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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관문 뮌헨에 도착해

‘유럽 장애인시설과 통학교육현장 연수 및 특별취재’ 제목이 상징하듯 소아 재활전문의 선생, 분당 대안학교 ‘이우학교’의 장석 이사장과 이우연구소 이광호 소장, 장애인시설 설계을 맡을 칸(間)건축 방철린 소장, 한겨레신문 <한겨레 21부> 구둘래,박승화 기자, 나와 임상준 팀장 등 모두 8명이 참가했다.

30일 새벽 1시 인천공항을 출발한 루프트한자 비행기가 독일 뮌헨공항에 새벽 공기를 가르며 착륙했다. 영종도를 출발한 비행기는 어둠속을 달려 불과 9시간만에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독일 노선은 그동안 12시간 비행끝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한 뒤 한밤중에 다시 뮌헨 행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최근 남부 독일을 찾는 한국관광객이 증가하면서 뮌헨 노선이 새로 개설됐다고 한다. 비즈니스를 위해 유럽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또다시 아침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은 적지 않은 기쁨이다.부산에서 출발, 서울을 경유한 비행기에는 경상도 말씨의 한국 단체관광객과 이탈리아 북부 및 오스트리아로 가는 유럽인들로 만석이었다.

그동안 뮌헨은 유럽의 경유지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기착지가 된 셈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 개막에 맞춰 새롭게 지어진 뮌헨공항 2청사는 한껏 현대 건축미를 살린 웅장한 건물이었다. 1992년 세워져 <세계건축대상>을 받은 1청사는 오히려 초라하게 보였다.

통역과 안내를 맡은 뮌헨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최필준 씨는 “뮌헨공항이 연간 2800만명의 이용규모로 증설되면서 프랑크푸르트 공항 못지않은 유럽 최고의 공항으로 앞으로 유럽과 중동아프리카의 관문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소개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뮌헨시는 2015년까지 제3청사를 건립해 연이용객 6000만명으로 영국 런던의 <히드로 공항>과 파리의 <샤를 르 드골 공항> 이용객을 합한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뮌헨은 독일 남부 평야지대에 위치한 독일 3대 도시이다. 수도 베를린과 항구도시 함부르크가 각각 서울과 부산에 해당된다면 140만명의 인구를 가진 뮌헨은 한국의 대구인 셈이다. 내륙의 거센 사투리와 대륙적인 기질, 보수적인 성향까지 대구를 똑 닮았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이 뮌헨의 지하철과 주택을 정비하고 국제적인 도시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면 2006년 독일 월드컵은 또한번 뮌헨을 단장하고 지역적인 특성을 살려 권역적 개발을 하는 기회가 됐다고 한다.

뮌헨에는 <BMW>와 독일 최대기업<지멘스>, 독일 3대 은행의 하나인 <히포페라인 은행> 본사가 둥지를 틀고 있다.

뮌헨(Muenche)의 상징은 검은 수도복을 입은 작은 수도사이다. <수도사>를 상징하는 moench와 <작다>라는 뜻의 chen이 결합돼 작은 수도사를 뜻한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조각조각 분열돼 있던 독일 도시들이 북쪽으로부터 구교에서 신교로 개종하는 바람이 불었다. 구교에서는 이를 차단하기 위해 뮌헨을 종교적인 중심지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당시 뮌헨을 다스리던 영주가 자신의 왕궁을 대학건물로 기부하면서 신학과 철학이 발전됐다. 이런 이유인지 뮌헨대학은 지금도 의학과 법학 뿐 아니라 신학과 철학의 전통이 여전히 강하다.

2차세계대전 직후 북부 공업지대인 루르와 자르 지역을 점령한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배상금 대신 공업시설을 뜯어갔다. 하지만 미군에 의해 점령된 뮌헨을 중심으로 한 바이에른 지역은 전후복구와 독일 부흥을 기치로 내건 미국에 의해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졌다. 이를 계기로 농업지대에서 자동차와 전자, 광학 등 첨단산업기기로 탈바꿈하면서 독일내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이제 뮌헨은 고집불통의 농부(바이에른 돼지)들의 땅이 아니라 유럽내 가장 부유하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되었다. 남한 크기의 바이에른의 경제력은 세계 교역량 11위의 한국 전체와 맞먹고 동독개발을 위한 통일세의 1/3을, 유럽통합에 필요한 보조금 중 독일 부담금의 1/4을 분담하고 있다니 바이에른과 뮌헨시민들의 콧대가 왜 높지 않겠는가.

너무 일찍 비행기가 도착한 탓인지 아니면 게르만족 특유의 무뚝뚝함 때문인지 첫 손님을 맞는 독일 세관과 공항 관계자들에게 불친절함이 뚝뚝 배어난다. ‘왜 왔냐’고 야단치듯하는 질문에 한국 아주머니 단체관광객들의 낭패의 빛이 역력하다. 서비스, 친절, 효율, 경쟁이라는 단어보다 견고, 기준, 원칙, 무뚝뚝함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곳이 독일이 아닐까.

우리 일행을 맞은 최필준 씨와 함께 청사를 빠져나와 하우토반(독일 고속도로)을 달리기 시작했다. 공항 고속도로 옆으로 갑자기 흰색의 위용을 자랑하는 2006년 독일 월드컵 경기장 <아레나>가 위용을 자랑한다. 2006년 6월 9일 이 경기장은 독일 월드컵 개막식이 열리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경기장 이름은 고대 로마시대 검투사들이 피를 흘렸던 격투장이라는 뜻의 ‘아레나’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아마 검투사의 정신과 전통이 이곳 게르만 민족에게 이어져 축구를 격전을 치르는 진검승부로 인식하고 있지 않을까. 6만 6000명이 한꺼번에 관람할 수 있다니 아마 세계 최대의 축구경기장일 것이다.

이 경기장은 세계 최대 보험회사인 알리안즈(Allianz)으로부터 <아레나> 건립비를 지원받아 향후 20년 동안 알리안즈 구장으로 불리운단다. 서구사회 가운데 자본주의 색체가 가장 엷었던 독일사회에도 자본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 듯했다. 재미있는 것은 경기장의 색깔이 경기 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독일 국가팀이 다른 나라와 경기를 할 때는 축구장은 중립적인 색깔인 하얀색을 띠지만 뮌헨을 대표하는 분데스리가 1부 바이에른 뮌헨과 2부 축구팀인 1860년 뮌헨팀이 경기할 때는 각각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경기장 색깔이 바뀐다고 한다.

독일하면 떠오르는 것이 축구와 자동차, 맥주다. 작은 동네에도 야간경기를 치를 수 있는 잔디구장이 1~2개는 자리 잡고, 축구스타가 되는 것이 독일 어린이들의 꿈이다. 농담으로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자동차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독일인. 이들에게 자동차와 맥주는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요소이다. 그래서 독일인들은 멋진 자동차를 타고 축구장에 가서 맥주를 마실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독일인의 웅혼한 정신과 이상을 실현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사념은 끝이 없다. 아레나 경기장을 옆을 돌아 뮌헨 시내에 진입한 우리는 첫 목적지인 페히니 파라데 재단의 장애인 복지타운을 방문했다. 마치 대형 아파트 단지처럼 크고 작은 건물로 이루어진 페니히 파라데 재단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계속)
<백경학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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