패턴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어린이 환자의 걷는 자세와 보폭, 간격 등은 모두 데이터로 저장돼 발전 상태를 매일 체크된다.

함께 방문한 어린이 재활의학과 전문의 송우현 박사는 “국내 대형병원에서도 이 장비를 들여올 계획이 있었지만 가격자체가 고가일뿐더러 우리나라 의료수가가 워낙 낮기 때문에 구매를 포기했다”고 설명한다.

코린네 씨에 따르면 로코마트 중 어린이를 위한 특수 설계된 기계는 전세계에 4대가 있고 4세부터 보행연습이 가능하다고 한다. 로코마트 옆방에 있는 보조기 제작실에는 전문가가 매주 찾아와 보조기가 필요한 어린이들의 신체를 깁스한 뒤 보행에 필요한 장치를 직접 만들고 있었다.

병원의 특징 중 하나가 아이들이 치료를 받으며 다닐 수 있는 특수학급이 병원 안에 있다는 것. 모두 4개 학급이 운영되며 한 학급당 학생 3명과 교사 2명이 함께 공부한다. 우리가 “수업 장면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하자 “좋다”는 학생과 “싫다”는 학생으로 나뉘었다. 사진 촬영을 허락한 학생들과 사진을 찍으려 하자 거부한 학생이 다가오더니 자신도 함께 찍어달라고 포즈를 취해 교실 안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재미있는 것은 병원 바깥쪽 한 벽면을 이용해 높이 9미터 규모의 암벽타기 시설이 마련돼 있었다는 것. 뇌졸중과 하반신 마비 어린이들을 훈련하기 위한 시설로 지어졌지만 이제는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공간이 되었다.비록 타고 올라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두발로 손잡이에 매달리는 것만으로 치료효과가 있다고 한다. 어른들은 3미터만 올라가도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무서웠는데 어린이들이 원숭이처럼 쉽게 벽을 오르내리는 모습이 신기했다.

어린이 작업치료실은 진료실이라기보다는 재미있는 놀이터나 장난감방 같았다. 스프링을 이용해 매트리스를 매단 그네와 여러 기구들은 아이들에게 놀이기구나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균형을 잡고 근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놀면서 치료받을 수 있다면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환영을 받지 않을까. 이 병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 중 매주 목요일 부모와 함께하는 요리 만들기가 단연 인기라고 한다. 어린이들이 부모와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 슈퍼마켓에 재료를 직접 고른 뒤 요리를 만드는데 공동작업을 통해 자연스런 작업치료뿐 아니라 의사소통의 방법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

 

병원은 크게 3개 동으로 나눠져 있다. 한 동에는 정신장애를 가진 비교적 큰 아이들을 수용돼 있고, 다른 두 병동에는 주로 1인실 병실로, 12살 이하의 어린이들이 입원해 있다.
병세가 호전된 12살에서 18살까지의 어린이와 청소년 9명은 병원 내 마련된 공동주택(Wohngemeinschaft)에서 생활한다. 나이와 장애 정도에 따라 2~3명이 한 방에서 생활하면서 거실과 주방, 화장실을 함께 기숙사처럼 사용하고 있었는데 정돈이 잘된 방과 뒤죽박죽인 방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아이들은 주로 교통사고로 신체 및 언어 장애를 치료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은 보통 2~8개월 정도 공동생활을 하면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상태도 상당히 호전된다고 한다.

본관 건물 5층에는 연구실과 강당이 있다, 연구실 위 지붕에는 큰 종이 매달려 있는데 연구실 천장을 통해 종을 칠 수 있는 밧줄이 내려와 있다. 오랜 병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하는 아이들이 이곳에 와서 ‘이제 꿈에 그리던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종을 친다고 한다.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마을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를 축복한다고 한다. 오랜 투병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마음으로 종을 힘차게 치는 어린이를 상상해 보았다. 하루빨리 이곳에 입원한 어린이들이 줄지어 종을 치는 기분좋은 상상을…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취리히 의학대학 부설 어린이재활전문병원 
Kinderspital Zuerich Universtaets-Kinderkiinik
Rehabilitationszentrum Fuer Kinder und Jugendliche Kinderspital Zue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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