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대장과 장애청소년이 함께 하는 백두산 트래킹 (2부)


구름 아래 오롯이 그 참 모습을 드러낸 백두산 천지는 한마디로 신비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외국의 고산준령에 비해 해발고도 2744미터라는 높이는 대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산폭발로 생긴 분화구의 검은 흙빛과 천지의 짙푸른 물빛은 일견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불러 일으켰습니다.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만주 일대 다른 민족들도 서로 자기 역사의 근원을 백두산에서 찾으려고 애를 쓰는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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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에게 백두산은 어떤 의미일까요. 국운이 융성하던 시절에 대한 향수, 반도와 대륙을 아우르는 민족의 기상, 분단된 조국의 비원……. 자부심과 희망, 슬픔 등 온갖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얽혀 있는 백두산은 시인 정호승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천지라는 눈물샘을 가지고 있는 우리 민족 그 자체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희망의 이름, 백두산 천지


원치 않는 장애로 편치 않은 삶을 살아왔고, 또 앞으로 살아갈 인생 여정 역시 순탄치만은 않을 우리 청소년들. 남다른 느낌을 받았을 게 분명합니다. 눈앞에 펼쳐진 천지를 보며 기뻐 날뛰었던 친구들. 기념사진 찍느라 분주했던 이들에게 백두산은 무슨 의미로 다가갈까요? 결국 각자의 몫이겠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수십 시간에 걸친 버스이동과 1천개가 넘는 계단을 오른 끝에 ‘포기하지 않고 해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곁에 따스한 마음으로 잡은 손 놓지 않고 동행했던 마음씨 고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어떤 거친 파도가 밀려올지라도 다들 이날을 기억하며 희망을 꿈 꿀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 친구들 파이팅!



아쉬움을 뒤로 하고 천지를 내려옵니다. 우리는 이제 금강대협곡으로 향합니다. 천길 낭떠러지와 날카롭게 솟아 있는 기암괴석들. 절경이 펼쳐져 있는 그곳의 한 정자에 참가자 모두 둘러섰습니다. 두 팔을 잃고 서예 크로키라는 독창적인 화풍을 개척한 석창우 화백 앞에 화선지를 펼쳤습니다.


석 화백이 윗옷을 벗었습니다. 로봇 팔처럼 생긴 의수(義手)가 드러납니다. 의수에 붓을 끼운 채 온 몸으로 그리기 시작합니다. 무슨 그림을 그리실까 궁금증이 일 무렵 놀라운 속도로 붓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석창우 화백께서는 화폭에 무엇을 담으셨을까요? 다름 아닌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석 화백이 백두산에 올라 가장 인상 깊게 느끼신 장면은 천지의 장엄한 모습이나 금강대협곡의 스펙터클한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서로 가족처럼 아끼고 보살피며 이곳까지 함께 한 자랑스런 참가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징을 찰나에 포착해 형상화한 그림은 그 예술적 경지 이상의 진한 감동을 전해주었습니다.



백두산 천지와 금강대협곡을 뒤로 하고 다시 버스에 올랐습니다. 예정보다 길어진 일정 탓에 제 때 저녁밥 먹기는 이미 글렀지만, 며칠 동안은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옥수수와 삶은 계란을 비좁은 버스 속에서 나누어 먹으며 쉼 없이 달려갑니다. 어제 묵었던 통화시에 거의 다 와서 동포가 운영하는 노천식당에 도착했습니다.




백두산 천지를 만나고 온 참가자들 모두는 다들 마음 한 가운데 소중한 불씨를 피웠습니다.간단한 식사 뒤에 너나 할 것 없이 모닥불 주위에 둘러 앉아 신바람이 났습니다. 천지의 기운을 받고 와서인지 12시가 넘도록 흥겨운 자리는 이어졌습니다. 피곤이라고는 모르는 우리 친구들. 재주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저마다 장기를 발휘하며 오붓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구려의 민족혼이 살아 숨 쉬는 집안, 그리고 우리들의 마지막 밤


백두산 트래킹 마지막 날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 일정은 집안 일대에 밀집해있는 고구려 유적을 살펴보는 것. 그리고 귀국 비행기를 타게 될 심양으로 다시 6시간 넘게 버스로 달려가 마지막 밤을 보내는 것입니다.



서둘러 일정을 마쳐도 심양에 도착하려면 밤 10시는 될 것입니다. 어제 밤늦게 잠자리에 들었던 참가자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 일찍 다시 버스를 탔습니다. 광활한 중국 대륙의 동북지역 누비며 우리 민족의 숨결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오늘 고구려 역사탐방 여행의 안내자는 연세대학교 사학과에서 한국 고대사를 가르치시는 하일식 교수님이 맡아주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한국 출발 전 참가자 워크샵 때 20여 쪽짜리 도톰한 자료집을 손수 만들어 나눠주시기도 했습니다. 만주 일대와 백두산의 역사, 고구려 유적들에 대한 설명이 참가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꼼꼼하게 정리된 소중한 자료였습니다. 이 자료를 만드시기 위해 새벽까지 연구실에 남아 일일이 스테이플러로 ‘제본’을 하셨다는 말씀에 가슴이 찡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유적 발굴 등 연구작업을 위해 집안을 방문하셨던 만큼 답사일정 전반을 확실히 장악하시고, 핵심적인 유적들에 대한 간결하고도 깊이 있는 해설로 참가자들을 이끌어주셨습니다. 차분하면서도 진지한 교수님의 눈빛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래 사진은 장수왕릉에 오르고 있는 참가자들의 모습입니다. 교수님은 다른 통로로 벌써 올라가 계시더군요. 교과서에서만 보던 장수왕릉은 비록 한 귀퉁이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보는 이를 압도하는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치밀하게 쌓아 만든 장수왕릉을 둘러보면서 조상들이 돌을 다루는 솜씨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그 유명한 광개토대왕비입니다. 중국에서는 호태왕(好太王)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6미터나 되는 거대한 바위에 글자들이 빼곡하게 쓰여 있습니다. 하지만 흐릿해서 무슨 글자인지 확인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탓도 있었지만, 과거 탁본을 뜨려는 사람들이 석회를 바르는 등 몹쓸 짓을 많이 했다고 하더군요. 우리 후손들이 제대로 관리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훼손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왔습니다.


광개토대왕비 옆 사진은 바로 광개토대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최근 학계에서는 이곳을 두고 광개토대왕릉이 확실하다고 여기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근처에서 발굴된 유물 가운데 광개토대왕의 이름이 새겨진 방울이 나왔기 때문이랍니다. 겉보기에는 허술해 보이지만 무덤이 차지하고 있는 규모를 볼 때 장수왕릉보다 훨씬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일대 유적들은 모두 외부에서만 사진촬영이 가능했습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광개토대왕비는 왜 실내에서 못 찍게 하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오호분이라는 곳입니다. 당초 CCTV를 통해서만 내부 벽화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봤더니 그냥 입장을 시키는 겁니다. 지하 통로를 지나가는데 벌써부터 습기가 가득하고 바닥과 벽면이 물기로 흠뻑 젖어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묘실 내부의 벽화 위로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자칫 관람객들 옷깃이라도 스치면 다 지워질 것 같았습니다. 자기네 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중국 정부가 어떻게 고구려 유적을 이런 식으로 방치할 수 있는 것인지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말이 방치이지 사실상 고의적인 훼손과 다름이 없는 실정입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세 시간 정도 짧은 답사였지만 버스 이동과정에서 교수님께서 미리 배경설명을 해주셨고, 답사중에도 워낙 맥을 짚어 내용을 풀어주셔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제 집안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심양으로 장거리 이동을 준비합니다. 우리가 찾은 곳은 북한 식당이었습니다. 북녘의 동포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반갑습니다’, ‘휘파람’ 등 귀에 익은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음식도 정말 맛있었습니다. 우리 입맛에 딱 맞았습니다. 역시 우리는 한 민족입니다!



북한식당을 나서니 바로 압록강입니다. 100미터가 되지 않는 강폭 너머 북한 땅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집니다. 너무도 가까이에, 누군가 강 건너 서있다면 손짓 발짓으로 얘기도 나눌 법한 거리에 북한의 땅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북녘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보니까 북한이 남쪽입니다. 누가 남이고 누가 북인가요?


보이지 않는, 그러나 반세기 넘게 너무도 강고하게 버티고 있는 이념이라는 장벽이 저 푸른 압록강의 강물을 반으로 가르고 있는 것입니다.


역경과 희망의 관계를 일깨워준 백두산, 민족과 역사에 대한 의식을 높여준 고구려 유적, 그리고 분단의 냉엄한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 압록강. 귀국을 앞두고 있는 우리 참가자들은 짧지만 밀도 있는 여행을 통해 얻은 많은 것들로 만감이 교차합니다. 하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밝은 기운이 서려 있습니다.



압록강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심양의 호텔에 도착하니 밤 10시. 맛있는 만찬으로 허기를 달래고는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삼행시 짓기’의 열기 속에 떠나보냅니다. 우리 청소년들의 열띤 경쟁 속에 심사위원이신 정호승 선생님께 1등으로 뽑힌 친구는 소연이였습니다. 작품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백 : 백두산에 올라갔다.

두 : 두루두루 둘러봤다.

산 : 산은 역시 백두산이다.


너무도 기막힌 작품이어서 마지막 소절이 끝나자마자 열화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소연이는 상품으로 엄홍길 대장님 협찬의 광개토대왕비 축소모형을 받았습니다. 가수 뺨치는 노래실력을 뽐낼 때부터 알아봤습니다. 규범이는 삼행시 대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습니다. 전 세계 장애와 질병으로 고통 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힘써줄 것을 절절한 목소리로 호소했습니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규범이 편지의 전문을 소개합니다.

존경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님 저는 청운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6학년 김규범이라고 합니다. 총장님. 저는 얼마 전에 책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어린이들이 많은 장애와 질병을 겪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중에는 저와 같은 또래들도 있겠지 하는 생각을 저는 해보았습니다.사람들은 자기 이익만 챙기느라고 남에게 많은 피해를 줍니다. 세상에 태어난 순간 모든 생명은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전쟁 때문에 많은 생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전쟁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을 어린이들을 위해 총장님이 어떤 판단을 내리시는지에 따라 이 세상은 확 달라질 것입니다.



전쟁과 질병의 고통으로 더 이상 죽는 어린이가 생기지 않도록 유엔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십시오. 그러면 이 세상은 평화로움으로 변할 것입니다. 총장님은 이 자리에 계신 이유가 무엇이며 어떤 일을 하셔야 하는지 잊지 마십시오. 총장님은 저희들의 미래를 생각하고 계신 것입니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 유엔에서 적극 협조해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삼행시 짓기가 끝나자 청소년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합니다. 무슨 일일까? 어른들의 의아한 표정을 뒤로하고 친구들은 객실 하나를 차지하고 둘러앉았습니다. 누구는 바닥에, 누구는 침대에, 누구는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른바 ‘학생회’였습니다. 푸르메재단 직원들이 불청객으로 끼어들어 이 친구들의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왈칵 눈물 쏟은 한 밤의 학생회


여행도중 가벼운 실랑이를 벌였던 친구들은 이 자리에서 사과와 용서, 화해의 포옹을 했습니다. 즐겁고 안전한 여행이었다고 나름대로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직원들 눈치를 살피며 귀엣말을 나누더니 모두 둥글게 손을 잡고 서자고 합니다. 이내 한 친구가 외치고 다른 친구들이 따라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낯선 친구들이 아름다운 여행을 통해 형제자매가 됐고, 자기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힘을 길렀고,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한 것입니다. 재단 직원들은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이번 행사는 바로 이 짧은 ‘학생회’ 시간을 위해 존재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친구들아 고마운 건 우리야. 우리가 얼마나 너희들에게 고마운지,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 모를 거야. 사랑한다. 친구들아!” 우리들의 눈물겨운 마지막 밤은 이렇게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글/사진=정태영 푸르메재단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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